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순열 칼럼] 국가부채 폭탄? 나라가 거덜나기라도 했나

류순열 / 기사승인 : 2020-04-08 17: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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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3조6000억 원. 지난해 국가부채 규모다. 사상 최대다. 8일 숱한 언론이 이를 크게 다뤘다. 그래서 나라가 거덜난 건가. 호들갑이 요란했다. 그중 조선일보가 단연 돋보였다.

'1400만 원(국민 1인당 국가채무) 빚 있는데, 또 빚 내 100만 원 준답니다.' 코로나 재난지원금과 국가 부채를 연결 지어 1면 톱으로 질렀다. 이어 3면에 '최악 재정적자, 진짜 빚폭탄 터지지도 않았다'고 겁주고 '정부 적자 최악, 눈사태가 시작됐다'며 다시 사설로 '확인사살'했다.

정부 재정건전성? 당연히 중요하다. 포퓰리즘으로 퍼주기를 남발하면 나라 살림, 거덜날 수 있다. 국가부채의 급격한 증가는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국가부채 1744조 원이 그 정도로 위험천만한, '폭탄'인 건가.

'사상 최대'라는 외피에 화들짝 놀랄 필요 없다. 규모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부채는 크기가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경제력(GDP·국내총생산) 대비 부채 비율을 봐야 하는 이유다.

지난해 중앙정부 기준 국가채무 비율은 30% 후반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하위권이다. OECD 평균은 100%를 넘고 특히 일본은 220%를 훌쩍 넘어 세계 최고다. 경제력 대비 부채의 무게가 한국의 5배를 넘는다. 그런데 왜, 일본은 망하지 않는가.

그러니 부채 비율이 높다고 꼭 위험한 것도 아니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면 부채 비율은 문제 될 게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OECD 국가들의 평균 국가채무 비율이 70%대에서 110% 안팎으로 훌쩍 뛰어넘었다.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더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OECD 회원국의 국가부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금융·경제사와 재정·통화정책에 정통한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에 이렇게 썼다. "코로나19 경제위기에 맞서 '정책 변이'를 두려워 말라"면서. 아울러 "우리나라 안에서만 금과옥조처럼 지켜왔던 '적정 국가채무비율'(40%) 개념은 폐기될 운명"이라고 했다.

더욱이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대부분 국내에서 소화된다. 국가 빚이 100조 늘면 국민 자산이 100조 느는 거다. 한국 경제 안에서 누군가의 부채는 누군가의 자산이 된다. 돈은 그렇게 돌고 돈다.

'1인당 국가부채 1400만 원'이란 레토릭도 '평균의 함정'이 낳은 허구다. 세금 내는 이도 주로 부자, 국채를 갖고 있는 이들도 부자다.

코로나19 사태로 지금 세계 경제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다. 각국 정부는 질식하는 경제의 숨통을 트려 돈 살포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마당에 한국 정부는 재정 건전성만을 끌어안고 몸을 사린다? 너무 한가하고 비겁하지 않은가. 차 교수는 "지금 부채 비율 갖고 따지는 건 웃기는 얘기"라고 했다.

논점은 바뀌어야 한다. 부채 비율이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쓸 건지를 논쟁해야 한다. 지출이 얼마나 시급하고 효과가 있느냐가 핵심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비상 상황에서 부채 비율이 너무 낮은 나라는 정부가 일을 할 줄 모르거나,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다.

1929년 대공황 해법으로 적극적 재정정책을 주장하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줄곧 이념공세에 시달렸다. 노동당의 사회주의자들과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였던 자유당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고,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에 대해 "어떻게 그처럼 비논리적이고 어두침침한 이론이 사람들의 생각에 그토록 지속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는데도 말이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를 필두로 한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케인스를 지속적으로 '빨갱이'(본색을 숨긴 사회주의자)로 몬 것이다. 

아직도 걸핏하면 종북·좌빨 운운 색깔론으로 이념의 덫을 놓는 대한민국의 정치·언론 지형이 딱 그 꼴이다. 근 100년이 지났는데도 우린 아직 그 시대를 맴돈다. 너무 후진적이지 않은가.

▲ 류순열 편집국장

UPI뉴스 / 류순열 편집국장 ryoos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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