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민' 김련희 "文대통령님 제발 저 좀 고향에 보내주세요"

김형환 / 기사승인 : 2020-05-26 17: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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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돈벌어 올 수 있다는 말에 속아 한국행
평양에 가족 둔 채 9년 간 '한국살이' 생이별
"태영호 의혹 사실이면 조주빈 북한 의원된 격"
"빨리 남북화해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를"
"어머니가 76살이신데 2년 전에 실명을 했어요. 제 얼굴은 보실 수 없지만 제 목소리는 들을 수 있어요. 제 목소리라도 들려드릴 수 있게 제 고향 평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 2011년 탈북브로커의 말에 속아 한국에 온 김련희 씨가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평범한 양복사로 일하던 김련희(51·여) 씨는 2011년 '두 달간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탈북 브로커의 말에 속아 한국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9년이 흘렀고, 여전히 그는 한국에 남아있다. 한국에 온 이후 지금까지 입북을 원하고 있지만 돌아갈 방법이 없다. 한국 정부는 '자발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보내줄 현행법이 없다'며 출국을 막고 있다.

9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낯선 한국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김련희 씨는 대구 재활용 센터에서 일했다. 하지만 관계요원이나 언론인들이 접촉을 하는 통에 '권고 사직'을 해야 했다. 지금은 '왈가왈북'이라는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북한에 대한 균형된 시각을 전하는 평화통일운동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주 수입원은 강연인데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행사가 뜸해 벌이도 시원찮단다. 9년간 한국살이가 어땠냐는 물음엔 "자본주의 물 많이 먹었습니다"며 조크도 했다.

김 씨는 3년 전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평양시민' 김련희 씨와 26일 만나 그간의 생활과 한국살이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대담=이원영 정치·사회 담당 에디터

ㅡ김련희씨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2011년 6월에 중국에 있는 사촌 언니네 집에 여행을 갔어요. 해외여행은 난생 처음이었어요. 이렇게 해외여행 나온 김에 평소 앓던 간경화 치료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은 중국도 사회주의니깐 병원에 가면 북에서처럼 다 공짜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험도 안되고 그러다보니 소화제, 감기약 처방받는 데도 많은 돈이 들었어요.

차라리 중국에서 돈을 벌어서 치료받아 건강하게 북한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탈북 브로커가 '당신 바보냐. 중국에서 돈 못번다. 한국에 가면 돈 벌어 다시 들어올 수 있다'고 했어요. 북에서 고난의행군 때 힘들었잖아요. 그때 북에서 중국으로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밀항하고 그랬어요. 저는 그래서 국가 간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 큰일인지 몰랐어요. 그래서 두 달 간 한국에서 돈 벌어서 치료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으로 가자는 결심을 했어요."

ㅡ정말 두달이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죠. 국경이란 게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브로커가 오라는 데 갔더니 다른 탈북자가 7명 있었어요. 하룻밤을 같이 자는데, 그 사람들 이야기하는 게 일주일 있으면 라오스 가고, 한 달 있으면 한국 가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2개월 만에는 한국에서 절대 돌아오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국으로 가면 정보기관에서 3개월, 하나원에서 3개월 있어야 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더라구요. 깜짝 놀랐죠. 그래서 나는 안 가겠다, 보내달라고 했지만 보내주지 않았어요.

철창에 갇혀 있어 도망칠 수도 없었어요. 브로커 입장에서는 한국으로 보내야 탈북자들이 한국 당국에서 받는 목돈으로 브로커 비용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뉴스타파에 '나를 북으로 보내주오'라는 동영상이 있어요. 그 영상을 보면 처음부터 함께 있던 사람이 내가 원래부터 도망치려 했다는 증언이 나와요."

-그럼 중국에서부터 한국으로 오는 걸 원치 않았는데 오게 된 건가

"브로커가 안 보내주길래 포기하고 그래도 남조선은 형제나라니까 내가 남쪽에 가서 '보내주세요'하면 보내줄 줄 알았어요. 그래서 한국에 온 후 정보당국에 간 첫날부터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보내주지 않았어요. 정보당국이 '대한민국 국민이 되겠다는 서약서를 써라, 그걸 쓰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고 했어요. 무서웠어요. 살아서 나가야 하겠다는 마음 뿐이었지요. 정보기관 3개월,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 3개월 보내고 또다시 6개월 지나면 한국 여권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내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대한민국 여권을 받아서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구나' 생각하고 서약서를 쓰고 나왔어요."

ㅡ그래서 한국 여권은 발급됐나

"보통 탈북자들은 1년 정도 지나면 한국여권이 나오는데 나는 안 나오는 거예요. 저를 관리하는 당국에 왜 나는 여권이 안 나오냐, 고 물어보니 '너는 원래 북으로 가려했으니, 여권을 발급해줄 수 없다'는 거예요. 저는 너무 답답했어요. 제가 합법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는 탈북자에 시켜서 밀항을 알아봤어요. 근데 2500만 원 내라는 거예요. 200만 원도 없는 상태에서 돈을 낼 수 없어서 포기하게 됐지요. 그러던 중 여권을 위조하는 사이트를 발견해요. 그래서 그 사이트에 연결해서 위조 여권을 만들다가 경찰에게 들키게 돼 잠입탈출죄란 죄목으로 10개월 동안 감옥살이도 했어요. 한국여권은 8년 만인 작년에 비로소 나왔어요."

ㅡ그렇다면 이제 중국 거쳐서 북한으로 돌아갈 방법이 생긴 건가

"탈북자 중에서 한국에서 살기 힘들어 북으로 돌아간 사람이 몇 백명 된다고 해요. 대부분 중국으로 여행 갔다가 북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쓰는 거지요. 나도 그렇게 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여권은 받았지만 나는 해외여행을 하지 못해요. 매달 출국금지 통지문이 와요. 이유는 '현행법 계류 중'이라고 나와요. 무슨 법에 무슨 이유로 내가 계류 중인지 모르겠어요."

ㅡ생계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작년까지 대구에서 살면서 재활용 회사에 다녔어요. 일이 너무 힘들다보니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어요. 거기서 일하는데 계속 경찰이 찾아오고 언론에서 찾아오니 사장님이 나가달라고 해서 나오게 됐어요. 어디서도 나를 받아주지 않아서 일을 하지 못했어요."

ㅡ요즘은 강연하고 유튜브하면서 통일운동을 한다고 들었다

"전국에 강연을 다니고 있어요. 한국 언론들이 북을 너무 악마화하니깐 '그게 아니다. 북도 살 만하다. 웃음도 있다'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강연을 하고 있어요. 단편적으로 알려진 북을 종합적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누구나 자기 추억에서 좋았던 것, 싫었던 것, 기뻤던 것, 슬펐던 것, 다 말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탈북자들은 싫었던 것, 슬펐던 것만 말해야 해요. 북한에 대해 나쁜 말만 해야하는 것이죠. 좋은 말을 하게 되면 안되는 게 슬픈 현실이죠. 그러니 북에 대해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만 더욱 퍼뜨리게 되잖아요. 저는 북에 대한 균형된 시각을 갖도록 있는 그대로 얘기해주려고 해요.

심지어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는 말을 해도 문제가 되잖아요. 내 친구가 카페에 '고난의 행군 때, 우리 공장에는 간부들이 도시락을 싸와서 노동자들에게 넘기고 본인들은 굶었다. 그래서 우리 공장에서는 노동자들보다 당원들과 간부들이 더 많이 굶어 죽었다. 지독하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이런 글을 썼어요. 이런 글을 썼다고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았어요."

▲ 2011년 탈북브로커의 말에 속아 탈북한 김련희 씨가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ㅡ탈북자 중에는 반북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마찰은 없는지.

"제가 같이 하는 유튜브 채널의 출연자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죽이겠다' 이런 협박을 하기도 했어요. 저에게는 '어디 사는지 찾아내서 찢어 죽이겠다' 이런 문자도 보내요.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죠. 겁도 나지만 제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합니다."

ㅡ지금 북에는 가족이 어떻게 있는지.

"북에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 2명, 남편, 딸이 있어요. 연락은 꾸준히 하고 있어요. 언론인들, 방북동포들이 연결해주기도 하기도 하고 딸이 영상을 찍어 보내기도 하고 그래요. 북쪽의 인터넷으로는 남쪽에 연결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 휴대폰을 가지고 간 사람을 통해서 연락을 해요. 어머니가 76살이신데 2년 전에 실명을 했어요. 제 얼굴은 보실 수 없지만 제 목소리는 들을 수 있어요. 제 목소리라도 들려줄 수 있게끔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요."

ㅡ탈북자로서 한국에서 9년을 살았다. 탈북자들의 삶은 어떤지.

"우선 취업을 못해요. 북에서 온 탈북자들은 보통 고등학교나 겨우 나온 사람들이 많아요. 주로 고난의행군 때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온 사람도 있지요. 생계형 탈북자들은 결국 막노동을 해야 해요. 식당에서 일하려고 해도 말 톤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취직할 때 조선족으로 숨기고 일을 해요. 북 출신인 걸 밝히면 안 뽑아줘요. 남자들은 더 힘들어요. 탈북자들의 자살률은 한국 자살률의 3배라는 통계도 나온 적이 있지요.

남자들은 진짜 자살 많이 해요. 탈북자의 75% 정도가 여성이에요. 일반 직장을 나갈 수 없으니깐 많은 숫자가 유흥업소로 빠져요. 북에 가족이 있다 보니 돈을 벌어서 보내야 해요. 북에 있는 가족을 살리려면 다방이나 노래방, 유흥업소 이런 데서 일해야 해요. 정부에서 43만원 주는 정착금은 6개월만 줘요. 정말 살기 힘들어요."

ㅡ탈북자 중에는 자본주의에 적응 못해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현재 돌아간 사람이 300여 명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더 많을 거예요. 북에 들어가서 공개 기자회견 한 사람이 20여 명이나 돼요. 제가 아는 친구도 두세명 들어갔어요. 여권만 있으면 북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어요. 중국 가면 북으로 들어가는 도와주는 브로커들이 있어요. 그리고 두만강을 통해서 들어갈 수도 있어요. 남쪽에 자리 잡은 탈북자중에 북에 들어갔다 다시 들어온 사람도 제법 돼요."

ㅡ탈북자가 북에 다시 가면 심지어 처형당한다는 말도 있던데

"북에 다시 들어가면 사형당한다, 이런 말이 있는데 이게 바로 '북한 악마화' 프레임이에요. 고경호라는 탈북자 출신이 있어요. 이 사람은 한국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그랬어요. 북 수뇌부에 대해 비판하고. 나중에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닫고 북으로 다시 들어갔어요. 북에서 15일간 조사받고 다시 정상활동하고 있다고 해요. 고경호를 잘 아는 조선족을 통해 들었어요.

탈북했다가 들어가도 엄한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임지연이라고 한국에서 북에 대해 비판을 많이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도 북으로 가서 잘 살고 있어요. 한국 언론들 인식처럼 북에 들어가서 죽거나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요. 꼭 북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캐나다, 프랑스, 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도 많아요."

ㅡ최근 중국 류경식당 북한 종업원 출신 탈북자들을 입북 권유했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저는 지배인 1명과 종업원 2명을 만난 적이 있어요. 이 사람들이 정보당국으로부터 나(김련희)를 만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맨 처음에는 안 만나려고 하다가 설득해서 만나게 됐어요. 이들이 어떻게 탈북했는지 자세히 들었어요. 그들 자유의사가 아니에요. 들어보니 완전 유인납치나 마찬가지예요."

ㅡ김련희 씨처럼 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데 한국 정부가 왜 막는다고 생각하나

"공식적으로는 '자발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북으로 보내줄 현행법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통일부에서 기자들에게 밝힌 바로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김련희를 북으로 보내면 체제 선전용으로 사용한다는 것이에요. 한국이 체제 선전에 불리해진다는 논리예요.

두 번째는 현재 남쪽에 3만 명의 탈북자가 있는데 북한에 보내주는 선례가 생긴다면 너도 나도 들어가버리면 뒷감당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에요. 북 종업원들이 원한다고 보내주면 결국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강제성을 인정하는 것이 되니까 안 보내는 거겠죠. 인권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판단하려 하니 고향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우리들이 힘든 거죠."

▲ 2011년 탈북브로커의 말에 속아 탈북한 김련희 씨가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ㅡ탈북자 중에는 반북 활동을 하는 단체가 많다

"탈북자들은 3가지 유형이 있어요. 고난의 행군 때 넘어온 생계형 탈북자, 범죄를 저지르고 돌아온 도피형 탈북자, 저처럼 비자발적으로 넘어온 탈북자. 가장 악질적인 사람이 두 번째 사람인데 이들은 남북의 교류가 있으면 처벌 받을까 두려운 거예요. 이들은 남북의 교류를 막고 남한으로 흡수통일되어야 잡혀갈 우려가 없으니 적극적으로 반북활동 하지요. 숫자가 사실 많은 것도 아니에요."

ㅡ탈북자 출신 태영호 씨가 이번에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태영호는 미성년자 강간하고 여러 가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있잖아요.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면 'N번방' 조주빈이 북한에 가서 국회의원이 된 것이랑 똑같은 거잖아요. 이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이에요. 

북에선 미성년자 강간은 사형에 처해요. 엄중한 죄이거든요. 이러한 의혹이 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있어요. 태영호가 그를 도와준 미국의 손을 뿌리치고 남북관계를 위해 일을 한다? 절대 아니라고 봐요. 태영호는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ㅡ북과 남에서 다 살아봤는데 살아보니 어떤가

"장단점으로 따지자면 딱 반반인 거 같아요. 북에서는 일단 먹고 사는 데는 크게 걱정이 없습니다. 나라에서 시키는 일을 하면 먹고 사는 거는 해결이 되죠. 그래서 앞날에 대해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요. 그런데 경제 제재 때문에 물자가 풍부하지 못해 누리고 싶은 거를 마음껏 누릴 수는 없지요. 반면에 남에서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 북에서 누리지 못한 것을 누릴 수 있는 게 장점이죠. 그런데 항상 긴장하고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그게 탈북자들에겐 가장 힘든 부분이에요. 나도 자본주의 사회 9년을 살다보니 자본주의 물이 많이 들었어요.(웃음)"  

ㅡ남한에서 볼 때는 북과 남의 가장 큰 차이는 자유가 아닌가 보는데

"그건 자유를 어떤 개념에서 보느냐의 차이라고 봅니다. 나는 북에서 살 때 내가 자유가 없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북에서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와 조직이 먼저라는 생각이 강하지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가 제한당한다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는 국가 권력에도 도전하는 나라지 않습니까. 그런 개념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ㅡ탈북자로서 한국 국민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북측 정부에 대한 비난이 북 인민들에게, 탈북자들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끼치는 거예요. 한국 국민들이 북측 정부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고 탈북자를 대하는 거예요. 북측이 미사일 쏘면 그걸 탈북자에게 화풀이하고 그러는 거예요. 판문점으로 기관총을 맞고 넘어온 오청성이라는 탈북자가 있었죠. 그 때 황당했던게 이 사람이 생사를 다투고 있을 때, 한국 언론은 오청성이라는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에 주목하기 보다는 이 사람 뱃속에 있었던 배변과 기생충이 가장 큰 관심사였지요.

이 사람이 남쪽 사람이었다면 그랬을까요? 이게 바로 탈북자에 대한 대한민국의 시선인 거죠. 아는 탈북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갔는데 이 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이 학교를 고소한 거예요. 탈북자들의 자식들과 공부할 수 없다고. 그래서 이 사람들은 다음날로 짐을 싸서 이민을 갔어요. 북에서 의사를 하던 사람이 남한에 와서 막노동을 하다가 꼭대기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도 있었어요. 국민들이 탈북자를 바라볼 때 거부감 이런게 확실히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 탈북자를 '동반자'로 인정하고 사람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 좋겠어요."

ㅡ한국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문재인 대통령께 하고 싶은 말은 탈북자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분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12명의 종업원이 강제로 남쪽에 오고 이러한 일은 결국 분단 때문에 벌어진 일이잖아요. 분단이 있는 한 이런 일이 꼭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분단의 비극을 빨리 끝내고 하루 빨리 북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좋겠어요. 게다가 저는 엄마잖아요. 문재인 대통령도 가족이 있고. 9년째 가족을 못보고 있는데, 최대한 빨리 만나고 싶어요. 대통령님 제발 저 고향에 가서 가족 만나게 해주세요."

UPI뉴스 / 정리=김형환 기자 khh@upinews.kr 사진=정병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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