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 칼럼] 그래도 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이원영 / 기사승인 : 2020-04-05 22: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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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기레기' 오명 쓰는 시대
기자를 하려는 소명은 무엇인가
가슴 안 뛰면 딴 길 권하고 싶어
누구에게 명함을 건넬 때 약간은 머쓱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기자 생활 30년 만에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사람들이 기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일 터다.

'기레기'라는 말이 일반 명사처럼 통용되는 시대가 되었으니 명함 건네는 손에 힘이 빠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다. 그래도 예전에는 '저 이런 일 하고 있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은근히 자부심도 좀 묻어 있는 명함을 건넸고, 받는 사람도 조금은 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을 보여주는 듯했다.

기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은 기자들 스스로가 불러들인 자업자득이지 하늘의 공기가 달라졌거나, 사람들 성격이 변해서 그런 게 아님을 기자들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뿐이다. 

근래에 불거진 기자 연루 사건을 접하는 심경은 착잡 이상의 참담함 수준이다. 어느 기자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범죄 혐의로 엮기 위해 수감 중인 사람의 대리인에게 협박에 가까운 취재 행위를 벌인 것이 드러나며 많은 사람이 기자 세계의 한 단면을 알아챘다.

여기에다 한 신문의 법조 기자는 검찰 상부로부터 눈엣가시가 되어 있는 진혜원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부에서 당신을 감찰하고 있는데 알고 있나'는 내용의 전화를 한 사실이 진 검사의 폭로로 드러났다. 진 검사는 검찰 내부에서 임은정 검사와 함께 검찰 개혁 등 '입바른 소리'를 내면서 검찰 고위직으로부터 밉상으로 찍혀 있는 여검사다.

두 사건 모두 해당 기자들은 '정상적인 취재행위'라고 주장하지만 상대방은 '협박'내지는 '위협'으로 느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취재행위'에 정치적인 의도가 깔렸다는 의심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두 사건을 검찰과 언론의 전형적인 유착관계를 보여주는 실례로 해석한다. 검찰은 기자를, 기자는 검찰을 이용하며 악어와 악어새의 주고받고 식 거래를 해온 그간의 관행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버렸다. 검찰과 기자의 이런 불온한 거래 행위를 '거의 조폭 집단'이라 말할 정도다. 검찰과 언론이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데는 그들 집단의 무오류 최면과 뻔뻔함이 자리하고 있다.  

불의와 부정에 저항하고 권력의 부패를 고발하면서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언론이 한 역할을 했음을 사람들이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동안 기자들이 사회로부터 받았던 일말의 기대와 존경마저도 언감생심 바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구구절절 그 이유를 나열해보아야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기자의 이미지가 이렇게 구겨진 이 시절에, 그래도 기자를 하겠다고 준비하는 후배들이 적지 않다. 막연한 기대를 안고 언론에 입문한 초년병 기자들도 많다. 나는 그들이 궁금하다. 왜 기자가 되려 하는지, 만족하고 있는지, 계속할 수 있을는지, 기레기 오명을 써가면서 버틸 자신은 있는지…

나는 '아까운 청춘'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하는 선배의 심정으로 기자 지망생과 초년생들에게 귓속말로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기자 좋은 시절 다 지났어. 좋은 시절을 바란다면 딴 길을 찾아봐."

고참 기자들끼리는 "우린 참 좋은 시절 보냈지"란 말을 쉽게 한다. 뭐가 좋았을까. 기자직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때론 부러움을 받기도 했다. 봉급도 많았다. 사회에선 기자를 '빽'으로 인식했다. 정치인이나 공무원 누구라도 주저 없이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기자들에게 '잘 보이려' 굽신대기까지 했다. 당연히 '접대'도 잦았다. 눈치 보지 않고 '촌지'도 받았다. 그런 데다 사람들은 '펜은 칼보다 무섭다'는 황홀한 훈장까지 달아줬다.

지금은 그 좋은(?) 것들이 없어졌거나 끝물이다. 이렇게 나빠진(?) 언론환경 속으로 후배들이 들어오겠다고 하면 말려야 하는 게 선배의 도리(?)가 아닐까.

그런데도 언론인의 길을 가고 싶다면 자신이 어떤 스타일인가,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길 바란다.

길거리 할머니가 내미는 광고 전단을 거의 받아주는 편인가(인정). 펜이 휘어지면 미련 없이 꺾어 내던지고 대신 망치를 들 각오가 되어 있는가(지조). 글을 쓸 때마다 가슴이 뛰는가(소명). 물질보다 가치를 추구하는가(공익). 무림의 글쟁이 고수들을 존경하는가(겸손). 꾸준히 배우며 자기를 확장하는 노력을 하는가(책임). 무엇보다도 나빠진 언론환경을 바꾸겠다는 의욕이 있는가(열정).

만약 그런 스타일이라면 언론인의 길이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후회할 것이 뻔한 길을 가느라 아까운 청춘을 허비하지 마시길.

▲ 이원영 사회에디터

U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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