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당의 시크릿파일] ⑤<양지일지> 보면 전두환은 4월에 5·17예비검속 준비했다

김당 기자 / 기사승인 : 2019-04-18 08: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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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신군부의 '정치인 싹쓸이' 집권 시나리오
4월 중순 '서울의 봄'에 이미 '불순·비협조적 사람들' 예비검속 준비

'중앙정보부장서리'라는 민간인 감투를 쓴 전두환 중장은 소령 시절에 중앙정보부 인사과장을 역임한 데다가, 보안사령관으로서 부하들로부터 정보부의 정보수집 활동에 대해 보고받아 정보부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서리가 중앙정보부 간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양지일지]


전두환 부장서리는 취임 후 첫 부서장 회의(1980년 4월 21일)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 중앙정보부라는 기관에서는 막연하게 보고(報告), 정보수집이나 하고 그저 넘어가서는 안되겠습니다. 여기에 대한 응당한 경고가 될 수 있는 모든 기능을 유지해서 어느 시기에 가서는 이것을 바로 잡아야 됩니다. 그런 것을 바로잡지 못할 때에는 중앙정보부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런 사명감과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중앙정보부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막대한 예산을 쓰고 좋은 장비를 쓰는 우리가 어느 시기에는 그러한 것을 바로잡아야 나라가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국가안전기획부,〈양지일지>, 67쪽)

'통역기'가 필요한 전두환 중장의 연설


잔뜩 긴장한 남산의 부서장들은 '점령군'의 수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 의도는 알았지만 전두환 장군의 연설은 '통역기'가 필요할 만큼 어지러웠다. 하지만 '해체'라는 단어와 '나라가 넘어가지 않으려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뜻하는 바는 분명했다. 


전두환은 구체적으로 “권력이나 직권을 이용해 수집을 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다”라고 규정했다. 또 “부원들의 신분이 노출된 정보활동을 원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그는 “그런 방식은 정보부가 다시 죽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며 “항상 지하에 숨어서 인간관계의 유대를 통해서 협조자 또는 위장망을 활용해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식적으로 비노출 방식의 정보활동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면서 전두환은 부서장 회의 말미에 "정보부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하나 점진적으로 정보부의 영향력을 부식(扶植)해야 하겠다"면서 이렇게 의미심장한 지시를 했다.


"앞으로 언론이나 종교에 대해서도 지금부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해서, 한꺼번에 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서서히 침투해서 서서히 접촉을 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특히 불순하고 비협조적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존안(存案)만 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판단해서 시기가 오면 일벌백계주의로 조치를 하여야겠다는 것입니다. 국가안보를 위해서 우리가 조치를 취하여야 되겠다는 시기가 오면, 각 분야별로 대담하게 그리고 애국적인 정신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여야 하겠습니다."(앞의 책, 70쪽. 굵은 글씨는 필자 강조)


일제 강점기에는 범죄 방지 명목으로 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는 사람을 사전 구금하는 것을 규정한 예비검속법(豫備檢束法)이 존재했다. 일제는 특히 제2차 대전이 일어나자 전시체제를 구축하면서 1941년 식민지 조선에 '조선정치범 예비구금령'을 시행했다. 일제의 폐습은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군사정권에서 정적을 '빨갱이'로 몰아 제거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군은 위수령이나 계엄령 선포 같은 유사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예비검속 작전을 예비해 두곤 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10월 보안사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으로 드러난 국군 보안사의 '청명계획'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청명계획은 1989년 3월 당시 보안사가 친위쿠데타를 성공시키는 데 방해가 될 만한 반정부인사 923명의 목록(청명카드)을 만들고 이들을 개별적으로 사찰해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D-데이 전후로 전원 검거한다는 예비검속 작전명이다.

보안사,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 전에 '싹쓸이 작전' 준비


▲ 노태우는 보안사령관과 대통령직을 전두환으로부터 승계했다. 1981년 7월 16일 전두환 대통령이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노태우 전 국군보안사령관에게 정무 제2장관 임명장을 주고 있다. [국가기록원]


알다시피 노태우는 전두환 장군의 후임 보안사령관이었다. 이처럼 예비검속 작전은 보안사의 '전문' 분야였다. 그런데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감투를 쓰면서 정보부에 “불순하고 비협조적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존안”, 즉 정보수집만 할 것이 아니라 “시기가 오면 일벌백계주의로 조치”, 즉 예비검속을 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전두환 부장서리가 중정 부서장들에게 사실상의 예비검속 조치를 준비할 것을 지시한 4월 21일께는 이른바 '서울의 봄'(1979년 10·26사태 이후 1980년 5·17 이전까지의 정치적 과도기)이 한창인 시절이다. 당시 대학가는 3월 개학과 함께 '학내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다가 4월부터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 겸임 등 신군부의 권력 장악 음모가 드러나자 '유신잔당 퇴진'과 '계엄 철폐' 등을 내걸고 민주화 투쟁을 벌였다. 


이후 학생들의 가두시위는 5월 15일 전국 대학생들의 계엄해제 요구 시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대학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 투쟁은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따른 대학 휴교령과 학생운동 지도부 검거 선풍으로 신군부 세력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런데 전두환의 부서장 회의 지시를 보면, 신군부는 이때부터 '불순하고 비협조적인 사람들'에 대한 예비검속 조치를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집권에 방해가 되는 기성 정치권과 재야 세력에 대한 '싹쓸이'와 집권 시나리오를 그때 이미 내비친 것이다. 


실제로 신군부는 5월 17일 오전 11시 국방부에서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열어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결정하기 하루 전인 5월 16일 오전에 전군 보안부대장 및 수사과장 회의를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이미 전군 보안부대 수사과장들에게 18일 0시를 기해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다는 사실과 검거 대상자 명단도 통고되었다. 계엄 확대를 알리는 포고령 발표와 방송 보도가 나가기 전에 미리 체포하라는 지시였다. 


당시 계엄사가 발표한 포고령 10호는 △모든 정치활동을 중단하며 정치 목적의 옥내외 집회 및 시위를 일절 금한다 △언론출판 보도 및 방송은 사전검열을 받아야 한다 △각 대학은 당분간 휴교 조치한다 △정당한 이유없는 직장이탈이나 태업 및 파업행위를 일절 금한다 △유언비어의 날조 및 유포를 금한다 등이었다.


또 계엄사 합수부의 이학봉 수사국장 겸 보안사 3처장(대공처장, 80. 1. 12~8. 28 재임)은 각 수사기관에 검거 임무를 미리 분담시켰다. 이에 따라 '권력형 부정부패자'를 체포하는 임무는 보안사가 맡고, '국기를 문란케 한 주모급 인사'를 체포하는 일은 중앙정보부가 맡았다. 경찰에게는 운동권 학생들과 재야 인사를 검거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에 따라 보안사는 김종필, 이후락, 박종규, 김진만, 김치열, 오원철, 김종락, 장동운, 이세호 등을 연행했고, 권총으로 무장한 중앙정보부 안전국(보안수사국) 요원들은 계엄사(수경사) 헌병을 앞세워 김대중, 예춘호, 문익환, 김동길, 인명진, 고은, 리영희 등을 자택에서 체포했다(이종찬, 앞의책, 358-359쪽). 


'부정부패' 및 '과격용공'의 척결은 바로 신군부가 내걸었던 집권의 명분이었다. 구여권의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들과 중앙정보부가 오랫동안 붉은 색을 칠해온 '김대중과 재야 인사'들은 그럴 듯한 명분으로 포장된 '싹쓸이 시나리오'를 수행하는 데 안성맞춤의 희생양이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 탄생한 배경


한편, 이와 같이 검거 대상 별로 역할 분담을 한 까닭은 거사를 주도한 신군부의 보안사 핵심 세력들이 중앙정보부를 불신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정보부 창설자인 김종필과 이후락, 김치열 등은 각각 부장과 차장으로 오래 재직했던 인사들이어서 부내에 이런저런 신세를 진 간부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구여권 출신의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들은 친정 격인 남산 지하실이 아닌 '빙고호텔'(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모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 50여일 동안의 고문 수사 끝에 시작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공판. 헌병들 사이로 김대중, 문익환 목사, 이문영 교수(첫줄), 고은 시인, 예춘호 전 의원(둘째줄), 한승헌 변호사(세째줄) 등이 보인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계엄포고령은 명분을 쌓기 위한 허울 좋은 발표일 뿐, 사실상 무법천지였다. 현행범이 아닌데도 불체포 특권을 가진 현역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영장없이 체포·구금되는 초법적인 상황이 야음을 틈타고 도처에서 벌어졌다. 10·26 사건으로 부(部) 전체가 반역죄인 취급을 받아 사실상 모든 기능이 박탈되어 텅텅 비어 있던 남산 지하실은 이날 밤부터 신군부가 치밀하게 기획·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김대중과 장남 김홍일, 동생 김대현, 동교동계의 김녹영·김상현·김종완·이용희·이택돈 의원 등과 김옥두·김윤식·한화갑 비서, 김대중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고은 시인, 김동길 교수, 김승훈 신부, 리영희 교수, 문익환 목사, 송건호 언론인, 예춘호 전 의원, 이문영 교수, 인명진 목사, 장을병 교수, 한승헌 변호사, 함세웅 신부 등이 남산 지하실로 연행되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서울의 봄'에 봇물처럼 터진 대학가와 노조의 시위를 배후 조종한 혐의와 용공 혐의를 덧씌우기 위한 50일간의 고문이 시작되었다.


1980년 7월 4일 계엄사령부가 김대중을 학원 소요사태 및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조종자로 발표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이렇게 탄생했다. 당시 계엄사 당국은 집권욕에 눈이 먼 김대중이 자신의 사조직을 학생조직에 연결시켜 광주에서 학생시위와 민중봉기가 일어나도록 배후조종한 것으로 발표했다.


"김대중은 집권욕에 눈이 어두워 자신의 사조직인 민주연합 집행부에 복학생을 흡수, 학원조직에 연결시켜 서울대·전남대생 등에 총학생회장 선거자금 또는 데모자금을 지급, 자신의 출신지역인 호남을 정치활동의 본거지로 삼아 다른 지역에 앞서서 학생시위와 민중봉기가 이루어지도록 지원, 광주사태가 악화되자 호남 출신의 재경(在京) 폭력배 40여 명을 광주로 보내 조직적으로 폭력시위를 주도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했다."(굵은 글씨는 필자 강조)


'김대중의 집권욕'과 '전라도 깡패'를 등치시킨 정치공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당시 민주세력의 지지를 받던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김대중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한 거짓임이 나중에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김대중은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반공법·계엄법·외환관리법 위반 등으로 계엄군법회의에서 사형이 선고되고, 문익환·이문영·예춘호·고은태(고은)·김상현·이신범·이해찬 등도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았으나 나중에 모두 사면·복권되었다.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보안사는 수사권이 없는 민간인에 대한 수사를 했으며, 중정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수사승인 및 조정의견까지 하달하는 조정·통제의 권한을 행사했다. 또한 중정은 민간인 수사에 대한 보안사의 직권남용 및 위법행위에 대한 조정·통제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보안사는 각종서류를 중정 수사관 명의로 이른바 '가라'(허위)로 작성했다. 중정은 보안사에 명의만 빌려준 수사였다. 보안사가 집권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수사 과정부터가 불법이었다.

"김영삼은 놔두고 김대중만 잡아들이면 전라도에서 소동이 일어날 겁니다"


당시 이종찬 총무국장은 이튿날인 5월 18일 아침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다가 간밤에 '거사'를 지휘한 김근수 안전국장(6국 보안수사국장 겸임)을 만났다. 대통령 특명 사건을 담당하는 안전국장은 중앙정보부에서 가장 많은 '병력'을 거느린 부서장이었다. 김근수 국장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영삼은 놔두고 김대중만 잡아들이면 전라도에서 반발해 항의 소동이 일어날 터인데 걱정입니다."(이종찬, 앞의책, 359쪽). 


불행하게도 그의 우려는 적중했다. 


계엄포고령 10호로 전국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진 가운데 전남대에서는 학내로 들어가려면 학생들이 무장한 공수부대와의 충돌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에 격분한 학생들은 도심으로 진출해 시위를 벌였으나 공수부대는 곤봉과 대검으로 무자비하게 살상했다. 


이른바 '광주사태'라고 불렀던 '5월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광주에 투입된 공수특전단의 초강경 유혈진압에 맞서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화 항쟁은 한동안 '광주사태'로 불리다가 1988년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불렸다.

 

((계속해서 陽地日誌, 전두환 부장의 '지시각서' 1, 2호와 '특이사항' 편이 이어집니다))

 

UPI뉴스 / 김당 기자 dang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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