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에 좀먹는 '청와대 국민청원', 이대론 안된다

김광호 / 기사승인 : 2020-05-24 10: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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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월 딸이 초등생에게 성폭행당했다던 호소 결국 거짓
허위 청원 꾸준히 증가…취지 좋지만 신뢰성 논란 여전
전문가 "靑, 실명제보다는 명확한 가이드라인부터 정해야"

최근 생후 25개월 된 딸이 이웃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국민청원 제도의 신뢰성이 도마에 올랐다.

국민청원이 여론의 분출구가 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짜 청원으로 행정력이 낭비된다는 지적이다.

▲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메인화면 캡처


지난 19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생후 25개월 딸이 이웃 초등학생에게 성추행 당했다'며 지난 3월 올라온 청원글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면서 게시자 A 씨를 공무집행방해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A 씨에게 25개월 된 딸이 있었지만 가해 아동이 존재하지 않고, 피해 아동의 진료 내용도 청원인 주장과 다른 점을 확인하고 청원인을 추궁한 끝에 허위임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A 씨가 가해학생 부모와 나눴다는 대화 메시지, A 씨가 지목한 가해자 소재지도 찾아가봤지만 모두 거짓이었다는 설명이다.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도 이날 청와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5개월 딸 성폭행한 초등생 처벌' 청원에 답하며 "해당 청원은 허위사실"이라고 전했다.

A 씨 사례만이 아니다. 가짜뉴스나 틀린 정보에 기반한 청원 사례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청와대에 가짜 청원 글을 올려 동거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여성이 법원에서 벌금형을 받았다. 또 지난해 2월 '동생이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소 알고 지내던 청소년 남녀 무리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청원 글이 올라왔으나 경찰 확인 결과 가짜로 밝혀졌다.

2018년 4월에는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는 아이들을 구해달라"며 일곱 살 여자아이의 아빠를 고발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 제기자는 불법 음란사이트의 한 이용자가 딸을 상습 성폭행한다는 글과 함께 관련 사진을 게재했으며, 여기에 '나도 동참시켜 달라'는 내용 등의 부적절한 댓글이 30여 개 달렸다고 제보했다.

이 청원에도 21만6163명이 동의했으나 '오인 청원'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 발생한 아동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중국에서 제작·유포된 아동음란물을 캡처해 미국에 서버를 둔 음란 사이트에 올린 사진을 증거로 제시한 것이었다.

이밖에 지난 2월 '경기도 한 공원에서 청소년들에게 폭행·감금당했다'는 내용의 청원, 지난달 '청주시가 복지시설인 충북희망원의 고아들을 탄압했다'는 청원 등도 허위로 밝혀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2017년 8월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청와대가 신설한 국민청원 제도는 미국 백악관 국민청원 사이트 격인 '위더피플'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국민청원 게시판에 무분별한 내용이 쏟아지고, 인신공격이나 허위사실 유포 등의 잡음도 끊이질 않고 있다. 부적절한 내용이나 가짜뉴스를 거를 수 있는 최소한의 필터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이나 집단을 일방적으로 비방하는 등 정치적 활용이 의심되는 청원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자유한국당을 해산해달라는 청원이 등장해 183만 명이 넘는 추천을 받자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원도 올라와 33만여 명이 동의했다. 진영 대결의 싸움터가 된 것이다.

여기에 청원 내용보다 추천 숫자에 관심이 쏠리면서 여론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청와대는 허위 청원을 근절할 근본 대책을 강구하기보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에 따른 개선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강정수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지난 19일 "국민청원은 국민이 직접 참여해 의제를 만들어가는 국민소통의 장으로, 국민청원의 신뢰를 함께 지켜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이 지난 19일 '저희 25개월 딸이 초등학생 5학년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는 청원 등과 관련해 답변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영상 캡처]


전문가들은 청원법의 틀을 벗어나서 국민청원 게시판을 만들 때부터 가짜 청원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청원법에 따르면 청원에는 청원인의 성명과 주소를 밝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는 네이버·카카오·페이스북·트위터 계정을 통해 별도 가입절차 없이 청원을 올릴 수 있고, 닉네임 사용도 가능하다.

이에 청와대가 최소한 청원할 때만이라도 따로 실명인증과 회원가입을 강제하고, 청원 동의는 한 번만 가능하도록 하는 등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1월 '미국의 위더피플 사례를 통해 살펴본 청와대 국민청원의 개선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위더피플처럼 삼권분립 등에 반하는 요구를 담은 청원은 답변을 거부할 수 있거나, 청원 글을 공개하기 전 이메일로 150명의 참여자를 모집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성수 한양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국민청원 게시판에 실명제를 도입하는 것과 관련해 "실명제를 도입할 경우 사람들이 청원을 올릴 때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국민청원 제도 자체가 위축될 수 밖에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김 교수는 "실명제보다는 국민청원 제도의 다른 부분들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원 요건에 대한 엄격하고 명확한 기준이 없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분별하게 올리는 청원인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따라서 청와대가 국민청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정해 이를 엄격히 적용하고, 게시물에 대한 필터링 기능을 강화해야만 현재와 같은 가짜 청원의 범람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UPI뉴스 / 김광호 기자 kh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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