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국감, 어떤 기업 대관팀이 잘했나?… '一빽二逃三病'전략

장기현 / 기사승인 : 2018-11-08 09: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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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소환 원천차단…삼성·LG·SK·현대차 '우수'
대리출석으로 절반의 성공…포스코·샘표식품·MP그룹 '보통'
총수 국감 출석…네이버·카카오·KT·bhc·GM대우·오리온 '낙제'

"대관팀은 죽어도 회장님의 국감 출석은 어떻게든 막으려고 노력해요. 사장만 불려가도 내부에서는 난리납니다."

한 기업 대관팀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대관부서 관계자들 사이의 은어인 '一빽二逃三病'에 대해 설명했다. "첫 번째는 빽(Back)을 쓰고, 두 번째는 해외로 도망치고, 세 번째는 아프다는 핑계로 병원에 입원한다"는 뜻이라며 "총수를 국감에 출석시키지 않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식이 동원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관(對官)팀. 국회와 정부 부처, 검찰·경찰·국세청 등의 사정기관을 대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정보 수집부터 기획·전략 수립, 로비까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대관팀은 삼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던 미래전략실로, 미전실은 해체되기 전까지 삼성 전 계열사의 대관업무를 총괄했다.

대관팀은 1년에 한 번 열리는 국정감사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본인이 제기한 이슈와 관련된 기업의 총수급을 증인 또는 참고인 형태로 국감장에 세우려고 한다. 여기서 대관팀의 능력이 발휘된다. 총수나 CEO를 증인 또는 참고인 명단에서 빼내고, 정 안되면 실무책임자로 '급'을 낮춰야 한다.


이를 위해 대관팀은 국감 기간에 해외 출장 등의 일정을 잡아 총수를 비롯한 경영진의 국감 불출석의 변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국회 사무처가 발간한 '2017년도 국정감사·조사 통계자료집'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7년까지 국감에 제출된 538건의 불출석 사유 중 '해외출장'이 155건(29%)으로 가장 많았다. '건강' 상의 이유가 103건(19%)으로 두 번째로 많았고, '업무(13%)', '사법처리 중(13%)', '기타(9%)'가 뒤를 이었다.

 

▲ 삼성을 비롯한 4대 그룹 총수들은 10월 10일부터 20일간 진행된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았다. [문재원 기자]


2018년도 국정감사에서도 기업 총수를 비롯한 CEO의 출석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누가 불출석을 한다'는 비교적 단순한 정보부터, '주요 기업인들의 국감 출석은 국회의원들의 인기를 위한 호통의 대상일 뿐'이라는 속내 복잡한 해석까지 그 논란의 영역과 방향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숨가쁘게 움직이는 '대관팀'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총수 불출석 = 대관팀 성공

지난달 10일부터 20일간 진행된 국정감사에 삼성, LG, SK, 현대차 등 4대 그룹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기업 총수들은 국감에 출석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소환도 되지 않았다. 이처럼 기업 총수급 소환이 눈에 띄게 감소한 데에는 지난해 무분별한 기업인 소환을 막자는 취지로 도입한 '증인 신청 실명제'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증인 신청 실명제'의 도입 자체가 대기업 대관팀의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총수 한 명을 국감에 불출석 시키는 기존 방식에서 총수를 쉽게 나오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제도 자체를 변화시켰다.

 

한 재계 관계자는 "'증인 신청 실명제' 도입으로 의원 이름과 신청 사유를 적게 됐다"며 "의원 입장에서는 기업인을 신청하기 위한 절차가 한층 까다로워 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대기업 총수 중에서 유일하게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포스코 최정우 회장도 출석 하루 전에 증인 명단에서 빠졌다. 국감 출석 3일 전까지 내야하는 불출석 사유서도 제출하지 않고 여야 간사 협의로 증인에서 빠지게 됐다.

샘표식품 박진선 대표, MP그룹 정우현 前 회장 등도 실무진이 대리 출석함에 따라 해당 기업 대관팀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로비 의혹이 불거졌던 샘표식품은 간사 협의를 통해 정종환 총괄본부장이 대신 출석했고, 정 前 회장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 감안돼 증인 채택이 철회됐다.

A기업 대관팀 관계자는 "총수를 국감장에 서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대관팀은 실적을 쌓은 것"이라며 "일단 증인 신청이 들어가면 간사 협의로 증인에서 빼는 작업을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 오리온 담철곤 회장이 26일 종합감사에도 불출석했다. [뉴시스]

 

하지만 오리온의 경우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오리온 담철곤 회장은 지난달 12일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감에 이어 26일 종합감사까지 국감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담 회장을 대신해 출석한 이경재 대표도 노조탑압 의혹에 대해 "모른다"는 답변으로 일관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기업 오너를 국감장에 안나오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관팀의 성공으로 여겨지지만, 오리온그룹의 경우 회장의 불출석과 대리참석한 대표의 '모르쇠'태도로 인해 오히려 여론이 안좋아져 불출석전략이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B기업 대관 관계자는 "이런 결과를 낳을지 알았다면 오리온측은 담 회장을 출석시켰을 것"이라며 "총수의 국감 출석을 막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고 분석했다.

 

오리온 관계자는 “총수의 국감 출석을 막은 사실 자체가 없다”며 “국감에 출석한 이경재 대표도 논란에 충실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 탄압은 해당 소장의 개인 일탈 행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총수 국감행 = 대관팀 실패(?)

IT업계를 대표하는 네이버, 카카오, KT 등의 수장들은 대부분 국감에 출석했다. 네이버 이해진 GIO(글로벌투자책임자)는 지난달 10일 과방위 국정감사에는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했지만, 지난달 26일 종합 국정감사에는 출석해 가짜뉴스와 댓글조작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또한 카카오 김범수 의장도 국감에 출석했다.  

 

▲ 황창규 KT회장과 김범수 카카오 의장 등 증인들이 10월 10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심지어 KT 황창규 회장은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이어 기획재정위원회 국감에도 연이어 출석했다. 이처럼 IT업계 총수급이 줄지어 국감장에 나온 것은 지난 6월 일명 '상품권깡'을 통해 99명의 국회의원을 불법후원한 혐의를 받았던 황 회장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C기업 대관업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총수의 국감 출석은 해당 기업의 대관팀이 본연의 업무에 실패했음을 의미한다"며 "이번 과방위 국감이 높은 출석도를 보인 것은 '황 회장 효과'라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bhc그룹 박현종 회장도 3대 치킨프랜차이즈 대표로는 처음으로 15일 열린 정무위원회 국감에 출석했다. GM대우 카허 카젬(Kaher Kazem) 사장도 한 번의 불출석과 민주평화당 조배숙 의원의 기자회견 끝에 결국 국감장에 얼굴을 드러냈다. 이 두 기업에 대해서는 대관팀의 실패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국감 출석 여부로 대관팀의 업무를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영란법을 비롯한 제도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관 업무도 일상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D기업 대관팀 관계자는 "총수급이 국감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대관팀이 실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옛날 대관팀은 의원실 관계자와 술자리를 통해 친분과 네트워크를 쌓는 방식이었다면, 요즘 대관팀은 의원실이 요구하는 자료를 소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U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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