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한국은 미국 모방한 약탈적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야"

남궁소정 / 기사승인 : 2020-05-17 16:32:35
  • -
  • +
  • 인쇄
"한국 불행의 뿌리는 경쟁 시스템과 기형적 분단 체제"
"민주당의 탐욕이 총선서 사라져야할 수구 유령 살려줘"
"민주당이 진보? 국제 기준에서 어불성설...자유주의적 보수일 뿐"
"두산이 중앙대에 하는 거 봐라, 사회의 민주화는 요원"

한국 사회에 대한 평가가 신랄했다. 심각하게 병든 사회인데도 사람들은 모른 채 살아간다고 했다. 병든 것이 고착돼 그것이 정상이 된 사회가 됐다고 했다. 김누리(60)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의 한국사회 비평이다.

대한민국이 외형적으로는 번듯해 보이는 나라가 됐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곪아가고 있는데도 국민도 모르고, 지도자들도 짐짓 외면하면서 점점 기형적인 사회가 되어 가고 있음을 개탄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를 "정치 민주화만 됐지, 사회·경제, 문화 민주화는 전혀 안 돼 있는 '포스트 파시즘' 사회"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를 세계적 정신혁명인 '68혁명'을 우리만 비껴갔기 때문으로 봤다. 

68혁명은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시작된 저항운동을 일컫는다. 종교, 애국주의, 권위에 대한 복종 등 보수적인 가치들을 대체하는 평등, 성 해방, 인권, 공동체주의, 생태주의 등 진보적 가치들이 사회의 주된 가치로 떠오른 전 세계적 정신문화혁명으로 이어졌다.

"68혁명을 기점으로 전 세계가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한국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래서 "우리의 사고체계는 세계사적으로 50년 뒤처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 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14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연구실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김 교수는 소설 '양철북'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노벨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 연구자다.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독일과 한국의 역사·교육·정치·사회·문화를 비교하는 '독일 2부작' 강연을 통해 화제를 모았다. 

김 교수는 TV 강연에서도 좀 강한 표현으로 한국사회를 비판했는데 이번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강연은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란 제목으로 최근 출간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서울대, 독일 브레멘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했고, 현재 독일유럽연구센터 소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를 지난 14일 동작구 중앙대 교수 연구실에서 만났다. 

대담 = 이원영 정치·사회에디터

▲ 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14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연구실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ㅡ요새 인기 실감하시죠


"(웃음) 아뇨 무슨, 인기가 어디 있어요."

ㅡ텔레비전 나오시고, 책도 내고

"제 인기라기보다는 우리 교육에, 사회 시스템에 사람들이 너무 고통을 많이 받아서, 거기에 대한 반응이 예상보다 좀 뜨겁구나 그런 건 느껴요."

ㅡ가벼운 주제부터 여쭤볼게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79학번인데 박정희·전두환의 군사독재를 겪으면서, '그때 한국 사회가 이상하구나', '뭔가 바뀌어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일종의 자연스럽게 정치화된 세대랄까. 독일에 유학한 것도 다른 이유가 없어요. 문학보다는 한국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그런 고민을 가지고 간 거죠. 우리 시대에는 대부분이 그랬죠."

ㅡ그럼 아예 사회학이나 그런 쪽 공부하시지 그랬어요

"그것도 우리 생각이죠. 그것도 미국식인데, 우리는 분과 학문적인 생각이 있어요. 문학이라는 건 순문학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사실 이데올로기죠. 독일에 가니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독일은 오히려 작가라든가, 문학 교수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보다도 훨씬 더 보편적 관점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귄터 그라스'를 공부했는데, 그분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죠."

ㅡ코로나19 때문에 대한민국 국격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와요 

"세계가 놀란 것보다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제일 놀란 거죠. 일종의 재발견을 했다고 할까요. 저도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을 받은 게 두 번째예요. 첫 번째는 2016년 촛불, 11월 26일. 200만이 광장에 모여있는데, 아. 이게 유토피아구나. 그 순간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 안에 이런 기품 있는 얼굴이 숨어 있었구나. 너무나 일상적으로 억압을 받아 주눅든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ㅡ주눅든 얼굴이요?

"한국 자본주의는 거의 모든 사람을 존엄한 얼굴이 아니라 어딘가 주눅든 얼굴을 갖게 했어요. 저는 문학을 한 사람이다 보니 당시 촛불혁명에 참가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발터 벤야민'이라는 독일의 철학자는 유토피아는 미래에 어떤 이상적인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라고 해요. 유토피아라는 것은 위기의 순간, 섬광처럼 번쩍이는 기억 속에 있다는 거예요. 이 말을 잘 이해못했어요. 

그런데 광화문에 가니까 딱 떠오르는 거예요. 사람들 표정을 보니까. 아 이게 유토피아구나. 거기 모인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과거 어떤 기억 하나를 쥐고 나온 거예요. 이번이 두 번째인데, 대구 시민들의 모습은 정말 '부지불식 간에 우리가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한 측면이 있구나'를 보여줬어요. 저는 그걸 평가하는 데 인색해선 안 된다고 봐요. 대단한 우리의 역량이 드러난 것이죠."

ㅡ코로나 이후에 우리가 놓치지 말고 꼭 새겨야 할 교훈이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한국은 앞으로 뒤로 퇴행 안할 것이라고 봐요. (촛불 모임에) 어린 아이들도 엄청 많이 왔잖아요. 엄마 아빠 손잡고. 그 아이들의 그 기억, 그게 유토피아의 싹인거죠. 한국사회를 만들어가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보여준 'K-방역'은 우연히 나온 게 아니에요. 우리 안에 누적돼 있었어요. 우리처럼 민주혁명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많지 않아요. 독일은 성공한 민주혁명이 한 번도 없었어요. 계속 실패했어요. 우리는 4·19 혁명 이후 지금까지 성공한 혁명의 역사가 있는 나라죠. 이런 기억들이 우리에게 기품있는 모습, 성숙한 태도 등을 키워준 것 같아요."

▲ 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14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연구실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ㅡ이번 총선의 의미는 뭘까요. 정치지형이 바뀐 것은 맞나요

"뭐가 바뀌어요. 별로 안 바뀌었죠. 수구와 보수의 과두지배 질서는 그대로 가는 거죠. 일단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보수고, 보수 중에서도 상당한 보수죠. 조금 좋게 봐도 자유주의적 보수 정도죠. 민주당이 진보라는 것은 국제적 기준에서 어불성설이에요."

ㅡ그렇다면 총선 결과에 의미를 부여할 부분은 없습니까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의 탐욕이 수구의 유령을 살려줬어요. 제대로 선거법 개정을 했다면 수구 세력을 역사의 유령으로 보내버릴 절호의 기회였는데. 저는 그게 가장 가슴 아파요. 그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선거법 때문이죠. 이 단순소선구제라는 민의를 왜곡하는 잘못된 선거법이 한국 사회를 엉망진창으로 망치고 있는 거예요. 그걸 더 개악시켜놨어요. 민주당의 기회주의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거예요."

ㅡ선거법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원안대로 갔어야 한다는 말이죠

"원안이 아니죠. 원안 자체도 엉터리죠. 그게 무슨 개혁이에요. 한국 사회에서 민주당은 민주 세력인 것은 분명해요. 독재자들과 싸우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민주 세력이 된 거예요. 그러나 개혁 세력은 아니에요. 민주당이 한국 사회에서 뭘 개혁했어요."

ㅡ그러면 어떻게 해야 했나요

"민주당이 나머지 정당들과 연합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최소한 2015년에 선관위에서 내놓은 수준인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했어야지요. 그런데 저는 그것도 모자란다고 봐요. 더 이상적인 건 지역구 250석, 비례 250석. 500석으로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거죠. 한국 선거법을 OECD 기준으로 맞추면 500석이 맞아요. 인구 10만 명당 한 명. 그게 평균이에요. 그렇게 된다면 한국 사회는 질적 변화를 겪게 되죠."

ㅡ이번 선거 결과가 불만스러운가요

"민주당이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 정치 현대사에서 중요한 실책을 범한 것이라고 보고요. 그러나 180석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또 다른 측면도 있어요. 이제 민주당이 180석으로 개혁을 못 하면, 정말 역사적으로 단죄해야 할 정당이 될 것이라고 봐요. 더 핑계 댈 수가 없어요."

ㅡ책에서 도입부부터 강조한 것이 68혁명이었어요. 68은 간단히 말해서 정신혁명 아닌가요. 그걸 박정희 정부에서 막았다고 하셨는데

"뭐 막을 것도 없었어요. 68의 부재라는 걸 우리가 잘 연구해서 보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쉽게 설명이 돼요. 저는 한국에 관심 있는 분들한테는 베트남 전쟁을 꼭 읽어보시라, 이렇게 말씀드려요. 베트남 전쟁이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줬어요. 다시 말하면 현재의 한국 사회는 '포스트 파시즘 사회'라고 불러야 해요."

ㅡ포스트 파시즘 사회요? 무슨 의미죠?

"'포스트'라는 말은 파시즘을 지났다는 의미와 여전히 파시즘이라는 의미가 함께 있어요. 포스트 파시즘 사회의 틀이 만들어진 것이 바로 68이에요. 68혁명을 기점으로 전 세계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이라는 방향으로 나가지만 한국은 역방향으로 가요. 68을 기점으로 모든 형태의 억압 밑으로 기어들어 갔어요. 바로 병영사회가 됐어요. 실제로 68 때부터 남북 관계가 아주 엄혹한 관계가 되면서, 박정희는 남한을 군사 병영사회로 완전히 전환합니다."

ㅡ우리가 68혁명을 겪지 못했다고 해서 서구 사람들보다 정신 문화적 측면에서 뒤처져 있다고 볼 수 있나요

"엄청나게 뒤처져 있어요. 아직도 해결이 안 됐어요. 한국 사회는 68 이전 사회로, 여전히 세계적 흐름에서 50년 뒤진 사회예요. 그렇게 보면 많은 현상이 설명돼요. 예를 들면 지금 미투, 페미니즘, 조국 사태 이런 현상들. 이게 우연히 나온 건 아니죠. 상징성을 가지고 나타났을 뿐이지. 

안희정,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특권의식은 포스트 파시즘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나오는 문제이고요, 프리 68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나오는 문제들이에요. 현재 한국은 파시즘의 겉면은 어느 정도 없애놨지만, 파시즘이 남긴 제도·의식은 그대로 남아서 더 강해졌어요. 정치 민주화만 됐지, 사회·경제,문화 민주화는 전혀 안 돼 있어요. 중앙대학교 보세요. 두산 관계자들이 들어와서 전횡을 하고 있어요.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ㅡ교수님 몸 담고 있는 학교 얘긴데 이거 기사에 나가도 됩니까

"다 쓰세요. 저는 계속 싸우고 있어요. 이사장이라는 사람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했으니까… 돈 몇천 억을 해서 들어왔다고 '총장 직선제 없어. 내가 임명할 거야. 너는 2년 하고, 너는 4년 해' 이런 모습을 보니까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더라구요. 이게 한 나라의 고등교육기관인데 돈 좀 있다는 자가 들어와서 제멋대로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우리는 전혀 민주화가 안 돼 있어요. 이게 대학만이에요? 학교도 마찬가지고 거의 모든 조직에서 그렇죠."

▲ 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14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연구실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ㅡ우리 사회를 '약탈적 자본주의'라 규정하셨는데, 벗어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해요. 저는 독일에서 너무 놀랐어요."

ㅡ어떤 부분을 보고 놀라신 거죠

"이런 세상이 있구나. 우리 때만 해도 모든 건 경쟁이고, 온 세상은 위계가 있고, 경쟁에서 이기는 자가 다 먹는 거고, 뒤처진 자는 낙오자고. 독일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대학 시험도 없고, 학비도 없고, 엘리트 대학도 없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잖아요. 자본주의를 인정하면서, 자본주의가 인간을 잡아먹는 약탈성은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아주 잘 짜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요. 사회에서 사람들 경쟁시키지 않고, 모두가 존엄한 인간으로 느낄 수 있게. 독일에서 8년 동안 있으면서 열등감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다 자존감을 느끼고 살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등수가 없으니까."

ㅡ약탈적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뭐가 있을까요

"한국 자본주의는 자유시장경제를 기본으로, 재벌체제라는 변형된, 일종의 유교 자본주의적 요소가 섞였어요. 그래서 최악이 된 거예요. 저는 이것을 북한에선 정치적 3대 세습, 남에서는 경제적 3대 세습을 하고 있다고 해요. 사회주의 3대 세습, 자본주의 3대 세습 체제로 오면서 아주 기형적인 한반도가 되었어요.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정치를 강화하는 거죠. 정치의 의무는 미쳐 날뛰는 야수 자본주의를 컨트롤하는 것이에요. 시장을 그대로 놔두면 인간을 다 잡아먹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자유시장경제를 통제하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의회의 99%를 차지해요. 그러니까 자본이 자유롭게 인간을 잡아먹는 사회가 된 거예요. 한국을 자본독재 사회라고 부르는 이유예요. 정치가 자본의 하위기구가 됐어요."

ㅡ정치를 강화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가요

"현재 국민들은 정치 권력에 대해서는 일정한 통제력을 가져요. 4~5년 만에 한 번씩 민주적 통제를 하죠. 그런데 사실상 정치 권력보다 우위에 있는 경제 권력은 통제할 방법이 없어요. 완전 절대권력이 돼버린 거예요. 삼성 이재용의 권력을 통제할 수 없어요. 경제권력은 현실적으로 나한테 영향을 주는데, 이들에게 통제력을 행사할 방법이 없어요." 

ㅡ진보 영역을 강화해야 하나요

"그렇죠. 경제 권력을 통제하는 형태로 정치가 강화돼야 하죠. 정치가 이런 무정부주의적인 야수 자본주의를 통제하지 못하면 한국에서는 인간이 못살아요. 민주당의 역사적 사명은 70년 동안 냉전에 기생해 역사적 수명을 다한 수구 정치세력을 정치무대에서 밀어내고, 그 다음 왼쪽에 열린 공간을 터줘서 진짜 보수와 진짜 진보가 경쟁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에요."

ㅡ진보 진영이 정치적으로 넓어지면 국민 행복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 고통이 무엇인지는 객관적인 통계로 나와 있죠. 자살률 세계 1위, 세계 최고 불평등, 세계 최장 노동시간, 기업 살인율 세계 1위. 자본이 노동자들을 한 해 2000명씩, 그것도 23년째 죽이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이걸 문재인 정부는 모르는 척하고 있어요. 저는 이런 파렴치함에 분노가 있는 거예요."

ㅡ우리 사회가 불행감을 느끼는 요인 중 하나가 지독한 경쟁이라고 언급하셨는데, 굳어진 경쟁 체제를 이완시키고 행복으로 가는 길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생각해봐야 하는데요. 우선, 우리가 쓰는 모든 언어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빨아 쓸 수 있는 언어인지를 검토하는 게 모든 공부의 시작이에요. 우리가 쓰는 언어, 명제들은 모두 하나의 이데올로기인 거죠. 독일에선 아이들을 가르칠 때 지식을 암기하는 방식, 어떤 지식을 받아들여서 그대로 내뱉는 방식은 최악이라고 하고 이를 '파쇼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ㅡ의심을 품어봐야 한다는 것인가요

"그렇죠. 사실 경쟁도 똑같은 거예요. 우리 사회는 경쟁을 당연시하지만 역사 속으로 넣어보세요. 중세 길드 조직 안에서 경쟁은 사형에 처하는 중범죄예요. 왜 경쟁해요. 협력하고 연대하고 같이 살아야지. 

자본주의로 오면서 경쟁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관철됐고, 한국은 냉전체제랑 겹치면서 이게 가중됐어요. 냉전 속에서 남북체제가 경쟁했잖아요. 더블로 경쟁이 심해지면서 한국인에게 경쟁은 불행감의 원천이 됐어요. 경쟁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인식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거예요. 

문재인 정부 보세요. 이들이 '정의'라고 얘기하는 것은 항상 '공정'이에요. '이게 공정한 것이야, 아니야'만 생각하지 경쟁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가치라는 생각은 못 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공정성은 '양날의 칼'이에요. 공정성은 불공정과 특권을 비판하는 칼이 될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선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이는 거예요. 한국에선 주로 이 칼로 많이 쓰여요."

ㅡ우리 사회가 경쟁 없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봐요. 미국이 왜 저렇게 치열한 경쟁사회가 됐는지 먼저 이해해야 해요. 미국은 완전히 예외적 발전을 한 나라예요. 프랑스와 달리 지배 계층, 봉건 세력이 없었잖아요. 프랑스만 해도 봉건 세력이 독점하던 특권을 공격하기 위해 평등의 가치를 중요시했어요. 그런데 미국에선 자유의 이념은 과대 발전을 했는데, 평등 이념은 아예 없었어요."

ㅡ그런 미국을 우리가 닮고자 했고 심지어 미국 사대주의란 말이 나온게 아닌가요

"저는 사대주의만 해도, 미국이라는 객체가 있고 우리가 섬긴다는 거잖아요. 저는 그것도 약한 표현이라고 봐요. 그냥 미국과 우리는 하나예요. 한국인은 엄격히 보면 한국인이 아니에요. 영혼의 미국화예요. 총체적 미국화. 모든 제도가 미국식이고.

중요한 건 우리는 미국이 선진국의 모범, 글로벌 스탠다드로 알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해요. 미국은 유럽에서 볼 때는 완전히 사회적 지옥이에요. 동시에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닌 예외적인 국가죠."

▲ 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14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연구실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우리가 미국에 대해 독자적 시각을 가져야 할텐데 아직까지 그런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상태죠.

"그건 금방 이해할 수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비판적 담론을 내놓는 사람이 누구냐는 거죠. 누구예요. 홍세화, 유시민, 진중권, 박노자 뭐 이런 사람들이잖아요. 공통점이 뭐예요. 미국이 아닌 전부 유럽에서 공부한 사람들이에요.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비판의식이 떨어져서가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비판 의식을 갖기가 어려워요. 한국과 미국이 똑같으니까. 삶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고, 세계는 이렇게 돌아가는 거지, 이런 인생관, 세계관이 미국이나 한국이나 거의 같은 거예요.

한국 사회가 낯설지 않고. 미국 가서도 낯설지 않고. 똑같으니까. 그래서 이 사람들이 대체로 비판의식이 없는 거지요. 그들이 비판적 지식인이 아니어서 없는 게 아니죠. 그러나 저처럼 유럽에서 유학한 사람들은 일단 엄청난 충격을 받는 거예요. 너무 다르니까. 그러니까 한국에서 살았던 것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게 되지요." 


ㅡ우리나라 모든 적폐의 뿌리는 분단에 있다고 하셨어요.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요


"우린 자꾸 통일 문제를 북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로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 이 문제는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것으로 인식을 바꿔야 해요. 

우리를 정상화하는 것이 먼저예요. 냉전체제가 한국의 모든 것을 기형화했어요. 총체적 기형화. 이렇게 기형적인 사회가 어디에 있어요. 우리는 이 기형적인 사회에 70년 동안 살면서 기형성에 둔감해졌어요."

ㅡ하지만 기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90%죠

"그렇죠. 원래 세상은 이렇구나, 하면서 사는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일단 국가부터 기형적이죠. 근대국가의 기본 이념이 민족자결·국민주권인데 우리것은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힘 있다고 하는 자의 손아귀에 있어요. 그 자는 많은 사람이 '정신 이상'이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라고 책도 나와 있잖아요. 그 자에게 남한 5000만 명뿐만 아니라, 북까지 합치면 거의 8000만 명에 가까운 민족 전체의 생명을 맡겨놓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아무도 얘기를 안 한다는 게 너무 이상한 거예요. 한국은 완전히 야수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약탈적 자본주의가 됐어요. 왜 그렇겠어요. 분단이 만들어놓은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지형 때문이지요. 오른쪽 끝에 두 정당이 있어서 서로 네가 좌파니, 우파니 이러고 있는 정말 코미디 같은 상황인 거죠."

ㅡ통일에 접근하기 위해선 우리가 병든 것부터 자각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럼요. 국가가 기형화돼 있고, 분단이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지형을 가져왔고, 그 다음은 바로 한국인의 심성이에요. 한국인 자체가 분단이 만들어놓은 병영사회 속에서 권위주의적 성격을 내면화하고 있는 병자예요.

한국인은 굉장히 파쇼에 가까운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본인은 못 느껴요. 다 그렇게 사니까. 에리히 프롬이 말한 '정상성의 병리성'. 전부 병든 자 속에선 병 안든 자가 병자거든요. 냉전체제가 이렇게 병들게 해요. 그런데 냉전 다 끝났잖아요. 우리의 정상성을 회복하기 위해 통일문제가 중요한 거지요."

ㅡ통일문제는 우선 우리를 돌아봐야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평화 체제 구축은 신속하게, 통일국가로 실현은 신중하게.' 제가 이렇게 말을 한번 만들어 봤어요. 신속하게 평화 체제 구축해서 냉전 틀을 깨야 해요. 그래야 수구를 쳐내고, 우리 안에 있는 군사문화를 쳐내고, 미국에 대한 종속성을 극복할 수 있어요."

ㅡ국가보안법, 북한 핵, 주한미군 문제 같은 다소 민감한 주제에 대한 소견도 듣고 싶네요

"민감성이라기보단 전문성의 영역이라고 얘기를 하죠. 제가 공부를 했으면 전문적으로 얘기를 할텐데…국가보안법은 있을 수가 없는 법이죠. 그렇게 사상을 검열하는 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그래서 제가 포스트 파시즘이라고 한 거예요."

ㅡ문재인 정부에서 국가보안법 폐지할까요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죠.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그걸 할 용기가 있겠어요? 지금까지 그런 용기를 본 적 있어요? 문재인 정부가 그런 결단력을 보여준 적이 있나요?"

ㅡ혹시 총선 지나서 힘을 얻은 다음에 결단력을 보여주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그건 뭐 추측이니까 제가 얘기할 수 없지만, 문재인 정부가 역사의식을 가져야 돼요. 남북문제를 전향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통일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여도 된다고 봐요. 이 정부가 가진 한반도 미래의 그림을 놓고 정치적 걸림돌이 있으면 국민투표를 해야죠. 그렇게 결정하면 통일 정책이 속도를 받고 미국도 여기에 관여 못 해요.

바로 독일이 그렇게 했어요. 빌리 브란트가 그냥 순항한 게 아니에요. 독일이라고 냉전주의자가 왜 없겠어요. 독일은 국민투표가 아니라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에 국회를 해산해버렸어요. 그리고 재선거했어요. 핵심은 통일 문제였죠. 거기서 사회민주당이 역사상 최대 득표인 48%를 얻어요. 그 다음에 쭉 간 거예요. 그래서 저는 문재인 정부가 과감한 행보를 해도 된다고 봐요."

ㅡ주한 미군과 북한 핵무기 관련해서도 한 말씀 해주세요

"당장 주한미군 나가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동북아 정세 전체를 같이 보면서 얘기를 해야 해요. 그 다음에 단기적으로 보면 지금 트럼프가 터무니없는 방위비 내라고 하는 상황에선 나가라고 해야죠. 다투지 말고, '70년 동안 고마웠다. 이제 우리 힘으로 할게.' 그럼 미국에서 나가겠어요? 아니 그건 아니고, 내 말은…뭐 이렇게 나올 거 아니에요? 너무나 뻔한 수 싸움인데 그런 찬스를 놓치고 있어요."

ㅡ북한 핵은 그냥 가지고 가야 한다고 하는데

"그 부분은 말하기 어려워요. 잘 모르겠어요. 민족주의의 견지에서 핵 보유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올바른 생각은 아니라고 봐요."

ㅡ문재인 정부 절반 지났는데 총평과 남은 기간의 바람이 있다면

"문재인 정부가 평화 시기에 상황을 관리하는 정부였다면 굉장히 잘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전환기에 있어요. 이 상황에선 결국 결단의 지도력이 필요해요. 그 전환의 강도를 코로나라는 생태적 문제가 강화한 측면이 있죠.

문재인 정부 앞으로 남아있는 2년 동안 비전과 용기, 이 두 가지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뭘 할지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그걸 관철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한 거죠. 기존 질서를 바꾼다는 것은 기존 질서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과 필연적으로 부딪친다는 거예요. 용기 없이는 할 수가 없어요. 

저는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근본 모순은 결국은 분단체제예요. 분단체제를 깨면 수구보수가 과두지배하는 잘못된 정치질서도, 미국이 우리의 주권을 옥죄고 있는 터무니 없는 국민주권의 부재 상태도, 그 속에서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주의적 성격도 깨지겠죠.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과정을 거쳐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그러려면 용기와 비전이 필요하다고 봐요."

◆김누리는…

△ 1960년 서울 출생 △ 서울대 독어과 졸업 △ 독일 브레멘대 독문학 박사 △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 독일 유럽연구센터 소장 △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 독일브레맨대 독일문화연구소 상임위원

 
UPI뉴스 / 정리=남궁소정 기자 ngsj@upinews.kr, 사진=정병혁 기자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뉴스댓글 >

핫이슈

만평

2020.06.02 00시 기준
11541
272
10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