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도, 평생직장도 아니오…2030 'N잡러' 전성시대

황정원 / 기사승인 : 2019-02-25 11: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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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 사라지고 주 52시간제로 부업 갖는 직장인 늘어
본업 외에 다양한 일과 취미활동 병행하며 자아실현 추구

▲ 돈도 벌면서 개인의 취미나 흥미를 최대한 살리려 노력하는 'N잡러'가 늘고 있다. [셔터스톡]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는 김지안(가명·36) 씨는 디자인 일을 병행하는 'N잡러'다. 명함이나 로고, 포스터 리플렛 등 디자인 의뢰가 들어오면 퇴근 후나 주말에 시간을 내 부업을 한다. 김 씨는 부업으로 생기는 여분의 수익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일부러 더 일을 하는 편이라고 했다. 김 씨는 "만약 기회가 주어지고 능력이 된다면 주변에서 누구나 N잡을 하려고 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학가에 위치한 서점에서 매장관리를 하고 있는 이동민(가명·31) 씨는 웹매거진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 보니 여가시간도 줄고 체력적으로 다소 벅차지만 온전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즐겁다고 했다. 이 씨는 "기존 직장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만족감들을 부업인 웹매거진을 운영하며 비로소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뉴미디어 관련 설명회에서 2차례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부업인 웹매거진이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 수익이 나기 시작하면서 전업도 생각하고 있다.

컨설팅회사 경영기획팀 과장인 김해인(가명·34) 씨는 회사에서 회계업무와 콘텐츠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예전부터 글 쓰는 일을 꿈꿔왔다던 김 씨는 수입 측면에선 크게 도움이 되진 않지만 자아실현을 위해 부업으로 일본어 책 번역을 해왔다. 하지만 두 가지 일을 병행하다보니 건강이 나빠져 현재 번역일은 잠시 내려놓고 있다.

직장인 황아현(가명·28) 씨는 주말이면 북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입사 1년 5개월째인 황 씨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부가적인 수입을 위해서가 아닌 취미생활로 하고 있다. 황 씨는 "주말에 5~6시간 정도 일하기 때문에 수입은 한 달에 20만 원 정도에 그친다. 돈 목적이 아니라 평소에 카페에서 한번 일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취미를 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한 직장에서만 돈 벌 필요 없어"…2030세대 'N잡러' 확산

다양한 일과 취미를 병행하며 생계유지나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이른바 'N잡러'가 늘어나고 있다. 1980~200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 즉 20·30대 젊은 층에서 주로 나타나는 N잡러는 하나가 아닌 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주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느냐'가 자신을 설명한다는 '멀티-커리어리즘(Multi-careerism)'에 기반한다.

일부 N잡러들은 기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볍게 해오던 부업을 아예 본업으로 삼기도 한다. 디자인 회사에 다니던 정서희(가명·32) 사진작가가 바로 이 경우다. 정 씨는 대학시절부터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것이 취미였다. 친한 선배 결혼식 사진과 영상을 찍어 선물로 준 것이 계기가 돼 부업으로 웨딩 촬영을 시작하게 됐다. 웨딩 촬영 의뢰는 인스타그램과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받았다. 1년 뒤 부업이 점차 자리를 잡자 정 씨는 3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촬영 일을 주업으로 삼았다. 정 씨는 "연간 수입을 따져봤을 때도 직장생활 할 때보다 낫다"며 전업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기업 홍보 영상 작업도 병행하며 관련 직종의 프리랜서들을 모아 사업 규모를 더욱 키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2017년 2월 발표한 '부업을 하는 사람들의 현황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 중 부업을 하고 있는 사람은 2016년 기준 40만6000명에 달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직장인들을 고려하면 실제 부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회만 된다면 부업에 뛰어들겠다'고 자처하는 직장인들도 많다. 2017년 6월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98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77%가량이 '부업을 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전에도 '투잡'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 편의점 등 파트타임 일자리를 여러 개 갖는 저임금·임시직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의 적성이나 관심사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는 어려웠다.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N잡러는 경제적 소득 외에도 본업에서는 충족할 수 없는 개인의 자아실현을 중시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생계유지를 위해 여러 곳에서 일을 해야 했던 과거의 투잡족과는 달리 하고 싶은 여러 개의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 이들은 직장보다 나 자신을 중심에 둔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진 N잡러라는 새로운 부류가 등장했다"며 "N잡러는 생존형 업무를 병행하는 투잡족과 달리 본업에서 채워지지 않는 자아실현을 위해 관심 있는 분야에 도전하는 경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해인 씨는 "평생직장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특정 분야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보단, 관심사를 넓히고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보는 '제너럴리스트'가 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황아현 씨도 "직장인들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다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맞는 건지, 잘하고 있는 건지, 이것 말고는 하고 싶은 일은 없는지 등 자아실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 직장인들이 퇴근 후 대형서점을 찾아 자기계발에 힘쓰고 있다. [뉴시스]


평생직장·평생직업 점차 사라져…개인 취미나 적성 살린 부업 인기

N잡러는 고용 안정성이 악화돼 수십 년간 하나의 안정된 직장이나 분야에 몸담는 평생직장·평생직업 개념이 사라지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노동자 셋 중 한 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청년세대는 셋 중 두 명이 첫 직장을 비정규직으로 시작한다. 김지안 씨는 "직장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부업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주변에도 많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박동규(29) 씨도 "근래에 회사 선배들을 보면 정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 제2의 직장에 대해선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필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6년 고용보험 취득자 데이터베이스와 고용보험 상실자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2005~2013년 고용유지율을 비교한 결과 청년층 고용안정성이 크게 떨어졌다. 2005년 청년층의 6개월 고용유지율은 61.1%, 1년 고용유지율은 43.1%였지만, 2013년에는 6개월 이상 고용유지율이 55.2%, 1년 이상 고용유지율은 39%로 줄었다.

아울러 엄청난 노력으로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적성과 다른 현실을 체감하고 '평생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이직이나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첫 직장 경험자 중 입사 1년 이내 이직은 36.2%에 달했다. 이는 사회 초년생들의 직업 만족도가 낮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층(15~29세)의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도 2018년 5월 기준 1년 6개월에 불과하다. 첫 일자리를 그만둔 청년들은 그 이유로 보수, 근로시간 등 근로여건 불만족(51%)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일부 N잡러들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하거나 N잡을 갖는 요인이 기존의 보수적이고 위계질서가 강한 회사문화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서희 씨는 "이전에 직장 다닐 때는 상사의 비위를 맞춘다든지, 내 일을 다 끝내도 업무 외에 사회생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지금은 모든 시간을 온전하게 나에게 맞춰 쓸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N잡러는 개인의 취미나 흥미를 최대한 살리려 노력한다. 글쓰기나 디자인, 강연 외에도 최근엔 유튜브와 팟캐스트 개인 방송이 급부상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이 활성화되면 광고와 조회 수를 통한 수익 등 부수입을 얻을 수 있어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으로 직장인들 사이에서 관심을 모으는 콘텐츠로 브이로그(VLOG)가 있다. 브이로그는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영상 콘텐츠를 말한다. 회사원, 간호사, 변호사 등 다양한 직군의 일반인이 출근부터 퇴근까지 자신의 하루 일상을 담아낸다. 이러한 평범한 영상의 조회 수는 무려 100만을 넘기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블로그마켓 등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개인이 추천하거나 기획한 상품을 판매하는 일명 '1인 마켓'도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 비해 물건 판매의 진입장벽이 낮아짐에 따라 누구나 마켓을 열 수 있다는 점에서 직장인들 역시 몰리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며 1인 마켓을 운영하는 백모(29) 씨는 "주변을 보면 직장을 다니면서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등으로 사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면서 "점차 개인이 자기 일을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없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N잡은 우리 사회 앞에 놓인 불가피한 현실"

전문가들은 온라인 공간이 넓어지면서 새로운 자영업 형태가 나타나고,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사람들이 다양한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설명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한 기술변화와 노동시간 단축이 N잡러가 나타나게 된 주요 배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이어 "평생직장과 평생직업에 대한 젊은 층의 사회적 기대가 이전보다 옅어졌다"면서 "무엇보다 회사조직에 몸담지 않아도 정형화되지 않은 자기만의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젊은 세대에서 점점 확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내 기업 대부분에서는 이러한 N잡을 반기지 않는다. 사규로 '영리활동 겸업'을 금지하는 등 부업을 금지하는 회사가 여전히 많은 실정이다. 현행 우리나라 노동법상으론 한 사람이 정규직으로 2개 직장에 소속될 수 없다. 인터뷰를 진행한 N잡러 중 자신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직장에 밝힌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본업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분위기를 회사에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앞으로 N잡러가 보편적인 유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정원 한국창직협회장은 "기술 발전 속도가 급격해지면서 10년 동안 일어난 일들이 이제는 1년 아니면 한 달 안에도 일어난다. 그만큼 직업세계의 변화도 빨라졌다"면서 "이제는 한 직무 가지고는 평생 먹고 살기 힘들어져 직장인들도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N잡은 우리 사회 앞에 놓인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UPI뉴스 / 황정원 기자 hjw@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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