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영웅" vs "독립군 잡던 친일파"…백선엽은 누구인가

김광호 / 기사승인 : 2020-05-29 15: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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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하면 날 쏴라"…6·25 전공 혁혁한 한국군 최초 대장
'간도특설대' 복무 전력 때문에 친일 행적 비판 받아
백선엽 장군 측 "지역과 무관하게 현충원 안장 희망"

군 최고원로 백선엽(100) 장군(예비역 대장)의 사후 국립현충원 안장 문제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이 지난 24일 '친일파 파묘(破墓)' 이슈를 꺼내고, 국가보훈처가 현충원 내 백 씨의 장군의 묘역을 만들지 않는다는 보도가 나오자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 주한미군이 주관하는 백선엽 예비역 대장 백수연이 열린 2018년 11월 21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백 대장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두손으로 잡으며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논란은 최근 여권에서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불거졌다. 이 내용대로 법 개정이 이뤄지면 '6·25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는 백 전 장군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게 된다.

민주당 김홍걸 국회의원 당선인은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백선엽 씨는 본인의 친일 행적을 고백했다"며 백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반대 의사를 밝혔다.

김 당선인은 "친일파 군인들의 죄상은 일제강점기에 끝난 것이 아니고 한국전쟁 중 양민학살이나 군사독재에 협력한 것도 있기 때문에 전쟁 때 세운 전공(戰功)만으로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일본에서 발행된 백선엽씨의 책을 보면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만주군 간도특설대 시절 본인의 친일행적을 고백하는 내용이 있다"고 했다.

이에 재향군인회가 "국군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야권에서도 미래통합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백 장군은 '6·25의 이순신'"이라고 반박한다. 백 장군의 공과를 균형 있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만큼 백 장군은 논란의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백 장군의 6·25 전공(戰功)에 대해선 대체로 이견이 없다. 백 장군은 북한군의 기습으로 국군이 낙동강까지 후퇴했을 때 육군 1사단을 지휘했다. 그는 경북 칠곡에서 지원 나온 미군 2개 연대와 함께 6·25 최대 격전으로 꼽히는 다부동 전투를 치렀다.

당시 전투 중 한국군 병력의 이탈이 심하자 후퇴하는 한국군을 가로막으며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장병을 독려해 결국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백 장군이 이끈 1사단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했고, 평안북도 운산까지 진격하기도 했다. 1951년 11월엔 야전전투사령부 사령관에 임명돼 지리산 빨치산 소탕 작전 등에도 공을 세웠다.

그는 전쟁 중이던 1952년 만 31세에 한국군 사상 최연소 육군참모총장에 올랐으며, 33세엔 한국군 최초의 대장이 됐다. 1954년 제1야전군을 창설하고 사령관에 부임해 기틀을 다져놓았고, 그 뒤 1957년엔 두 번째로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이후 1960년 예편한 뒤 주중·주프랑스 대사관 대사와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 2018년 11월 21일 서울  국방컨벤션에서 주한미군 주관으로 열린 백선엽 예비역 대장 생일파티에서 백 장군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그의 삶의 궤적엔 그늘도 짙다. 6·25 전공과 별개로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때문에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는 일제시대 당시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일제 만주군 소위로 임관해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전력이 있다. 간도특설대는 일제가 조선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조선인으로 구성해 만든 특설 부대다.

"시대의 자랑, 만주의 번영 위한/징병제의 선구자 조선의 건아들아/ 선구자의 사명을 안고/ 우리는 나섰다 나도 나섰다./ 건군은 짧아도/ 전투에서 용맹 떨쳐/ 대화혼(大和魂)은 우리를 고무한다/ 천황의 뜻을 따르는 특설부대/ 천황은 특설부대를 사랑하네."

이는 중국 안투문사자료에 나와 있는 '간도특설대가'로, 가사만 봐도 간도특설대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 대화혼이란 일본혼, 즉 일본 민족정신을 말한다. 간도특설대는 항일무장세력과 민간인 172명을 살해하고, 강간·약탈·고문을 자행했다. 

간도특설대는 당시 만주 일대에서 악명이 높았던 것으로 사료는 증언하고 있다.  

"1941년 겨울 변계산 지대에서 토벌하다 항일전사 2명을 포로한 놈들(간도특설대원)은 명월구 공동묘지로 그들을 끌고 가서 전체 대원을 집합시킨 다음 군도로 목을 자르고 시체 옆에서 기념사진까지 찍었다.","1944년 5월 어느 하루 아기하 중대장놈이 부대를 거느리고 사가장자 마을을 습격하였다. 놈들은 녀자는 만나는 족족 강간하고 좋은 물건은 닥치는 대로 빼앗았다." '중국조선민족발자취 총서'는 간도특설대의 악행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안투문사자료는 "사람들은 특설부대를 둘째놈 군대라고 증오하여 불렀다. 어떤 사람들은 둘째놈 군대는 일본놈보다 더 악독한 짓을 하였는데, 일본놈이 하는 나쁜 짓을 하였거니와 일본놈이 감히 하지 못하는 나쁜 짓도 하였다고 한다. 특설부대 력사를 펼쳐보면 확실히 그러하였다. 말 그대로 하늘에 사무치는 죄행을 범하였다"(49쪽)고 기록했다.

백 장군은 1943년 2월 간도특설대원으로 압록강, 두만강 상류 일대에서 항일 게릴라 토벌에 종사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이 주도한 항일 게릴라에는 중국인, 만주인과 함께 조선인도 포함돼 있었다. 1944년 봄 팔로군(八路軍·1937∼1945년 일본군에 맞선 중국공산당의 주력부대 중 하나) 토벌 작전에 참가해 정보수집에서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여단장 상을 받기도 했다.

백 장군은 이러한 간도특설대 이력 때문에 2009년 정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됐다.

그는 자서전에서 '간도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며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고 고백했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대목도 있다.

하지만 백 장군은 자서전을 통해서도 자신의 친일 행적을 반성하거나 사죄하는 내용은 담지 않았다.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도 한때 간도특설대 근무설에 휩싸인 바 있다.

간도특설대 근무 경력은 그들에게 숨기고 싶은 과거다. 대다수가 '옛일'을 속이거나 끝내 덮어둔 채 세상을 떴다. 산 자들도 열이면 열 입을 다물었다. 그 시절의 선택과 행동이 떳떳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일 터. 백 장군도 2006년 '파워엘리트 해방전 이력'을 취재하던 기자(UPI뉴스 류순열 편집국장)에게 "골치 아프게 왜 옛날 일 갖고 그러느냐'며 끝내 만남을 허락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백 장군의 과거 친일 행적이 재조명되면서 혁혁한 6·25 전공에도 불구하고 사후 현충원 안장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백 장군 측은 지역과 무관하게 현충원 안장을 희망한다는 입장이다. 백 장군 측 관계자는 "백 장군은 예비역 장성으로서 현충원에 묻히고 싶다는 의지는 갖고 있었다"면서도 "다만 국립서울현충원으로 갈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현충원에 안장되고 싶다는 뜻은 밝혔지만 국립서울현충원을 특정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지난 28일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백 장군은 현행법상 현충원 안장 대상이 맞는다"며 "그 부분에 대해 다른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보훈처는 서울현충원 장군 묘역이 꽉 차서, 백 장군이 별세하면 대전현충원에 안장돼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UPI뉴스 / 김광호 기자 kh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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