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시각장애인 눈 가리는 점자블록

장한별 / 기사승인 : 2019-12-26 17: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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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인근 인도에 설치된 점자블록. 곳곳이 패여 흉측한 모습이다. 제 기능을 할 리 만무하다. [장한별 기자] 


"선생님, 그쪽이 아닙니다!"

외침과 동시에 차도로 향하던 노신사를 붙잡는다. 60대 후반쯤 됐을까? 출근길에 몇 번 본 적이 있어 눈에 익다.

접이식 흰지팡이와 선글라스. 그는 시각장애인이다.

초행길이 아님이 분명한데 그의 발길은 왜 위험한 차도를 향했을까. 표지판 역할을 할 점자블록이 없어서다. 아니, 있기는 했다. 그러나 시각장애의 한계인지, 그의 발과 지팡이는 점자블록을 따라가지 못했다.

지팡이 짚은 노신사의 팔을 이끌어 횡단보도를 건넜던 기억이 세밑 출근길에 다시 떠올랐다. 광화문 의정부 터 옆 인도의 노란색 점자블록을 우연히 내려다본 탓이다.

곳곳이 깨지고 패인 모습이 깔끔히 닦여 차들이 '씽씽' 달리는 옆 대로와 대비되었다. 서울 맹학교와 멀지 않은 이 길의 사정이 이러한데 다른 곳의 점자블록은 어떨 것인가.

매 연말이면 '보도블록이 뒤집어' 진다. 집행하지 못한 예산을 써버리기 위한 지자체의 흔한 '꼼수'일 터. 모든 '땅 파기'를 꼼수로 몰 순 없지만, 지자체에서 그동안 해오던 행태를 보면 오해를 살 만하다.

이런 오해를 풀기 위해 서울시는 2012년 '보도블록 10계명'을 내놓았다. 2014년 12월엔 '인도 10계명'을 시행해 시민들의 빼앗긴 보행권을 되찾고 불필요한 공사로 인한 예산낭비를 줄이는 효과를 봤다.

나아가 지난 4월에는 교통약자 보행불편사항을 전수조사한다고 발표했다. '걷기 편한 서울'을 조성한다는 취지다. 2년 주기, 장애인 직접 조사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2012년 서울시의 발표 이후 7년이 지났지만 점자블록은 그 '10계명'에 끼지 못한 것일까.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들의 '눈'이나 다름없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위치 감지, 위험 경고, 방향 지시, 방향 유도를 해준다. 깨져 있거나 변형이 있으면 시각장애인들에게 큰 혼란을 줄 수 있다.

예산 불용액을 남기지 않으려 멀쩡한 도로도 헤집으면서 왜 꼭 필요하고 보다 절실한 곳엔 이토록 무신경한 것인가. 너덜너덜한 점자블록에서 '혈세의 오남용'을 읽는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서울시의 전체 보도는 2017년 말 기준 양방향 1669km. 경자년(庚子年) 새해에는 서울시의 모든 보도, 나아가 전국이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에게나 걷기 좋은 길이 되길 바란다.

UPI뉴스 / 장한별 기자 star1@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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