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소주성' 긍정적이나 재정확대가 더 효과적"

오다인 / 기사승인 : 2019-09-09 14:41:59
  • -
  • +
  • 인쇄
2019 KSP 성과공유 컨퍼런스 기조연설차 방한
"한국, 경기부양 재정 여력 있다"
"디플레 빠지지 않도록 과감한 조치 필요"
▲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2019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성과공유 컨퍼런스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한국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저임금을 어느 정도 인상하면 소비자 지출이 늘어 경제에 좋은 효과가 나타난다"면서 "아주 많이 인상하더라도 부정적인 영향은 거의 안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보다는 공공 지출을 강조했다. "세계 경기에 대한 전망이 어두워지는 시기에는 최저임금 인상 보다 공공 지출을 늘리는 경기 부양 정책이 훨씬 더 큰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재정 확대 필요성을 강조한 것인데,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은 재정적 요인을 고려할 때 경기 부양을 위해 충분한 여력이 있어 보인다"면서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도록 과감하고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2019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성과공유 컨퍼런스에 참석해 '탈세계화 시대의 글로벌 생산성'을 주제로 기조연설하며 이 같이 제안했다. 기획재정부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등이 참석했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크루그먼 교수는 일본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따른 한국 정부의 대응전략, 적극적 재정정책의 효과, 소득주도성장 정책, 아시아발 경제위기 가능성 등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한국이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소재 국산화·자립화를 천명한 것에 관해선 "자국을 보호해야 하는 조치로 (소재 국산화로 글로벌 공급망에서 빠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경제활력 제고를 목표로 내년도 예산을 확정 편성한 것과 관련해선 "지금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글로벌 경제를 볼 때 단지 장기적인 관점만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됐다"고 했다. 이어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도록 과감하고 즉각적인 조치” 필요성을 언급했다. 공공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2019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성과공유 컨퍼런스에 참석해 본지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2019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성과공유 컨퍼런스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추세에 관해서는 "국제정세 등 경제성장 예측을 방해하는 불확실성 요소가 매우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기업들 입장에선 투자를 보류하고 관망세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또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고 있는 상황일수록 정책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중요해진다"고도 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발 경제위기 가능성에 관해선 "중국은 신용을 근거로 경제성장 드라이브를 걸어왔다"며 "정부의 개입으로 경기 후퇴를 저지하는 것도 언젠가는 끝날 수밖에 없고 이번 무역분쟁 자체가 티핑포인트(전환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자 질의·응답에 앞서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경제대국은 아니지만,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선 미·중과 교역을 계속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을 확장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비결은 생산성의 증대이고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지식"이라면서 "세계화, 즉 글로벌 공급망의 확장은 단순히 비용 절감의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확산을 낳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교역에 있어 지식의 이전은 부차적인 효과지만, 이는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경제발전을 가속화하는 데도 기여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이어 "한때 미래의 경제대국으로 찬사받았던 브라질은 글로벌한 지식을 채택하지 않은 채 폐쇄적으로 남은 결과 (경제 위기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과 기술 이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60년 전 생계유지조차 어려웠던 국가에서 현재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초(超)글로벌화(Hyper-globalization)가 끝나고 있다는 증거도 분명하게 나타나는 중이라고 언급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세계 교역량을 보면 최근 글로벌화가 둔화하는 추세로, 계속해서 확대되던 글로벌 공급망이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글로벌화가 끝없이 이어질 순 없지만, 글로벌화의 중단은 지식 이전의 중단을 의미하므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지금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철강 산업과도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이런 때 한국처럼 작은 나라들은 미국, 중국과 계속해서 교역하면서 글로벌 경제에 최대한 편입돼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또 "지금까지 글로벌 공급망의 진보와 발전은 비용 절감이라는 간단한 원리에 근거해 발생했지만, 이를 통해 우연하게 얻어진 지식과 기술의 국제적 확산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법이 없다"면서 "이젠 가치 있는 지식의 이전과 공유를 정책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금과 같이 민간 투자 기회가 많지 않은 때는 절망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공공 투자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민간 투자가 메우지 못하는 부분을 메워줘야 한다"면서 "글로벌 공급망은 과거에 지식과 기술을 빠르게 확산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정책적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가치를 발휘할 때"라고 부연했다.


● 폴 크루그먼은.


2013년 유진 파마 시카고대 교수의 노벨경제학상 수상 소식에 혀를 차는 이들이 꽤 있었다. 역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당시 프린스턴대 교수도 그 중 하나다. 크루그먼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파마에게 상을 주는 방법을 찾아낸 노벨위원회를 존경해야 한다"고 비꼬았다.


일찍이 크루그먼의 비판은 신랄했다. 그의 눈에 파마는 '거짓말을 멈추지 않는 엉터리'였다. 직접적 표현은 아니지만 압축하면 그렇다. 그 해 4월 국내에 번역·출간된 저서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End this depression now!)에서 파마 교수를 '상위 1%를 위한 경제학자'로 묘사했다.


크루그먼이 실랄하게 비판한 유진 파마는 금융경제학의 거장으로 통한다. 금융경제학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뗄 수 없는 관계다. 금융규제 완화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위기의 길을 텄다. 유진 파마의 ‘효율적 시장 가설’에서 버블(거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버블 걱정 없는 파마의 '완벽한 시장'에서 금융파생상품은 확대 재생산되며 버블을 키웠고 마침내 폭발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가설이 현실에 들어맞지 않았으면 폐기처분하거나 적어도 수정하는 게 옳지만 파마 교수는 그대로였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여전히 "버블은 없으며 금융규제 완화 이후에 놀라운 성장의 시대가 이어졌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크루그먼의 표현) 떠들어댄다.


크루그먼은 저서에서 "위기가 터졌을 때 경제학자들이 종교적 싸움으로 덤벼든다"고 개탄했다. "그럴수록 경제학자는 해결사가 아니라 스스로 문제의 일부가 될 뿐"이다.



UPI뉴스 / 오다인 기자 odi@upinews.kr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핫이슈

만평

2020.7.11 00시 기준
13373
288
12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