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키코의 정의(正義)는 무엇인가

류순열 기자 / 기사승인 : 2019-06-24 10: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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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순열 경제 에디터

시장은 탐욕스럽다. 일단 팔고 본다. 속임수가 대수랴. "하하, 이 멍청이들이 진짜 좋은 상품이라고 생각해. 결국 참담한 꼴을 당할 텐데 말이야." 투자은행 '뱅커스트러스트' 직원들은 낄낄거렸다. 자기들이 판 금융파생상품을, 그 거래를 몽정(wet dream)에 빗댔다.


글로벌 기업 프록터앤갬블(P&G)은 뱅커스트러스트(BT)의 탐욕에 당했다. BT가 판 2억 달러 규모의 이자율스왑에 뒤통수를 맞았다. 금융파생상품이 태동하던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일정 기간 변동금리와 고정금리를 주고받는 계약이었는데, 미 연준이 긴축에 나서면서 탈이 났다. 금리가 뛰어 '줘야 할 것’(변동이자)이 '받을 것'(고정금리)을 압도하면서 손실액이 1억 달러를 넘어섰다. 결국 P&G는 BT를 사기판매 혐의로 고소했다. 이 상품의 위험성을, 그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소송 과정에서 밝혀진 녹취록이 드러낸 진실이다.

10년후 한국 금융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7만7000 불 먹었다. 왕건이 하나 건졌다." 그 유명한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를 팔고 은행 딜러들은 이런 얘기를 나눴다. 검찰이 확인한 녹취록인데, 2017년말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이를 '키코의 사기성을 지지하는 증거'(금융행정혁신 보고서)로 봤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당시 위원장이었다.


키코는 2005~2008년 은행이 주로 중소기업에 판매한 환위험 헤지(hedge·회피) 상품이다. 상한,하한을 정해놓고 환율이 이 구간에서 움직이면 약정환율을 적용하는 대신 하한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을 무효로 하고 상한 이상으로 올라가면 기업에서 2∼3배의 콜금액을 회수하는 구조였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투기상품이었는데, 은행들은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환율이 급등하면서 내재했던 위험성이 현실화한 게 키코 사태였다. 견실한 기업마저 환차손으로 도산할 만큼 피해가 막대했다.


그러나 2010년초 키코 피해기업의 고소로 시작된 3년여 법정 싸움의 승자는 은행이었다. 사기 혐의는 검찰 수사단계에서 무혐의로 결론났고,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불완전 판매(설명의무 위반) 책임을 극히 일부 인정했을 뿐이다. 250여 사건 중 11%인 28건에 불과했다.


이후 6년이 지났지만 키코는 끝나지 않은 이슈다. 금감원이 '용감하게' 칼을 빼들었다. 7월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은행에 손해배상을 권고하려 한다. 불완전 판매 책임을 더 묻겠다는 얘기인데, 얼핏 무모한 일로 보인다. 손해배상 소멸시효는 오래전 완성됐고,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분쟁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하는 터다. 은행들은 권고를 거부할 텐데, 그 다음 금감원이 할 수 있는 게 뭔가. 아무것도 없다. 

이 지점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은행들이 "법대로"만을 외치는 게 공정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다. '법이 꼭 정의인가' 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정의를 법 없이 실현할 수는 없지만 법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일 뿐이다.


"법과 정의의 대결." 금융권 인사 A는 작금 키코 논란을 이렇게 압축했다. 은행이 "법대로"를 외친다고 정의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법적 시효와 관계 없이 불완전 판매에 책임지는 것이 정의일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의 본질이 신뢰라는 점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통찰이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금감원의 노력을 적극 지지한다"는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의 응원도 같은 얘기일 것이다.


U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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