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복의 타박타박 지구촌] 신기한 빙하 트레킹…낯선 경험에 짜릿함

/ 기사승인 : 2019-09-02 1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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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 엘 찰텐

우리는 일상에 지쳤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냥 떨치고 나서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 먹었다고 다 할 수 있던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녔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으려 한다. 새삼스런 설렘에 나 자신 다시 길 위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칠레 쪽 파타고니아 평원에서 자연의 웅장함에 압도당한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동쪽 파타고니아로 길을 잡는다. 이제 칠레를 떠나 아르헨티나로 입국하는 것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과 경계를 이루는 아르헨티나 쪽 파타고니아는 또 다른 자연이 남다른 위용을 갖추고 의연하게 사람들을 맞는다. 로스 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Parque Nacional Los Glaciares)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페리토 모레노 빙하의 모습.


이름처럼 빙하가 대표 볼거리인 이곳은 전체 면적이 7269㎢에 이른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으로 1937년에 지정되었으며, 1981년에는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크게 북쪽과 남쪽으로 나눠지는데, 남쪽에서는 주로 빙하를 보게 된다. 이곳의 빙하는 남극, 그린란드, 아이슬란드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특히 보통 빙하는 해발 2500m에서 형성되는데, 이곳은 남극에 가까운 위도여서 1500m에서 시작하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 자라고 있다. 유명한 것으로는 페리토 모레노(Perito Moreno) 빙하, 웁살라(Upsala) 빙하, 스페가치니(Spegazzini) 빙하 등이 있다. 


공원을 찾으려면 먼저 아르헨티노 호수가에 있는 마을 엘 칼라파테(El Calafate)로 간다. 시내는 번화하지 않지만 빙하 관광의 출발지여서 투어 예약을 할 수 있다. 소고기, 양고기 등 전문 식당도 많고 민속 공예품을 파는 상점은 꽤 규모가 크고 상가도 예쁘게 조성돼 있어 시간을 보내기 좋다.

 
피레토 모레노 빙하에서 미니 트레킹 

 
빙하를 보는 방법으로는 크루즈선을 타고 가까이 가서 빙하를 구경한 뒤 1시간 남짓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직접 걸어보는 미니 트레킹이 있는데 65세까지만 참가할 수 있다. 또 빅아이스 트레킹은 웁살라 빙하를 거의 7시간이나 걷는 것으로 18세에서 50세까지만 참가할 수 있다. 그러나 체력이 약하거나 트레킹을 할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산책로로 이어진 전망대가 잘 만들어져 있어 여유만 있으면 구경하는 데 불편하지는 않다.

 
계획대로 페리토 모레노 빙하 투어에 나섰다. 이 빙하는 길이가 30km, 폭 5km에 높이가 170m라고 한다. 그러나 수심 위로 솟아나온 부분은 평균 70m 정도로 물밑 부분이 더 길다고 한다. 배가 움직이자 멀리 커튼처럼 쳐진 벽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자 새하얀 얼음덩이들이 모여 막대처럼 열을 지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게다가 하얀색들이 겹친 틈에서 새롭게 파란색이 솟아 삐져나오고 있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햇빛이 반사되어 생기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눈앞에서 직접 보고 있자니 신비로운 마술사가 일부러 재주를 부려 펼쳐놓은 것처럼 색상을 직접 확인하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이다. 저 새하얀 뭉텅이들 속에서 전혀 다른 파르스름한 빛이 나오다니 말이다. 그러다 천둥 치듯 우르릉하는 큰 울림이 갑자기 고막을 때린다. 놀라서 바라보니 빙하가 깨져서 저절로 떨어지는 소리란다. 정말 빙하가 녹으면 수면이 올라간다는 말이 실감 난다. 저렇게 거대한 규모의 방하가 깨져 바닷물에 녹으면 그만큼 물의 양이 늘어나지 않겠는가. 


▲ 트레킹을 끝낸 뒤 가이드가 얼음 넣은 위스키를 만들고 있다.


배에서 내리자 오두막 같은 곳에서 진행요원들이 앉아 한 명씩 부른다. 다가가자 의자에 앉히고 일일이 아이젠을 신긴 뒤 정성스레 꽉 조여 묶는다. 아이젠은 상당히 무겁고 생긴 것도 투박해 잘 걸어지지 않아 갑자기 불안해진다. 얼음 위 트레킹은 낯설고 신기하긴 하지만 그만큼 안전도 걱정된다. 


대략 15명 정도를 묶고 안내인은 둘이 붙는다. 앞에선 가이드가 일행을 이끌고 뒤쪽 가이드는 사람들을 보살피며 손도 잡아주고 위험한 곳을 지날 때 일러주기도 한다. 발을 내디디자 솔직히 공포가 밀려온다. 바닥의 얼음이 그대로 느껴지면서 무섭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찬 기운이 몰아쳐 옷깃을 여미게 하고, 또 햇빛이 내리비치면 빙하가 발밑에서 녹아버리진 않을까 불안하기도 했다. 군데군데 깊은 크레바스를 만나면 절로 몸이 움찔거려져 발길을 내뻗는데 주저하기도 했고, 곳곳에 움푹 팬 구덩이에 고인 물빛이 너무도 짙고 환상적이어서 잠깐 환호하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빙하를 부숴 얻은 얼음에 위스키를 따라 한 잔씩 건넨다. 초콜릿을 안주로 독한 술을 넘기자 식도가 짜릿하게 반응하면서 정신이 확 든다.

꽃피듯 떠오른 피츠로이 붉은 봉우리 인상적 


이제 북쪽으로 발길을 돌려 세계 5대 미봉 중 하나로 꼽히는 피츠로이(3405m)와 세로 토레(3128m) 등을 만나러 간다. 엘 칼라파테에서 220km 떨어진 작은 마을 엘 찰텐(El Chaltén)은 '하이킹의 수도'라고 불릴 만큼 트레킹 코스가 여러 개 있어 기호에 따라 선택해서 즐길 수 있다. 


마을에 들어서자 '찰텐' 산군(山群)에 속하는 뾰족뾰족한 봉우리들이 멀리 나타나는데, 그중 가장 높은 주봉이 피츠로이(Fitz Roy)다. 찰텐이라는 이름은 원주민 말로 "연기를 뿜어내는 산"이라고 하는데, 산 정상에 항상 걸려 있는 구름이 마치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듯해서 붙였다고 한다. 또 피츠로이는 다윈의 비글호를 운전한 선장의 이름을 딴 것으로 찰텐 산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말한다. 그곳까지 직접 오르는 일은 전문 등산가가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하므로 비교적 가까운 곳까지 올라가 조망하는 코스를 많이 택한다. 


피츠로이 조망 코스 외에도 카프리 호수까지 다녀오는 약 3시간 내외 코스는 중간에 피츠로이를 볼 수 있다. 또 5시간 정도 걸리는 토레 호수 코스는 어렵지는 않으나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어서 일정 조절을 잘해야 한다. 피츠로이 대신 세로 토레와 주변 봉우리들을 볼 수 있다.


▲ 시간에 따라 변하는 피츠로이 봉우리는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피츠로이를 보기 위해 새벽 4시에 모여 밖으로 나서니 어둠이 확 덮쳐 온다. 공원 입구까지 걷자니 인가에서 낯선 발걸음을 의식한 개들이 일제히 소리를 높인다. 사방은 어둠으로 둘러싸여 틈이 없는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날씨는 예상대로 저절로 오들오들 떨게 만든다. 손전등과 헤드랜턴에 의지해 앞사람을 따라 조심스레 발을 옮긴다. 천천히 걸으면 추위가 걷잡을 수 없이 달려들기에 발을 빨리 놀릴 수밖에 없다. 1시간 정도 걸어 전망대에 왔으나 해는 등장할 기미가 조금도 없다. 피츠로이를 보려면 왕복 10시간을 걸어야 한다.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오면서 추위는 다소 누그러지는 듯했지만 여전히 몸은 떨린다. 선 자리에서 팔짝 뛰기도 하고 몸을 춤추듯 흔들어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춥다. 그래도 시시각각 변하는 피츠로이의 모습은 경이롭다. 주위에 낮은 산들을 거느리고 우뚝 솟은 봉우리가 햇빛을 받아 점차 색깔이 변하면서 커다란 꽃봉오리가 열리는 듯하다. 옅은 주황빛이 점점 짙어져 오렌지처럼 붉어진다. 파리 한 마리 붙어 있을 수 없이 가파르게 미끄러져 내린 봉우리는 그야말로 45도가 넘는 경사로 좀처럼 사람의 접근을 허락할 것 같지 않다.

 

▲ 외나무 다리로 연결된 엘 찰텐의 등산로.


총 10km 여정에서 9km까지는 산길이라도 거의 평지 수준이지만 마지막 1km는 전혀 다르다. 불쑥 급경사 오르막이 나타나고 길에는 잔돌도 많아 자칫하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어렵게 오른 만큼 보람은 크다. 해는 떠올라 날씨가 따뜻해지고 봉우리 뒤에 숨어있던 호수가 자태를 드러낸다. 피츠로이는 여전히 멀지만 수면에 비친 봉우리가 가깝게 다가온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구경한 뒤 늦은 걸음을 재촉하던 하산길에서 프랑스인 커플의 사진을 찍어준 뒤 아뿔싸 길을 잘못 들었다. 한참을 방황하다가 어렵게 표지판을 발견하고 보니 에정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다. 남은 거리는 8km 정도. 평지를 걷듯 1시간에 4km를 걷지 않으면 영락없이 낙오자가 된다. 마음이 바빠져 거의 달리다시피 길을 줄여 마침내 마을이 보이자 맥이 쑥 빠진다. 발바닥에는 감각이 없다. 피츠로이는 붉은빛으로 아름다웠지만 나 개인은 탈진한 탓에 하얗다 못해 창백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글·사진 남인복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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