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의 금의환향, 기자회견서 말한 봉준호의 진심 [종합]

김현민 / 기사승인 : 2020-02-19 13: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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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황금종려상 이어 오스카 4관왕 영화사 족적
봉준호 감독 "영화사보다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
한진원 작가 "시나리오는 사람 머리 아닌 사람에게서 나와"
영화 '기생충'의 주역들이 금의환향했다. 봉준호 감독은 여전히 겸손했다.

▲ 영화 '기생충' 출연진과 제작진이 19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19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생충' 기자회견이 열렸다. 현장에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한진원 작가,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박명훈,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이 참석했다. 사회는 방송인 박경림이 맡았다.

'기생충'은 지난 10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을 받아 4관왕에 올랐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함께 받은 영화는 1946년 '잃어버린 주말', 1956년 '마티'에 이어 '기생충'이 세 번째다. 아울러 작품상을 받은 것은 비영어권 영화로는 최초다.

▲ 배우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정병혁 기자]

이날 참석한 '기생충' 배우 및 관계자는 시상식에서 못다한 소감을 밝혔다. 송강호는 "처음 겪는 과정이었고 봉준호 감독과 작년 8월부터 오늘까지 영광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좋은 성과, 전 세계 관객분들에게 뛰어난 한국영화를 선보이고 돌아와서 기쁘다"고 말했고 곽신애 대표는 "성원, 응원 감사하다. 처음 가서 무려 작품상을 받았는데 이 작품에 참여한 모든 분에게 영광과 기쁨이 되는 상이라 기뻤다"고 전했다.

장혜진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다"고 농담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선균은 "아직도 꿈만 같다. 한국에서 진심으로 응원해준 분들과 영광을 함께 누리고 싶다"고 소회를 전달했다. 조여정은 "영화를 만들면 보통 만든 우리끼리 만족하고 끝나는 것 같은데 온 국민이 기뻐해주고 축하해주니까 큰 일을 해낸 것 같아서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봉준호 감독과 공동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한진원 작가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미국에 할리우드가 있듯이 한국에는 충무로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충무로를 얘기했던 건 대학교 졸업 후 제 유일한 사회생활이 충무로에서였기 때문이다. 그때 말씀 못드린 게 있다"며 "어떻게 시나리오가 사람 머리에서 나오겠냐.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도움을 준 가사 도우미, 수행기사, 아동학과 교수 등 모두 감사하다"고 진심을 전했다.

▲ 한진원 작가가 19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이하준 미술감독은 "실은 저희, 스태프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이 거의 없다. 제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같이 고생하는 아티스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을 받으면서 거장들 앞에서 수상소감을 손을 떨면서 얘기했다. 속으로 '이 상이 잘해서 주는 게 아니라 더 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주는 상'이라는 의미를 새겼다. 저만의 숙제를 안고 와서 뿌듯했다"고 밝혔다.

양진모 편집감독은 "이런 스포트라이트가 신기하다. 진행하는 박경림과 처음 영화 시작할 때 같이 영화 작업을 했다. 거의 십몇 년이 흘러서 이 자리에서 만난 게 비현실적인 것 같다. 이 날이 오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저희는 항상 영화 뒤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스태프다. 여러 스태프의 노력이 이 자리를 만들어준 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아카데미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기생충'은 시상식 전까지 8000명이 넘는 심사위원의 표를 얻기 위한 홍보 활동인 오스카 캠페인을 펼쳤다. 이를 위해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1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봉준호 감독은 오스카 캠페인에 대해서 "후보에 오른 모든 영화가 오스카 캠페인을 한다. 네온이라는 미국 배급사가 중소배급사다. 저희는 열정으로 게릴라전을 했다. 송강호가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 인터뷰를 600회 이상, 관객과의 대화를 100회 이상 했다. 저희는 아이디어와 팀워크로 열심히 했다. 한때 그런 생각도 했다. 후보에 오른 다른 감독들이 많은 시간, 예산을 들여서 캠페인을 하는 게 낯설기도 했는데 이런 식으로 작품을 깊이 있고 밀도 있게 검증하고 점검하는 거다는 생각을 했다"고 느낀 점을 말했다.

▲ 영화 '기생충' 출연진과 제작진이 19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송강호는 "저는 처음 경험하는 과정이다보니까 아무 생각없이 갔다고 해도 무방하다. 내가 아니라 타인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상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다 세계 영화인들과 함께 호흡하고 어떤 소통과 공감을 할 수 있는지를 느끼고 배웠다. 제가 작아지는 느낌이었다"며 오스카 캠페인을 통해 배운 점을 밝혔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각인시킨 덕에 미국 활동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설국열차'가 드라마로 리메이크돼 5월에 미국 TBS와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기생충' 역시 미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된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빅쇼트'의 아담 맥케이 감독이 작가로 참여한다. 더 깊게 파고들 것 같다. 리미티드 시리즈라는 명칭을 쓰더라. 다작이 아닌 HBO '체르노빌' 시리즈처럼 높은 밀도의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저와 아담 맥케이 감독이 구조를 논의하는 시작 단계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설국열차' 드라마가 2014년경에 준비했던 건데 이제 공개된다. '기생충'도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본다. 아담 맥케이 감독, HBO와 잘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봉하이브'라고 불리는 팬덤도 생겼다. 봉준호 감독의 성과 벌떼가 모인 벌집을 의미하는 하이브(Hive)를 합친 말이다. 이정은은 봉준호 감독이 인기 있는 이유에 관해 "동시대 문제를 재미있고 심도있게 전달하고 스토리 전개를 예상할 수 없다"고 짚었다. 이어 "아카데미 캠페인이 경쟁으로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의 동지적인 모습을 봤다"고 칭찬했다.

▲ 봉준호 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으면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수상 소감도 화제가 됐다. 봉준호 감독은 자막 작업 방식을 묻는 말에 "자막은 평소 하던 대로 했다. 달시 파켓과 서로 일을 해온 패턴이 있다. 그는 한국말을 잘하는 미국인이고 그 부인은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이다. 그런 면에서 호흡이 되게 좋다"며 "'살인의 추억'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인류 최대의 난제를 해결한 분"이라며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번역가 달시 파켓에 대한 믿음을 보여줬다.

일각에서는 자본에 의존하면서 다양한 시도가 줄어들고 있는 한국영화에 대한 우려도 있다. 봉준호 감독은 "해외에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한국 영화 산업 특유의 활기가 뭔지. 반면 우려되는 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한국 영화는 20여 년간 많이 발전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걸 하기에는 어려워지는 경향, 독립영화와 산업영화가 평행선을 이루는 부분이 안타깝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2000년대 초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을 찍을 때는 좋은 의미에서의 충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활력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된다. 홍콩영화가 한국에서 어떻게 쇠퇴했는지를 보면 그런 길을 가지 않기 위해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고 그런 것을 산업이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나오는 훌륭한 독립영화를 보면 많은 재능이 꽃피고 있기 때문에 산업과의 좋은 충돌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봉준호 감독은 "작년 5월 칸부터 오스카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영화사로 기억될 수도 있지만 사실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지 않겠나"라고 진심 담긴 바람을 밝혔다.

UPI뉴스 / 김현민 기자 khm@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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