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순열 칼럼] 백선엽도 박원순도 반성 없이 떠났다

류순열 / 기사승인 : 2020-07-16 20: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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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과 박원순. 두 사람을 비교하게 될 줄 몰랐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거물'이라는 점 빼고 둘에게 공통점은 없다. 6·25 전쟁영웅, 인권변호사·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 두 삶의 궤적에서 교집합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같은 시대를 산다고 같은 세상인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최근 하루 차이로 세상을 떴다. 박 시장은 지난 9일 예순넷 나이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고, 백 장군은 10일 백세를 일기로 자연사했다. 마지막 시간의 일치 외엔 삶의 모든 것이 달랐던 두 인사가 똑같이 첨예한 논란을 일으키며 우리 사회를 갈라놓은 게 우연일까.

두 삶의 공과를 저울질해보자는 게 아니다. 비교하기엔 너무 다른 삶이다. 거꾸로 공통점을 찾아보려 한다. 과오를 대하는 두 사람, 두 진영의 태도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

장군 백선엽의 삶은 명암이 극명하다. '6·25전쟁영웅'으로 추앙받지만 해방 전엔 '친일반민족행위자'였다. "조선 독립군은 조선인의 손으로 잡는다"는 목표로 일제가 만든 조선인 부대, 간도특설대(1938∼45)에서 활동했다. 목적이 뚜렷했던 이 특전부대는 "일본군보다도 더 지독하다"는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만주 일대에서 악명을 떨쳤다.

43년 부임 이후 그의 행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지만 그의 활동시기에도 악행 기록은 이어졌다. "놈들은 녀자는 만나는 족족 강간하고 좋은 물건은 닥치는 대로 빼앗았다." ‹중국조선민족발자취 총서› 1944년 5월의 기록이다.

"태어났을 때 이미 조선이란 나라는 없었다"고? 구차하고 비겁한 변명이다. 그가 자발적으로 일제 침략전쟁에 참여할 때 동년배 청년 김준엽(전 고려대총장·1920∼2011)은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됐다가 목숨걸고 탈영해 육천리 '대장정' 끝에 광복군이 됐다.

그의 해방 전 이력을 '쉴드치는' 언설이 쏟아지지만 무슨 논리를 갖다대도 그가 일제 침략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반민족행위자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스스로 "동포에게 총을 겨눈것이 사실이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1993년 일본서 출간한 '간도특설대의 비밀')고 고백하지 않았나.

진보정치인 박원순의 삶도 충격적 모순으로 막을 내렸다. 인권변호사로,시민운동가로 민주화, 성평등, 인권 신장에 기여했으나 삶의 끝자락에선 그 가치의 믿음을 배신하고 말았다.

2004년 어느 일요일 오후 종로의 불 꺼진 사무실. 그는 등산복 차림으로 스탠드등 하나에 의존해 서류더미와 씨름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일요일, 그것도 등산을 마치고 오후 4시에 하자는 희한한 사람, 일밖에 모르는 듯한 워커홀릭.

그랬던 시민운동가(참여연대 사무총장)가 서울시장이 되고 정치권력이 몸에 배니 초심을 잃은 것일까.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의 성범죄는 한 시대를 무너뜨린 무참한 배신이다.

과오의 경중을 따지는 건 부질없다. 주목해야 하는 건 두 거물이 세상을 뜨면서 야기한 혼란이다. 진영으로 갈려 내 편의 공적은 미화하고 부풀리고 과오는 덮는다. '자칭 보수'의 우격다짐은 새삼스럽지도 않은데, '자칭 진보'의 모습도 다를 게 없다. 민주화 운동 경력이 벼슬이고 권력인지, 박 시장 조문을 반대하는 젊은 정치인들을 꾸짖는 '꼰대짓'이나 하고 있지 않은가.

혼란의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과오를 반성하지 않고 떠났기 때문이다. "골치 아프게 왜 옛날 일 갖고…"(2006년 통화)라며 인터뷰를 피하지 않았다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한마디만 했다면, 유서에 "나의 일탈로 고통받은 이에게 사과한다"고 한줄만 더 썼다면 세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들은 끝내 용기내지 못하고 비겁하게 떠났다. 대신 남은 자들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들이 파놓은 '시대의 함정'에서 서로 삿대질하고 침 튀기며 악다구니 쓰고 있다. 누구는 그들의 죽음에 한 시대가 간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린 여전히 '좌우가 충돌하는 해방공간'에, '진보꼰대의 내로남불 시대'에서 꼼짝 못하고 있다. '반성 없는 과오'가 끝없이 논란을 충동질하며 시대의 발목을 잡고 있는 탓이다.

과가 있다고 공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없듯 공으로 과를 모조리 덮을 수도 없다. 역사는 신화가 아니다. 다음 시대로 나아가려면 진영논리를 벗어던지고 역사앞에서 쿨해져야 한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1712∼78)의 참회록 한구절부터 깊이 새길 일이다. 

"언젠가 최후 심판의 나팔 소리가 울려 나오더라도 나는 이 책 한 권을 가지고 심판관인 신 앞에 나아가서 큰 소리로 말하리라. 나는 이렇게 행했다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선악을 가리지 않고 모두 말하리라. 어떠한 잘못도 감추지 않고 어떠한 선행도 과장하지 않고."

루소는 참회록에서 자기 삶의 치부를 몽땅 고백했다. 

▲ 류순열 편집국장




UPI뉴스 / 류순열 편집국장 ryoos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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