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는 간소하게, 제철 음식 올리는 것"

장기현 / 기사승인 : 2019-09-09 15: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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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순권 국립민속박물관 학예관
'홍동백서·조율이시'도 편의상 만든 기준
차례상 간소화·생략은 자연스러운 현상

"최근에 '딸만 있는 집인데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싶다', '양가 부모를 함께 모시고 싶다'는 내용의 문의를 받았어요. 차례에 대한 인식이 정말 빠르게 바뀌고 있어요."

20여 년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학예관로 근무하고 있는 최순권(53) 학예연구관의 말이다. 역사학을 전공한 최 연구관은 박물관에서 '제례'(제사 지낼 때의 예절)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현장 조사의 일환으로, 전국 유명 종가집의 제사는 안 가본 곳이 없다. 최근에는 중국으로 눈을 넓혀 조선족의 제사도 연구하고 있다.


최 연구관은 "최근 빠르게 변하고 있는 차례 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또한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의 차례상 규칙은 편의상 만들어진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친척들을 만나러 가는 추석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 연구관을 만나 '추석'과 '차례'의 의미와 변화, 그리고 오해에 대해 들어봤다.

▲ 최순권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U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추석과 차례의 본래 의미는

"추석은 추수를 앞두고 수확물을 조상님에게 신고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어르신이 먼저 수저를 드시는 것처럼 햇과일, 햅쌀 등을 가지고 조상님께 먼저 보여드리는 것이다. 차례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에게 문안 인사드리는 것처럼 매달 초하루, 보름, 명절에 간략하게 인사드리는 것이다.

예를 행하는 것은 조선 초기 '주자가례'라는 중국의 예서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풍습으로 자리 잡은 것은 임진왜란 이후라고 보면 된다. 19세기로 넘어오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20세기 넘어오면서 봉건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기존 제사가 허례허식이 심하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설과 추석으로 명절이 한정됐다. 이런 방식이 관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공휴일로 지정됐다.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이날만큼은 제대로 조상을 공경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긴 것이다."

-현대 차례는 어떻게 바뀌고 있나

"조선시대 초기에는 재산분배도 평등했고 제사도 '윤회봉사'라고 해서 남녀·장차 상관없이 돌아가면서 지냈다. 이것이 임진왜란 이후 남자·장자 중심의 제사가 이뤄지고, 자연스럽게 상속도 이들에게 쏠리는 현상이 시작됐다. 현재는 다시 재산도 똑같이 나누는 상황에서 제사도 남자·장자 구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일제강점기 때 정한 예에 대한 규칙이 현시점에서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사를 4대 조상에서 2대 정도로 줄인다거나 자정에 하던 것을 저녁에 한다거나 아버지·어머니 제사를 합해서 하는 등의 규칙이 2000년대 들어오면서 행해지고 있다."

-차례에 대한 오해는 무엇이 있나

"가장 대표적인 오해가 '성대하게 차려야 한다'는 것. 원래 차례상은 많이 차릴 수가 없다. 원칙적으로 사당에서 차례를 진행할 때 작은 상을 이용하는데 많이 올릴 수가 없다. 기본 음식인 '주과포'(술, 과일, 육포)에 시절 음식을 올리면 그 뿐이다. 간소하게 그때 나는 음식을 올리는 것이 맞다.

일제강점기 의례준칙이 바뀌면서 차례가 설과 추석에만 지내게 법제화 되면서 날짜가 줄어들고, 그때 제사와 차례가 혼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는 집안 어른 두 분만 모시는 게 아니라 4대까지 모시는 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음식이 많이 필요해진 것일 수도 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도 고민해봐야 한다. 어떻게 배치해야 한다는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편의상 만들어진 기준일 뿐이다. 홍동백서는 어떤 순서로 놓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덜기 위해 만든 것이고, 조율이시는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대체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법칙은 사실상 60년대 이후로 있었던 '제사붐'에 따른 결과물로 봐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다른 게 자연스럽다. 지역에 따라 나는 음식이 다르고 집안에 따라 조리법이 다른데 일률적인 법칙이 존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차례를 지내지 않거나 간소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조선 후기에도 차례상 간소화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율곡 선생도 당시에 간소화를 주장했다. 설·단오·추석·동지. 4대 명절에는 산소에 가서 묘제를 지내는 게 원칙이었지만, 율곡 선생은 설과 동지에는 사당에서 차례만 지내자고 조정하기도 했다.

차례는 간소화 되더라도 유지될 것으로 본다. 설이나 추석은 공휴일로 지정돼 있고, 대체공휴일도 있다. 가족이 회합한다는 명분이 큰 역할을 한다. 제사가 세대와 성별을 넘나들면서 합제화가 이뤄져 한날에 모시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그 한날이 가족이 다 모일 수 있는 명절이다. 이날을 존재하는 한,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 최 연구관은 5일 UPI뉴스와 만나 "차례는 가족 간의 만남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픽사베이]


-올바른 차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례'라는 이름이 주는 압박감 때문에 너무 격식을 차리는 것 같다. 차례는 간단하게 예를 표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특히 현대의 차례는 가족이 모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 만남 자체가 의미가 있다. 현대사회의 관계성 회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음식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는 음식을 각자 해온다거나 사오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부분이다. 차례는 정해진 원칙에 지나치게 얽매이기보다는 조상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간소하게 준비하면 된다. 놀러간다는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참여하면 좋을 것 같다."


U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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