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에포크'를 위한 시간의 반추…이소 연작 화제

이성봉 / 기사승인 : 2019-09-20 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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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각 페인팅의 이미지즘으로 주목받는 이소 작가
개인전 '벨 에포크' 아트플러스갤러리 29일까지
▲ ▲ 서울 논현동 아트플러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소 작가의 '벨 에포크' 전시회


현대문명은 화려하게 진화하는 반면 ‘나’ 자신의 실체는 점점 ‘無’의미해져 가는 것만 같다. 그 상실감과 소외감으로 인해 현대인의 마음속에 스며드는 옛 시간, ‘Belle époque 벨 에포 크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향수를, 나는 ‘나無’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음각(陰刻)하여 회화(繪畵)화한다. - 이소 작가

저서 <화가가 사랑한 파리 미술관>으로 유명한 이소 작가가 '벨 에포크'(아트플러스갤러리, 29일까지) 타이틀의 작품전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에 이르기까지 4차산업혁명이 인류에 가져다주는 편의성은 가히 혁명적이다. 현대 문명이라는 이기는 진화를 거듭하며 달콤한 편의성을 인간에게 무차별 선사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신은 초라하고 왜소해져 간다. 마르크스나 게오르그 루카치가 지적했듯이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인간은 노동에서 소외되고 모든 것이 물질화되는 이른바 물화(reification)현상으로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상실감과 소외감은 더 깊어져만 간다.

이소 작가는 이런 상황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공허한 지금의 모순된 삶을 잔잔하고 소박했던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려 원형을 다시 찾으려는 것이다.


▲ Belle Epoque 190801_72.7x72.7cm_Mixed media on canvas_2019

그 시간을 이 작가는 “‘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이 내 마음속에 빛난다. 나의 생각 주머니가 힘차게 뛰놀던 그 시간”이라고 부른다. 존재의 원형질이기도 한 이 아름다운 시절은 나무라는 오브제로 구체화되고 나무를 통해 반추된다.

뒤돌아본다 한들 되돌릴 수 있을까? 되돌릴 수 있다 한들 다시 돌아갈 용기는 있을까? 바 라보고자 하나 막상 가기에는 망설여지는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고 해를 따라 바람을 따라 꿋꿋이 바라기를 하면서도 딱 그 키만큼 뿌리내려 버티고 있는 ‘나 無’의 모습이 마치 우리와 같다. - 이소 작가


▲ Belle Epoque 181109_45.5x45.5cm_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_2018


이 작가는 이에 따라 작업의 많은 부분을 나무로 그려내고 있다. “휘몰아치는 나뭇가지의 선이, 마음으로 몸부림치는 우리의 팔짓을 닮았다. 굴곡 많은 시간의 흐름 속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 애처롭고도 한편 너무도 아름다워 자꾸만 나의 시선이 머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 작가는 그만의 독특한 화법을 선보이고 있다. 캔버스에 돌가루를 두텁게 바른 후 음각으로 깎아내어 요철감을 살린다.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바른 후 표면을 마모시키고 다시 물감을 바르는 작업을 반복한다. 물감을 얇게 한 층 쌓고 갈고 또다시 한층 한층 쌓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화면에서 시간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두텁게 쌓인 물감의 층위는 우리가 지나온 수많은 시간이자 나이테이며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연륜으로 절묘하게 형상화되고 있다.


▲ 나無 XXI_80.3x230cm_mixed media on canvas_2013

 

이소 작가는 이 벨 에포크 연작을 초기엔 화려하면서 다채로운 색채로 구현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름다운 색채로 수놓인 과거의 이미지는 역설적이게도 단색화로 오묘하게 변모해갔다. 이는 작가의 끊임없는 사색과 작업의 결과이며 조명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단색화는 흰색의 작품으로까지 진화한다. 흰색 벽에 걸린 흰색의 음각 회화는 페인팅과 조소를 아우르며 철학적 경지마저 보여준다.


▲ Belle Epoque 150801_100x160cm_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_2015

사진보다는 그의 작품을 직접 보면 작가만의 아우라는 더해지며 온몸으로 느껴진다. 흰색 톤의 아름답고 화려한 시절에 대한 회상과 반추는 옥시모런(oxymoron, 모순적 형용)을 뛰어넘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작가는 특히 “흔들리는 나무와 줄기들은 불어오는 바람의 이미지를 사실상 구현한 것”이라고 말해 바람이 가지는 자유와 변화라는 상징도 ‘아름다운 시절’에 함축돼 있음을 비쳤다.


▲ Belle Epoque 180902_부분이미지


아울러 그는 “꼭 어렵고 고통스럽게 작업을 해야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힘든 작업을 통해 제작되는 만큼 완성도가 높아지며 작품에 대한 애착과 보람도 더해진다”며 화가의 노동가치설(^^)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작가는 이번 벨 에포크 전시회를 계기로 나무 연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오브제를 모색할 계획이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프랑스 명문 파리8대학에서 수학한 학구파로 수원대학에도 출강하고 있는 이 작가는 스테디셀러 <화가가 사랑한 파리 미술관>에 이어 남프랑스를 한 달간 탐방한 내용을 토대로 새 저서도 준비하고 있다. 작품 활동과 출강, 저술 등 미술계 팔방미인의 하루는 영일 없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 벨 에포크 연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소 작가

UPI뉴스 / 이성봉 기자 sblee@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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