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 용서했다는 기사 황당해"

권라영 / 기사승인 : 2020-05-25 19: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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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는 곰이 하고 돈은 되사람이 받아먹었다"
기자들에게 "꼭 했던 말 그대로 해달라" 당부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92) 할머니가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기억연대 전신)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을 비판했다.

이 할머니는 윤 당선인이 찾아왔던 것에 대해 "무엇을 용서하냐"면서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왈칵 나서 제가 울었는데 그걸 가지고 '용서했다' 이런 기사 너무 황당하다"고도 말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다음은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전문.

제가 두 번째 기자회견을 합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또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제가 처음에 기자회견 할 때 했고, 한데 너무도 많이 생각지 못하는 것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정신대 대책 협의회입니다. 정신대 대책 협의회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입니다. 그런데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 하는 거는 정신대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하고 '위안부', 아주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데가 다 다릅니다.

잠깐 제가 갔던 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나이로 하면 16살, 만으로 하면 14살입니다. 저는 양력으로 돼 있습니다. 그때 성을 갈지 않으면 배급을 안 줬습니다. 성을 갈아서 야스하라라고 갈았습니다. 그런데 학교도 그때는 일본 학교입니다. 제가 3~4학년까지 다녔습니다. 그래서 가타카나를 알았습니다. 끌려가서도 대만 신주 가미카제 부대, 특공대 부대로 끌려가서도 그 장교가 가타카나로 써줘서 대화를 했습니다. 이 군인이 하는 얘기도 피해자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처음 듣는 얘기라가지고, 히가이샤(피해자)가 뭔지. 이 군인이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도시코라고 지어주면서 나도 도시코 같은 피해자라는 것을 적어줬기 때문에. 히가이샤가 뭔지 몰랐습니다. 그 후에 겪으면서 생각할 때 끌려가서 당했던 거는 말로는 못 합니다.

제가 쭉 30년 동안 해오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이 증언을 했습니다. 그러면 확실하고 또 바른말하고 이러니까 정신대 대책 협의회라는 데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92년도 6월 25일날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라는 간사였습니다. 간사한테 했습니다. 25일날 했는데 29일날 모임이 있다고 해서 갔습니다. 어느 교회입디다. 교회에 갔는데 그날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을 하고 돈을 얼만가 줬다고 하면서 100만 원씩 나눠줬습니다. 그게 무슨 돈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모금을 하는 것을 저는 봤습니다. 왜 모금을 하는지 그것도 몰랐습니다. 따라다니면서 모금하는데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농구를 하는데 기다렸어요. 기다려가지고 그 농구선수가 돈을 들고 모금을 하더라고요. 그 돈을 받아서 오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그게 왜 그런지 몰랐습니다. 그게 당연히 그런가 보다 했는데도 좀 부끄러웠습니다. 저렇게까지 막 농구를 하면서 이기려고 애를 쓰고 이렇게 하는데 거기 버젓이 앉아가지고 그 농구 끝나고 하면 돈을 받아서 나왔습니다. 좀 늦었습니다. 늦게인데 배가 고픈데 맛있는 거 사달라 하니까 "돈 없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뭐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디 가도, 교회 가도 돈을 주면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모르고 쭉 30년을 해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무엇입니까. 정신대 대책 협의회입니다. 그러면 공장 갔다 온 할머니들로 해야 되는데 말하자면 빵으로 말하자면 공장 갔다 온 할머니들은 밀가루로 반죽해서 빚어놓고 속은 맛있고 귀하고 한 걸 넣어야 안 됩니까? 그러면 그 속은 '위안부'입니다. 그런 그걸 해도 쭉 30년을 해와도 저는 그걸 몰랐습니다. 그저께, 그끄저께까지도 몰랐습니다. 어제 저녁에 가만히 생각하니 이것은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 모임이 '위안부',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가는 '위안부'를 왜 자기들이 정신대 할머니랑 합해가지고 쭉 이용해왔습니다. 저는 그것도 가능한 줄 알았습니다. 어저께 제가 생각하니 이럴 수가 있나.

삼십 년 동안 앉아가지고 얘기하는 게 "사죄해라, 배상해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지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죠. 섞어가지고 이거는 사죄도 하지 말고 안 해도 된다는 거 아닙니까. 이거를 30년 동안 해오면서 사죄, 배상을 요구하고 그 학생들까지 고생을 시켰습니다. 그 학생들 돼지 털어가지고 나오는 그 돈도 받아가지고 챙겼습니다. 이래서 저 어제 저녁에 잠도 한숨 못 잤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대책 협의회가 정신대 문제나 하지 자기들이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만두의 고명으로 사용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니 저는 자다가 일어나서 펑펑 울었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당하고서는 여태까지 왜 말도 못 했나 하는 걸 생각하니 그래 내일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 되겠다.

저희가 사죄, 배상 요구하는 것을 막았잖아요.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어떻게 같습니까. '위안부'는 생명을 걸어놓고 거기 가서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데 이런 그거를 30년을 이용했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일 기자회견 할 때는 이것을 내가 반드시 밝혀야 되겠다. 일본이, 그 사람들 바봅니까. 뭣 하는데 정신대 대책 협의회가 '위안부' 문제를 하는데 거기가 해당치도 않았는데 뭣 하러 그 사람들이 사죄하고 배상하겠습니까. 안 한 이유를 저는 알았습니다. 이것 또한 무엇입니까. 이것은 할머니들로 '위안부' 할머니들로 팔아먹었습니다. 팔았습니다. 내가 왜 팔려야 됩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아들 6형제에 딸 하나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놓으면 터질까 불면 날아갈까 아들 6형제라도 쌀 한 움큼 넣어가지고 엄마가 치마로 감싸가지고 "수야, 이리 온나" 해서 부엌에서 먹이고 했습니다. 이런 남의 집을 귀한 고명딸을 밤에 끌고 가서 대만 신주 가미카제 부대를 가서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끌고 가서 전기고문과 갖은 걸 가지고 몸을 그래가지고 이렇게 죽여놨습니다. 이런데 군인이 보니까 방에 들어가라고 담요를 드는데 군인이 앉았는데 거기 들어가라고 해서 안 들어간다고 오는데, 와서는 머리를 그냥 끌고, 질질 끌고 가서 방안에 자물쇠가 큰 게 달렸습니다. 그걸 탁 떼더니 문을 열더니 확 밀었습니다. 엎어지니까 또 일으켜가지고 군홧발로 허리를 차서 엎어졌는데, 배는 찢어지도록 아프고 죽도록 아파가지고. 저 잘못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도 잘못했다고 빌면서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이런데 또 머리를 쥐어뜯고 앉혀가지고 동그란 테이블이 있는데 여기 하나 감고 여기 하나 감고. 지금 머리에, 귀에 소리 납니다. 그때 제가 엄마라고 크게 부른 게 귀에서 나는지 머리에서 나는지. 이것을 어린 날에서부터 지금까지, 지금도 납니다. 이래도 이걸 왜 그런지 누구한테라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정신대 대책 협의회라면 이걸 밝혀줘야 안 됩니까. "할머니 어디 갔다 왔습니까, 어디 갔다 왔습니까" 해가지고 밝혀줘야 되는데 한 번도 할머니를 앉혀가지고 증언 한 번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냥 모여서 노는데 밥 먹는데 "어디 갔다 왔습니까, 어디 갔다 왔습니까" 해서 그걸 책을 냈습니다. 93년도부터 서교동에 집이 있었습니다. 책을 놓고 그 책을 6500원에 파는 걸 봤습니다. 그래도 그걸 몰랐습니다. 그걸 챙겼는지 모르고 그것이 당연한가 보다 하고 다니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제가 제 일이라고 생각하고 증언도 하고 또 정신대 대책 협의회 박물관을 짓는데 서대문형무소서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박경림 씨하고 저희 큰조카 내외하고 저하고 가서 15만 원을 받고 정신대 대책 협의회에서 증언을 했습니다. 이러면 그 박물관에든지 대표가 돼 있습니다. "대표 소리하지 마라. 창피하다" 했습니다. 그러면 대표 소리는 안 해도 대표 대우는 해줘야 될 것 아닙니까.

하지만 끝까지 3월 30일날 제가 전화했습니다. "미향 씨 이러면 안 되지 않나. 한 번 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기자회견 하련다" 했는데 아주 큰 소리로 당당하게 기자회견 하라 해서 제가 5월 7일날 기자회견 한 겁니다. 이런 등등을 제가 하나하나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빨리 생각이 안 납니다. 이래서 제가 기자회견을 했는데 어느 날입니다. 여기 와 있을 겁니다. 소위 국회의원으로 나올 적에 제가 도와준 건 없지만 가보고 돼야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저딴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나갔다가 들어오니까, 들어와가지고 막 있는데 문을 열어 달라 해서 열어주니까 윤미향 씨가 싹 들어오는 거예요. 제가 넘어갈 뻔했습니다. 놀라서. 그러면서 와서 무릎을 꿇고 무슨 말인지. 용서? 뭐를 용서합니까. 뭘 가지고 와야 무엇이든 가지고 와야 용서하든가 하죠. 뭐를 용서? 보니까 엄청나구나. 그것은 검찰에서도 할 것이고 내가 며칠 후에 기자회견을 할 테니 그때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소위 교수라 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는데 내가 말을 안 했습니다. 아까 뻔뻔하게 차에 내려서 휠체어 타려고 하니까 무엇이 어떻고? 도대체 뻔뻔스럽기 짝이 없어요. 이런 사람이 윤미향을 뽑으라 했답니다. 무엇입니까, 이거는?

그래서 윤미향한테 며칠 후에 내가 기자회견을 할 테니까 그때 오라고 하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뭐가 있더라고요. 있는데, 거기서 무슨 원수진 것도 아니고 30년을 지내 왔습니다. 했는데, 한번 안아달라 합디다. 그래서 저는 생각에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안아주니, 저도 인간입니다. 사랑은 내리사랑입니다. 30년을 같이 있으니까 원수도 아니고 하는데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눈물이 왈칵 나서 제가 울었는데 이걸 가지고. 기자님들 좀 부탁드립니다. 명백하게 좀 기사를 내주세요. 그걸 가지고 용서했다, 이런 기사 너무 황당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거는 확실하고 명백히 여러분들도 다 책임이 돌아가는 일입니다. 제가 이거를 명백하게 하려고 했는데 혼자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이걸 그만둬라, 하지 마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있었는데 이 사람은 자기 맘대로 하고 싶으면 하고 팽개치고 하는데 어떻게 30년이나 같이 해왔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그래서 맘대로 팽개쳤습니다.

저만 그런 거 아닙니다. 우리 국민들, 세계 여러분들이 그 데모에 나오십니다. 그분들도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고 있습니다. 이래놓고 또 자기가 사리사욕을 차려가지고 맘대로 국회의원 비례대표도 나갔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한테 얘기도 없었고 하니까 자기 맘대로 하는 거니까 제가 무엇을 용서를 합니까. 이름도 성도 없는 용서? 자기 마음대로 했으니까 그것도 자기 맘대로 하든지 말든지 하는 거지 저한테 책임을 미룰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뭣 때문에 용서를 바랍니까. 그것 아니라도 여러 수십만 가지를, 제가 다 말씀을 못 드립니다. 속이고 이용하고. 재주는 곰이 하고 돈은 되사람이 받아먹었습니다. 재주는 30년 동안 재주 했습니다. 그 돈은 되사람이 받아먹었습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무엇을 용서를 바랍니까.

해서 저는 데모 방식을 바꾼다는 거지 끝내는 건 아닙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시작했고, 또다시 새롭게 학생들에게 교육적인 이거를 하기 위해서 제가 바꾼다 했습니다. 그러면 먼저도 얘기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이웃 나라입니다. 이러면 이 학생들이 결국은 그 나라 주인 아닙니까. 하니까 이 학생들이 알아야 사죄 배상을 무엇 때문에 사죄 배상을 한다고 하는가 알아야 될 거 아닙니까. 일본 아베는 서류만 나오면 불살라버립니다. 그래놓고는 한국이 거짓말한다. 그래서 학생들한테 물으면 "한국이 거짓말쟁이다,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나오니까, 그것도 몰라서 그런 거 아닙니까. 우리 학생도 몰라서 그렇고 일본 학생도 모르고 거짓말이라 하니까 거짓말만 하는 한국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겁니다. 일본과 한국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이게 시간이 오래 갈 겁니다. 가도 이 학생들이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네 한국이 왜 일본한테 배상하고 사죄하라 하냐, 무엇 때문에?" 이런 걸 얘기하면 "일본은 왜 하지 않냐" 하면 "거짓말이라 하니까, 우리는 그 말을 들었다. 그러기에 한국이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거를 학생들한테 가르쳐가지고 서로 왕래하며 친해지면 속에 할 말도 있고. 또 배워야 됩니다. 배워야 알지요. 그래서 제가 짧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대구에 역사관이 있습니다. 이것도 또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었습니다. 이건 또 누가 했습니까. 대구에 아주 유명한 최봉태 변호사가 대표로 있으면서 이걸 했습니다. 그래놓고는 지금 윤미향을 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할머니, 윤미향 욕하지 마세요. 김복동 할머니 존대 받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에 돈을 많이 내고 하니까. 그러면 나비기금이라든지 하는 거 김복동 할머니 이름으로 했다고 김복동 할머니 돈입니까?

어느 날 미국을 가기로 했는데 윤미향이 모금을 600만 원인가 했는데 저한테 전화 와서 하는 말이 "할머니, 할머니는 전대협 사람 아니라고 못 오게 해요." 이것 또한 말이 됩니까? 그러면서 모금을 하라 했습니까? 제가 간다 했습니까? 이런 등등. 그뿐 아닙니다. 많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30년 그것만 얘기했는데 줄줄줄 나오는 게 엄청나게 나옵디다, 엄청나게. 말도 못 하게 나옵디다. 그러면 할머니들 팔아가지고 했으니까. 택도 없는 할머니 아닙니까. 왜 '위안부' 할머니를 자기들이 했습니까. 부정 아닙니까, 이것도. 이것도 또한 죄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사죄, 무슨 사죄입니까? 저는, 김복동 할머니요. 김복동 할머니를, 저는 왜 김복동 할머니만 그렇게 했냐 그랬습니다. 그 김복동 할머니는 한쪽 눈이 실명입니다. 저보다 두 살 위입니다. 한쪽 눈 조금 보이는 이 할머니를 끌고 다녔지요.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다니면서도. 회관까지 지어준다고? 있을 때 잘하고, 할머니 있을 때 해야 하는데 고생시키고 끌고 다니면서 할머니를 이용해놓고 그래놓고도 뻔뻔스럽게 묘지에 가서 눈물 흘려요? 그것은 가짜의 눈물입니다.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이런 것도 죄인데,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 이렇게 하는데. 그것은 다 검찰청에서 밝힐 겁니다. 하지만 정신대 대책 협의회에서 '위안부'를 이용해가지고 했던 거는 도저히 용서 못 합니다. 이것도 또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끝까지 제가 나이가 들다가 보니 자신이 없습니다. 한데 우리 학생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한국과 학생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해서 '위안부' 문제 사죄하고 배상하는 것을, 이것은 천년이 가도 만년이 가도 반드시 일본이 해야 합니다. 이런 걸 하기 위해서, 이런 걸 알기 위해서는 양국 간에 친하게 지내면서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사람들이 꼭 역사의 주인이니까 이분들은 올바른 역사 교육을 시켜가지고 이 억울하고 누명 쓴 우리 '위안부' 할머니 해결해줄 사람들은 우리 학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지금도 당해야 되고.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게 죕니까. 왜 이걸 당해야 합니까. 끝까지 이걸 당해야 하는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할머니들한테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다. 언니, 동생들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으니 나를 용서해달라"고 비렵니다. 그래서 그거를 생각하니까 너무 제가 미안하고 한데 저는 하나도 부끄럼이 없습니다.

이렇게 '위안부'입니다, '위안부'. 이것이 저는 세계의 여성분들께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세계의 여성 여러분들, 저희들 '위안부'라 하지만은 여성이라는 그 두 글자가 너무 미안하고 해서 어떻게 하면 이런 것도 내가 미안한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 기회를 빌려가지고 모든 여성분들께 정말 미안합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누명도 쓰실 것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다, '위안부'가 여자다, 하는 것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런 소리도 들으실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떻게 합니까. 이런 기자회견을 통해서 세계 여성분들에게 이 확실한 '위안부'가 "여러분들의 여자라는 두 글자가 손상을 입었다는 게 참 죄송합니다" 하는 걸 말씀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제가 이 교육을 확실히 두 나라가 서로 왕래하고 친하게 지내서 이 역사를 아셔가지고 이 억울하고 억울한 '위안부' 문제를 사죄받고 배상해야, 제가 사죄를 받아야 '위안부' 누명을 벗습니다. 제가 왜 '위안부'고 성노예입니까.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하냐 하니까 미국이 들으라고 미국 사람 겁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이렇게 팔아가면서 뭐를 했습니까. 그렇게 하는지 몰랐습니다.

저 안성이라고 하는 것도 보니까 나왔는데 쉼터를 지어놓고 화려하게 지어놨습디다. 그래서 윤미향 대표, 위대한 대표 그 아버님이 사셨다 하더라고요. 이런 거 엄청나게 나왔는데 그것은 다 검찰청에서 다 밝힐 겁니다. 이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도 큰소리하고 있는 사람들 죄는 지은 데로 가고 공은 닦은 데로 갑니다. 이 죄를 꼭 물어서 죄를 살려야 됩니다. 살려놓고 제가 마음이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고쳐야지요. 이 뒤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또한 무슨 말씀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에게 이걸 밝히기 위해서 너무너무 여러분들이 오셨는데 장소가 너무 좁습디다. 그래서 제가 해야 되니까 여러분들이 다 오셔서 안 가시도록 하기 위해서 제가 장소를 바꿨습니다. 기자 여러분들 부탁드립니다. 꼭 했던 말 그대로 해주세요. 없는 말 추측해가지고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저를 욕보이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다 옳은 말씀으로 기사를 내주셨으면,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제가 오늘 장소를 바꿔라 했습니다. 바꿔서 여러분들과 같이 앉아서 마지막 얘기를 드리려고 했는데 구구히 많습니다. 그 이야기를 드리면 여러분들도 너무 가슴 아파할 거고 해서 제가 요즘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렇게 아시고. 저 지금 정말 죽겠습니다. 너무 죽겠습니다. 그 좁은 데서 하면 코로나가 퍼졌다 하는데 저는 걱정이 돼서요. 좁은 데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제가 여러분을 이렇게 큰 데 모셨습니다. 그 점을 양해하시고 꼭 기사는 있는 그대로 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UPI뉴스 / 권라영 기자 ry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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