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호구조사의 추억'과 200만원

장한별 / 기사승인 : 2019-12-14 10: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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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수입이 200만 원 이상인 사람?" 담임 교사의 질문에 학생 한 명이 일어선다. 순간 아이들 시선이 일제히 그 친구에게 쏠린다. 

2000년 어느날 전남 진도 한 중학교 3학년 교실 풍경이다. 진도 뿐이었겠나. 새천년이 시작되는 그 시절까지도 대한민국 학교 곳곳에서 '호구조사'가 벌어졌다.

집에 '테레비'(텔레비전)가 있는지, 차가 있는지, 자가(自家)인지 방이 몇 개인지, 부모님은 뭐 하시는지, 한 달 수입이 '200만 원'이 넘는지 등등. 영화 친구의 그 유명한 대사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와 같은 맥락의 질문들이 이어졌다.

도대체 왜 하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호구조사는 문서 혹은 거수로 이뤄져 담임 교사에게 전해지거나 같은 반 친구들에게 공개되었다. 

▲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 직장인들의 출근길 모습. [정병혁 기자]


'구시대의 유물'인 호구조사가 문득 생각난 건 통계청이 13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9' 때문이다. 많은 내용중 '1인 가구의 36%가 월 200만 원을 벌지 못한다'는 대목에 눈길이 꽂혔다.

올해 1인당 국민 소득은 3만2000달러 안팎. 월급으로 따지면 312만 원이 약간 넘는다. 이런 시대에 1인 가구 3명 중 1명은 월급 200만 원을 벌지 못한다는 얘기다. 

세월이 멈춘 것인가. 근 20년이 지났는데도 많은 이들에게 '소득 시계'는 멈췄거나, 더디게 흐르고 있음을 직감한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시급 8590원. 월 209시간을 일하면 월급 179만5310원을 받는다. 최저임금으로 한 달 일해봤자 채 200만 원을 받지 못한다.

20년 전 '꿈의 숫자' 같던 200만 원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지금도 누군가에겐 꿈 같은 숫자인 것인가.

첫 월급 153만 원을 받고 기뻐했던 순간이 있다. 월급의 앞자리가 바뀌기만 하면 내 인생이 바뀔 거 같던 순간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회동향이 발표된 이날 "1인 가구를 위한 정책종합패키지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2020년에 월급 '200만 원 패키지'라도 나올까.

정부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잡겠다"던 집값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는 세밑, 한숨을 보태는 통계 한자락에 넋두리하듯 상상해본다.

UPI뉴스 / 장한별 기자 star1@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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