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공짜 마스크' 말고 '좋은 공기' 다오

김광호 / 기사승인 : 2019-12-25 10: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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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지자체, '공짜 미세먼지 마스크' 남발…예산 깎여
국회 예산처 "수요 조사 제대로 안 해 마스크 남아돌아"
전문가들 "마스크 오래 쓰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삼한사미(三寒四微)'

이는 3일간 한파가 이어지다 물러나면 4일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는 뜻으로, 올겨울 '삼한사온(三寒四溫)'을 대신한 말이다.

며칠마다 찾아오는 불청객 미세먼지 탓에 시민들은 두꺼운 패딩점퍼와 더불어 '미세먼지 마스크'가 겨울철 필수품이 됐다.

▲ 미세먼지 농도 '매우나쁨' 수준을 보인 지난 11월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정병혁 기자]


지난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한국의 사회동향'에 따르면 국민의 90% 이상이 10년 전에 비해 미세먼지 농도가 더 악화됐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2015년부터 최근으로 올수록 서울시의 일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대기환경기준 상 '매우 나쁨' 수준을 넘는 빈도는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는 물론 언론에서도 앞다퉈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면서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종용하는 분위기다.

특히 정부와 지자체는 '미세먼지 마스크' 무료 배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저소득층 마스크 보급'에 574억 원을 책정했는데, 올해 추경 예산(194억 원)보다 380억 원 늘린 것이다.

서울시도 지난해 11억89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미세먼지 마스크 200만 개를 시내 경로당에 배포했다. 지난 4월 12억2000만 원을 들여 118만여 개를 보급했고, 11월말까지 15만 개를 추가로 제공했다.

그러나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내년도 수정 예산안에서는 '저소득층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 예산이 정부안 대비 114억 원 깎였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수요 조사를 제대로 안 해 마스크가 남아돌고 있다"며 대표적인 '재정 누수' 사례로 꼽았다.

실제로 지난 23일 서울시의 한 노인회관에 문의해 본 결과, 동사무소에서 무료로 제공한 미세먼지 마스크들이 박스째 쌓여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지역의 경로당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동작구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80대 여성 A 씨는 "나라에서 공짜 마스크를 주니까 처음에는 다들 좋아했지만 이제는 필요한만큼 가져가라고 해도 잘 안가져간다"며 "마스크를 매일 바꿔써야 하는 것도 아닌데 예산 낭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종로구에 거주하는 70대 남성 B 씨도 "미세먼지가 날이갈수록 심해지는데 계속 마스크만 주면 뭐하냐"며 "정부에서 공짜 마스크 뿌릴 생각만 하지말고 미세먼지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시민단체가 지난 3월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 위치한 사회복지원각 앞에서 노년층들에게 미세먼지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뉴시스]


일각에서는 미세먼지에 대한 대응책으로 마스크를 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마스크를 하루종일 쓰고 다니는 것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 식품의약처(FDA)에 따르면 만성 호흡기 질환과 심장 질환, 기타 숨을 쉬기 어려운 의학적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N95 마스크'를 사용하기 전에 의사 등 건강관리자들과 함께 의논하라고 권고한다.

미국 흉부학회(American Thoracic Society)도 가이드라인을 통해 보호용 마스크를 착용하면 숨쉬기가 힘들어져 육체적 부담을 준다고 경고한다. 1회 호흡량을 감소시켜 호흡 빈도를 증가시키고 폐포와 폐에서의 환기를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심박출량 감소와 같은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쓴 마스크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미세먼지 관련 대책에서 마스크만 나눠주면 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와 함께 미세먼지 마스크를 분배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마스크에 대한 수요를 적절하게 예측하지 못한 채 선심성으로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마스크가 남아도는 반면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제공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점점 나빠지는 우리의 대기환경을 바꾸지 않고서는 무료 마스크 배포 정책이 '포퓰리즘'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시민들이 공짜 선물에만 열광할 거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국민의 혈세로 선심쓰듯 공짜 마스크를 준다고 마냥 좋아할만큼 시민들은 무지하지 않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료로 나눠주는 마스크가 아니라 마스크를 안써도 될만큼 깨끗한 공기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시민들이 답답한 마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게 정부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추진하길 기대해본다.

UPI뉴스 / 김광호 기자 kh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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