전 세계 여성들의 외침…"페미사이드 멈춰라"

임혜련 기자 / 기사승인 : 2019-09-14 10: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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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남아공 '反페미사이드' 시위…"더이상 폭력 묵인 못해"
100번째 여성살해 범죄…佛정부 "가정폭력 근절 위해 공개토론"
브라질·엘살바도르 억압된 여성들…"페미사이드 범죄 심각"

최근 중남미와 중동 등 세계 곳곳에서 남성들에 의한 '여성 살해' 사건이 급증하자 "페미사이드를 멈추라"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페미사이드(Femicide)'는 여성(Female)과 살해(Homicide)를 합친 말로 '여성살해'를 의미한다. 여성학자 다이애나 러셀(Diana E. H. Russell)은 1976년 페미사이드를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국제보건기구(WHO)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연애·동거·혼인 상대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을 가리켜 '페미사이드'라고 정의한다.

정부가 한 해 페미사이드 희생자 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수많은 국가에서 페미사이드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맞서 '반(反)페미사이드'를 외치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6일(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독립기념비 '앙헬 탑' 앞에서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쓴 두 여성이 성매매 여성 살인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뉴시스]

유엔개발계획(UNDP)은 지난 2017년 전 세계에서 여성들이 범죄에 가장 많이 노출된 국가로 중미(Central America)와 멕시코를 지목했다. 유엔(UN)은 멕시코에서 매일 약 8명의 여성이 피살되는 것으로 집계했다.


멕시코 내무부 산하 국가공공안전위원회(SNSP)에 따르면 올해 1~2월에도 147건의 페미사이드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작년 동기 대비 12% 증가한 수치다. 2015년부터 2019년 6월 사이엔 3080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멕시코 여성들은 만연한 여성폭력에 대항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지난달 12일과 16일에는 '반짝이 혁명(Mexican Glitter Revolution)'이 열렸다. 10대 여성이 경찰관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연달아 발생한 데 분노한 여성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12일 시위대가 인터뷰 중이던 제수스 오르타 멕시코시티 치안장관에게 반짝이 가루를 뿌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며 반짝이는 시위의 상징이 됐다. 여성들은 16일에도 설탕으로 만든 분홍색 반짝이 가루를 들고 멕시코 전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더는 폭력을 묵인할 수 없다고 외쳤다. 이달 8일  또다시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모인 여성들은 여성 범죄를 다루는 데 소극적인 정부를 규탄했다.

▲ 19살 대학생 유이니 머위티아나(Uyinene Mrwetyana)는 케이프타운 우체국 직원의 강간·폭행으로 살해당했다. [남아공 국영방송 SABC News 화면 캡처]

남아프리카공화국 치안서비스(South African Police Service·SAPS)에 따르면 남아공에서는 여성이 3시간에 1명 꼴로 살해당한다. 여성을 표적으로 한 성범죄가 하루 137번 발생한다는 수치도 있다.


지난 8월에는 페미사이드 사건이 사상 최다로 발생했다. 8월 한 달 동안 여성들이 갱단의 총에 맞거나 이웃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이 잇따라 일어난 것이다. 출산을 앞둔 예비엄마와 6살 아이가 갱단의 총에 맞아 사망했고, 19살 대학생이 우체국 직원의 강간·폭력으로 사망했다. 25살의 복싱 챔피언 선수는 경찰로 복무했던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됐다.


이에 지난 5일 여성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8월에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검정색, 보라색 옷을 입고 케이프타운에 모인 여성들은 의회를 향해 행진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자신도 다음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의 '앰아이넥스트(#AmINext)' 해시태그 캠페인이 진행됐다.

정부 당국자들은 시위대의 외침에 목소리를 더했다. 마이테 은코아나 마샤바네 외무장관은 "우리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부끄러워 머리를 숙인다"며 "8월 한 달 동안에만 30명 이상의 여성들이 배우자나 연인의 손에 살해당했다"라고 지적했다.


시릴 라마포사(Cyril Ramaphosa) 대통령도 트위터에 "우리는 가정, 지역 사회, 학교, 직장, 공공장소 등에서 여성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국가를 건설할 것"이라고 적었다. 이에 시위 참가자들은 대통령을 향해 실제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 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여성권익 운동가들이 손팻말 등을 들고 '여성혐오살인'(femicide) 중단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뉴시스]

프랑스는 서유럽 선진국 중 이례적으로 페미사이드 사건 발생 비율이 높다. 앞서 지난 8월 31일 프랑스 남부의 한 철도역 근처에서 남자친구의 폭행으로 숨진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는 올해 100번째 ‘여성살해 사건’으로 기록됐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프랑스에서는 연말 페미사이드 사망자가 150명에 이를 전망이다. 프랑스 내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 130명, 2016년 123명의 여성이 남편, 파트너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AP통신은 2,3일에 1명은 가정 내에서 파트너에 의해 목숨을 잃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여성들은 2일 살해당한 100명의 여성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정부가 가정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예산을 대폭 확대해야 하며,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보호소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6일에도 페미사이드 근절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규탄 집회가 프랑스 곳곳에서 열렸다.

페미사이드에 대항하는 목소리가 거제시자 프랑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마를렌 시아파 프랑스 여성부 장관은 오는 9월부터 페미사이드와 가정폭력 등을 근절하기 위한 공개토론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인 11월25일까지 의견수렴 작업을 거쳐 관련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는 여성 학대를 최소화하기 500만 유로(약 66억5000만원)를 지출하기로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페미사이드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며 희생된 여성들을 향해 유감을 표했다.

▲ 엘살바도르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배우자 혹은 가족의 폭행을 피하고자 자살하거나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한다. [스페인어 방송 우니비시온 뉴스 화면 캡처]

페미사이드 범죄 최다 발생 국가 '브라질·엘살바도르'
 

페미사이드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며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국가도 있다. 미주인권위원회(IACHR)에 따르면 특유의 '마치스모(machismo·남성우월주의)'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브라질에서는 매일 4명의 여성이 살해당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허울뿐인 법안 뒤에 숨어 미적지근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페미사이드를 근절하겠다며 2015년 ‘페미사이드법’(Femicide Law)을 제정했다. 해당 법은 페미사이드의 정의를 법적으로 규정하고, 관련 범죄에 형량을 늘린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지만, 그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IACHR 위원인 마가렛 메이는 성폭력·가정폭력 등 폭력피해 여성을 위한 보호소를 증원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인권감시기구에 따르면 브라질 인구는 2억만 명에 달하지만, 여성을 위한 보호소는 74군데에 불과하다. 가정폭력이 만연한 브라질에서 피해 여성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총기 소지 금지법 완화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2016년 페미사이드 희생자 중 절반이 총에 맞아 살해됐다. 그럼에도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총기 소유 허용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총기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논란을 낳았다.

엘살바도르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보수 가톨릭 국가인 엘살바도르는 페미사이드 사건 발생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이다. 유엔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ECLAC)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페미사이드 사건이 제일 많이 발생한 국가는 브라질이지만, 인구 대비 사건 발생 비율은 엘살바도르가 가장 높다. UN은 2018년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가장 위험한 국가로 엘살바도를 지목했다.

타임스 등 외신은 국가기반 조사 결과 67%의 엘살바도르 여성들이 배우자·가족의 폭행과 성희롱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6%만이 이를 신고한다고 보도했다. 또 UN 보고서에 따르면 페미사이드 범죄의 25%만이 법정에서 다뤄지고, 이 중 7%만이 실형을 선고받는다. 타임스는 실형 선고가 낮은 이유에 대해 검찰이 범죄 조직의 보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엘살바도르 여성들에게 탈출구는 없다. 만연한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자살'과 '망명' 뿐이다. 정부 통계에 의하면 2018년 1월~6월 엘살바도르에서 발생한 페미사이드 사건 285건 중 51건이 자살이었다.


이 같은 '페미사이드 자살(femicide suicide)' 사건이 급증하자 엘살바도르 정부는 2012년 관련법을 제정했다. 페미사이드 자살 방지법은 최대 50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지만, 실효성은 떨어진다. 검찰은 여성의 자살이 성별에 근거한 폭력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처벌을 피한다.


실제로 페미사이드 자살 방지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60건의 사건에 대해서만 조사가 이뤄졌으며 기소된 사건은 1건에 불과하다. 수십 명의 엘살바도르 여성들이 낙태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과는 대조되는 수치이다.

폭스뉴스는 엘살바도르 여성들이 미국 망명을 선택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심각한 '여성살해 및 폭력'을 지목했다. 2016년에만 6만5000명의 여성이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과테말라 등 페미사이드가 만연한 중미 국가를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자국 내 수단, 엘살바도르, 아이티, 니카라과 이주민에 대한 임시보호신분(TPS) 프로그램 폐지 수순을 밟는 등 반이민 정책에 나서며 이마저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 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다음날인 18일 오후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 사건 피해자 여성 추모글을 남기고 있는 모습 [뉴시스]


이외에도 여성 영아 살해가 빈번히 일어나는 인도, 지난해에만 149건의 여성살해 사건이 발생한 페루 등 수많은 국가에서 페미사이드가 자행되고 있다. 한국도 페미사이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NGO 단체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2017년 살인범죄로 사망한 피해자 10명 중 3명은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이었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살해사건까지 고려하면 그 비중은 훨씬 높아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불안감에 떨고 있다. 생존권을 지키려는 여성들의 외침은 절박하다. 여성혐오 범죄가 근절되고 모든 여성의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반(反페)미사이드를 외치는 목소리는 계속될 것이다.


UPI뉴스 / 임혜련 기자 ihr@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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