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라쿤카페? 실상은 '동물학대' 카페

강혜영 / 기사승인 : 2018-12-18 17: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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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내부 사육환경 야생동물의 개별적 특성 고려 안해
사람 손길 피할 은신처 부재로 정형행동·무기력증 보여
관련 법·제도 없어…전문가 "동물보호 인식 개선 필요"

라쿤 한 마리가 구석에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방문객들은 지친 라쿤의 꼬리를 잡아당기고 몸 여기저기를 찔러댄다. 반응이 없자 미어캣 무리로 눈을 돌린다. 미어캣들은 굴을 파려는 듯 콘크리트 바닥을 박박 긁는다. 이용객들은 귀엽다며 인공사료를 준다. 알바생은 혼자서 대형견과 라쿤, 고양이 3마리, 미어캣 8마리를 돌보면서 계산, 음료 서빙, 이용 안내를 힘겹게 처리하고 있다.

 

▲ 서울 시내에 있는 한 야생동물카페에서 이용객이 라쿤의 꼬리를 잡아당기고 있다. [강혜영 기자]

 

서울에서 운영 중인 한 야생동물카페의 모습이다. 야생동물을 사육·보관·전시하는 상업시설들은 동물에게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사실상 '동물 학대' 카페다. 그러나 이를 규제하는 법이 없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최근 동물카페 운영금지를 골자로 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동물보호 인식 개선 없이는 법망을 피해서 유사 시설들이 또다시 생겨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생태계적 요구 무시한 사육 환경

동물 체험이라는 상업적 목적을 내건 야생동물카페는 철저히 사람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카페 입구에 부착된 안내 사항은 방문객의 편의를 위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동물에 대한 이해를 돕는 내용은 없었다. 카페 내부 역시 이용자들이 음료수를 마실 수 있도록 비치된 의자와 테이블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야생동물의 습성을 고려한 환경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바닥재, 은신처 등 적절한 사육 환경조차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에 따르면 라쿤은 나무에 오르는 습성을 지녀 사육 시설에 수목시설과 수직 구조물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나 상가건물 내부에서 운영되는 카페에 라쿤이 올라탈 만한 나무를 들여놓기에는 공간이 턱없이 좁았다.

미어캣의 경우 흙을 필요로 한다. 동물권모임에서 활동 중인 녹색당 당원 이상희씨는 "미어캣은 발로 땅을 파헤쳐 먹이를 찾을 뿐만 아니라 땅을 파고 숨어야 하는데 카페 바닥은 타일이나 코팅된 시멘트 재질로 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카페 방문 당시에도 미어캣은 앞발을 이용해 바닥을 계속해서 파는 듯한 반복 행동을 보였다.

방문객들은 야생동물을 향해 쉴 새 없이 카메라를 들이밀고 만지기를 반복했다. 알바생은 이를 저지하지 않고 오히려 "엉덩이 쪽을 만져야 안 문다"고 설명했다. 야생 동물이 방문객의 접촉을 피해 숨을 수 있는 은신처는 없었다.

 

라쿤은 사람을 피해 의자 뒤나 택배 상자가 쌓여 있는 창고에 몸을 숨겼다. 쉴 수 있도록 마련된 구조물마저 사람 손이 닿아 무용지물이었다. 미어캣은 좁은 사육장 내에서 케이지 사이사이와 담요 밑으로 숨기 바빴다.

 

▲ 서울 시내 한 야생동물카페에서 라쿤이 방문객들의 손길을 피해 상자 사이로 숨고 있다. [강혜영 기자]

 

이런 환경은 동물 학대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김태환 동물권단체 케어 언론홍보 PD는 "동물의 개별적인 습성과 생태를 고려하지 않고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하지 않는 시설들은 생명의 역동성을 저하한다"며 "이는 근본적으로 동물에게 해가 되는 동물 학대 문화"라고 지적했다.


개, 고양이, 라쿤 한 공간에…전문 인력도 없어


반려동물과 야생동물종을 분리 사육하지 않는 모습도 포착됐다. 대형견이 라쿤과 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수시로 라쿤을 괴롭히는 아찔한 장면도 연출됐다. 이용객 장모(19)씨는 "라쿤이 덩치가 큰 개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미어캣은 별도의 작은 공간에서 생활했지만, 라쿤과의 접촉으로 부상을 입기도 했다. 알바생은 "사람들이 미어캣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미어캣 사육장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데 라쿤이 이 틈을 타서 미어캣을 물어버렸다"고 말했다.

 

전문 인력 역시 없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에 따르면 상당수의 야생동물카페에서 알바구직 사이트를 통해 구인공고를 수시로 내고 있어 비정규 단기고용이 다수일 것으로 추측된다. 동물원에는 전문 수의사와 관련 교육을 받은 노동자가 일하는 데 비해, 야생동물카페의 동물들은 기본적인 동물복지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사람 손길 피할 은신처 부재…무기력증, 정형행동 보여 

 

다른 곳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웨어에서 지난해 11월 발표한 ‘야생동물카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에서 운영되는 동물카페 9곳 중 방문객의 접촉이나 시선을 완전히 피해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처를 제공하는 곳은 단 1곳뿐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체험에 동원되는 야생동물들은 정형행동을 보였다. 반복적으로 점프를 하거나, 쳇바퀴를 계속 돌리는 등의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김태환 PD는 "야생동물의 정형행동은 동물의 능동성이 보장되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행동풍부화와 반대되는 개념"이라며 인위적 환경에서 휴식할 장소와 시간조차 없는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나타나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상당수의 동물은 무기력증도 보였다. 동물 카페 9곳 중 6곳의 동물들이 사람들의 접촉을 피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 무기력하게 있는 모습이 관찰됐으며, 이들 동물은 방문객이 발로 차는 등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또 동물카페 9개 업소 중 8곳이 2종 이상의 동물을 같은 공간에서 사육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태환 PD는 "개와 고양이도 성격이 맞지 않는 경우에 분리해서 키워야 하는데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문가 없이 여러 동물을 한 곳에서 키우면 언제든지 우발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법제 미비…동물 학대 인식 개선도 시급

현행법으로는 야생동물카페 관리가 어렵다.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동물보호법, 야생생물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 동물 보호에 관한 어떤 법도 야생동물카페를 규제하고 있지 않다.

최근에서야 '라쿤카페 금지법'이 발의됐다. 지난 8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득 의원이 동물원이 아닌 시설에서 야생동물의 전시를 금지하는 내용의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해 상임위에 접수된 상태다. 어웨어에서는 통과 촉구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여 현재까지 1700여명이 참여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적 규제는 한계가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동물 카페의 가장 큰 문제로 "야생동물을 만지고 체험하는 것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꼽았다. 동물카페가 사라져도 수요가 있는 한,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계속해서 동물을 수단으로 돈을 벌려는 상업 시설이 생겨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이 대표는 "동물 복지 인식 향상이 필요하고, 동물을 전시하고 학대하는 시설을 이용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며 소비자가 경각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이상희씨 역시 "동물 카페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물을 좋아해서 가는 경우가 많다"며 "도시에서 야생동물과 공존하고 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통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UPI뉴스 / 강혜영 기자 kh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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