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삐라 살포는 김정은 코털 잡아당기기…전혀 도움 안돼"

류순열 / 기사승인 : 2020-06-19 16:25:09
  • -
  • +
  • 인쇄
5,6공 대북밀사로 대북정책 기획,실행…"공비 침투에도 대화 이어"
MB정부 심리전 재개 당시에도 "감정적 골목싸움 수준은 넘어서야"
"북핵 해결때까지 미국 전략핵 재배치하든 자체 핵개발 선언해야"
'박철언'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5·6공 시절 대북밀사였다. 대북정책과 북방외교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1985년 남북대화 채널을 뚫은 것도,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이끌어낸 것도 그다. 1985년 10월 중순 새벽길을 달려 처음 평양에 갈 때 유서까지 썼다고 한다. "남북간 초긴장 상태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인터뷰는 사양했다. "인터뷰는 무슨. 정치 떠난지가 20년"이라면서. 대신 "난 지금 시인으로 살고 있다. 주소나 찍어달라"고 했다. 이틀 뒤 시집 두 권과 저서 두 권이 배달됐다.

그래도 한반도 시곗바늘이 거꾸로 도는 비상사태를 맞은 지금 걱정이 없지 않을 터. 20여 분간의 짧은 통화에서 답답한 심경의 일단을 내비쳤다. "기사는 쓰지 말라"고 했지만, 비상한 시국인 만큼 그의 '근심'과 '충정'을 압축해 소개한다.

그는 대북밀사로 1985∼1991년 40여 차례 북한 측과 비밀회담을 하며 대북정책을 기획, 실행했다. 검사 출신으로 장관을 두 번(정무장관, 체육청소년부 장관), 3선 국회의원(13∼15대)을 지냈다. 당시엔 '6공 황태자'로 불렸는데, 지금은 팔순을 바라보는 시인이다.

▲ 박철언 전 의원 [UPI뉴스 자료사진]

– 남북 관계가 다시 위기다

"대북 전단을 꼬투리 잡아 북이 남북합의 기본정신을 뭉갠 것이다. 물론 내부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나 남한을 우습게 본 것이다. 길들이기 하는 것이다."

– 대북밀사로 평양을 오가며 대북정책을 실행하셨는데

" 5·6공 시절엔 남북대화가 활발했다. 그 결과 1989년 노태우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발표,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기본합의서 타결, 1992년 남북 비핵화공동선언 등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역사적 사건들을 잇따라 성사시킬 수 있었다."

– 당시엔 상당한 진전 아닌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교류협력 활성화와 평화 공존으로 남북연합 단계를 거쳐 평화통일로 나가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서로 내정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북한 정권을 자극하는 전단(삐라) 살포는 바람직하지 않다. 김정은 코털 잡아당기자는 것일 뿐 근본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박 전 장관은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대북 확성기 설치 등 심리전 재개에 대해서도 "감정적 대응일 뿐"이라며 대북정책의 아마추어리즘을 비판했었다. "감정적으로 골목싸움 하는 수준은 넘어서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북이 공비를 침투시키는 상황에서도 대화의 끈은 유지했었다"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 위기 타개를 위해 뭘 해야 하나

"짝사랑한다고 해서 평화가 오는 게 아니다. 진짜 평화를 해야지, 가짜 평화를 얘기하면 안되지 않나.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을 두려워하면 평화를 가질 수 없다. 지난 2년 북핵은 일보의 진전도 없지 않나. 북핵이 해결될 때까지는 1991년 철수한 미국 전략핵을 재배치하든 자체 핵개발을 선언하든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라와 국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 전략핵 배치가 현실적 대안일 수 있나. 미중 갈등은 어쩌고

"우리가 수천년간 중국 영향권 아래 있었잖아. 그래서 잘 살게 됐나. 그렇게 조공 바치고 해도 형편없이 못사는 나라였다. 서방 영향권 아래서 비로소 근대화, 민주화를 이루고 세계가 놀랄 발전을 했지 않나."

박 전 장관은 "미국이, 트럼프가 무기나 팔고 실리만 취하려는 것은 밉지만, 또 역사 왜곡하는 일본이 괘씸하지만 지정학적 관계에서 미국 영향권 아래서 미국, 일본과 잘 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영향권 아래서 남과 북이 연방으로 지내면 좋지 않냐고 생각하면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면서.

– 기사 써도 되나

"하이고, 쓰지 마세요.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일체 인터뷰 안한다. (답답한) 내 심경을 얘기한 건데, 내가 괜히. 주소나 찍어주세요. 시집 보내드릴 테니."

박 전 장관은 "어린 시절 꿈이 불꽃같은 열정과 맑은 영혼을 지닌 문학 교수"라고 했다. "부모님과 주변 권유로 법대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치러 검사가 된 것"인데, 인생 끝자락에서 어린 시절 꿈을 이룬 셈이다. 그 간 네 권의 시집을 냈고 7개의 문학상을 받았다.

이틀 뒤 배달된 시집은 <바람이 잠들면 말하리라> <산다는 것은 한 줄기 바람이다>, 저서는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1,2>다.

시집을 뒤적여 '비무장지대'라는 제목의 시 한편 소개한다.

▲ '6공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전 의원의 저서와 시집. 인터뷰를 요청하자 "난 이제 시인"이라며 "주소나 찍어달라"고 했다. 이틀뒤 책 네 권이 UPI뉴스 편집국으로 배달됐다. 

비무장지대

무시로 남과 북을 넘나드는
자유와 평화의 바람을
철조망으로 막을 수 있나

목숨 걸고 맞서야 할지도 모르는
분단의 현장에선
앳된 병사들의 긴장어린 눈빛이 역력하고
바람은 철조망새로 무심히 드나드는데

가벼운 산책처럼 떠난 길
돌아오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인데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꽃 향기만 따라 나선다


UPI뉴스 / 류순열 편집국장 ryoosy@upinews.kr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핫이슈

만평

2020.7.2 0시 기준
12904
282
11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