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용의 흙수저 리더십, 또 한번의 매직 보여줄까

장기현 기자 / 기사승인 : 2019-06-15 0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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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팀' U-20 축구대표팀, 정정용 감독 스토리

"국민 여러분과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뛰었다. 모든 스태프들이 '하나'가 된 것에 감사드린다"

▲ 지난달 2일 경기 파주시 파주NFC에서 열린 U-20 남자 축구대표팀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정정용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하나'의 힘으로 역사를 쓰고 있는 U-20 축구대표팀이 단 '하나'의 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은 오는 16일 오전 1시(한국시간) 폴란드 우츠 스타디움에서 우크라이나와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놓고 한판 승부를 펼친다. 


우리나라 남자 축구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결승에 오른 건 유소년과 성인을 포함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어린 선수들이 아시아는 물론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한국 축구의 역사가 되고 있다. 이는 선수와 스태프, 팬들이 삼위일체로 이루어 낸 '대한민국 원팀'의 결과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정용(50) 감독이 있다.


축구계 대표 '흙수저'…유소년 지도에 '올인'

청구중·고와 경일대에서 센터백으로 활약한 정 감독은 국가대표는커녕 프로선수 경력도 없다. 지난 1992년 실업팀 이랜드 푸마에 입단해 1997년까지 6시즌 동안 뛰었지만, 잇따른 부상으로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그라운드를 떠나야만 했다. 무명이나 다름없는 선수 시절을 보낸 축구계의 대표적인 '흙수저'로 평가받는다.

정 감독의 이른 은퇴는 오히려 유소년 축구 지도자로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오는 계기가 됐다. 은퇴 후 명지대 석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지도자의 길을 나선 그는 2008년 U-14 대표팀 코치를 시작으로 축구 지도자로서의 경험을 하나씩 쌓아 나갔다. 10여 년 동안 한 눈도 팔지 않았다. 정 감독은 14세 팀부터 시작해 연령대별로 밟고 올라왔고, 대표팀 코치를 거쳐 유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정 감독은 현 20세 이하 대표팀 선수들이 18세일 때부터 3년간 연이어 지도하고 있다.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는 타이밍에 투입하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유소년 지도자 생활을 한 경험은 어린 선수들에게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고 눈높이에 맞는 지도를 가능케 했다.

송강영 동서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는 "유소년 코치와 감독으로 전문성을 키워온 점이 이번 성과를 만든 것"이라면서도 "한 분야에 잔뼈가 굵은 것만으로는 일반화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종합적으로 봤을 때 '비주류 감독의 반란'이라는 평가가 어울린다"고 덧붙였다.

'비주류' 감독의 반란…단점을 장점으로 극복

이 정도의 성적을 거둔 한국 감독은 없었다. 축구계의 '흙수저'이자 이른바 '비주류' 감독이 사상 최고의 성적을 냈다. 바로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아니라는 핸디캡이 오히려 그만의 장점으로 승화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송 교수는 "잘나가던 선수 출신 감독들이 '왜 이것 밖에 못하냐. 이것은 이렇게 해야지'라는 식이라면, 정정용 같은 비주류 감독들은 '이것도 할 줄 아는구나. 그럼 이것도 해보자'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보다 선수가 잘한다는 존중을 기반으로 자존감을 세워주는 '섬기는 리더쉽'의 전형"이라며 "주류 출신 감독들이 우월감을 바탕으로 가르침을 주는 전통적 '지도자'라면, 정 감독은 수평적 관계를 기반으로 앞서 경험하고 공부한 사람의 입장에서 길을 안내하는 '선생님'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선수들은 정 감독을 '정쌤(정 선생님의 애칭)'이라 부른다.

정 감독은 수평적 소통을 바탕으로 자율성과 개성을 살리는 창의적인 축구를 하도록 팀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송 교수는 "'책임은 내가 질테니 너희가 하고 싶은 데로 하라'는 정 감독의 태도가 어린 선수들에게 믿음을 심어준 것"이라며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창조적인 축구가 나온다는 것이 현대 축구의 스타일이고 정 감독이 이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금도 배우는 정 감독…미래는 밝다

▲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0 대표팀이 11일(이하 현지시간) 폴란드 루블린의 루블린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4강전에서 에콰도르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며 응원단에 인사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의 역대급 성적을 설명하는 데 있어 정 감독의 변화무쌍한 전술과 절묘한 용병술도 빼먹을 수 없다. 전반에는 수비에 집중하는 스리백 전형을 쓰고, 상대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에는 포백으로 바꿔 공격에 나서는 전술로 강호들을 잡았다. 또 준결승전을 앞두고 선발 라인업에 변화를 줘 출전 시간이 짧았던 김세윤과 고재현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 투입해 이강인의 체력 부담을 덜어줬다.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후에는 이강인을 빼는 결단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 감독은 선수들에게 포메이션 등이 담긴 전술 노트를 나눠주고, 이를 통해 어린 선수들이 쉽게 전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송 교수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정 감독의 자세도 성적 향상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이런 모습이 선수들에게 자연스레 본보기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현재 한양대 대학원에서 스포츠생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U-20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결승 진출은 포기를 모르는 근성이 쟁취한 기적 같은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이강인'이다. 그가 있어 한국 축구의 장래는 밝다. 그리고 그 뒤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아도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정정용' 감독이 있었다. 우리는 그의 다음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 일단 16일 새벽에 '정정용 매직'을 본 후에.


U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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