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란의 토닥토닥] 정서적으로 친밀한 '감화'를 주는 말하기 방법

UPI뉴스 / 기사승인 : 2020-07-29 15: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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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적응하기 어려운 대피훈련 같았던 코로나19 상황에도 익숙해지는 요즘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지하철에선 마스크를 쓰고 적정한 거리를 두고 앉는다. 학교에선 학년별로 정해진 날 등교해서 소수의 학생이 전 교사의 에스코트를 받으니 갈등상황도 부쩍 줄어들었다고 한다. 정작 가정에서 코로나19로 선물처럼 다가온 자녀와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답답한 면이 늘었다. 서로 말은 많이 하지만 대화다운 대화를 하기엔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는다.

▲ 정서적으로 친밀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자녀의 감정을 헤아리며 타이밍을 기다리는 부모의 준비가 필요하다. [셔터스톡]

먼 훗날 부모의 말을 자식은 얼마나 기억할까. 보통 이십여 년 부모와 함께 살면서 자식이 평생 간직하는 부모의 언어는 얼마나 될까. 그런 주제로 대화를 나눈 자리에서 참석자들이 부모의 말을 많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놀랐다. 인상적인 대화 몇 번이 거의 전부였다. 형제가 많았던 시절에는 부모와 단둘이 대화할 기회 자체가 부족했을 것이다. 부모는 수없이 말을 하지만 자식이 명심하는 경우는 적다. '감화'가 된 말이 드물기 때문이다. 감화된 대화의 예를 들어본다.

"전 농촌에서 어렵게 자랐어요. 형제는 많고 부모님은 저와 일대일로 대화할 시간이 없었죠. 오히려 학교에서 주목받는 때가 많았어요. 작은 학교에서 제법 착실하게 공부하니까 금방 학교 선생님이 인정해 주셨죠. 어느 날 아버지와 소꼴을 가지고 여물을 쑤는데 아버지께서 가만히 말씀하셨죠. 난생처음으로 단둘이 하는 얘기였어요. '요즘 새마을 운동하는데도 마을마다 열심히 일하는 곳에 정부에서 더 도움을 주지 않냐. 자식이 여럿이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자식한테 더 도와줄 수도 있어'라고 하셨어요. 그 순간 저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내가 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계속 공부할 수 있겠구나 하고요. 그때부터였어요. 희망을 품고 매일 즐겁게 공부했던 것 같아요. 지금 이렇게 사는 것도 그때 아버지의 한 마디가 준 힘이죠."

이 말을 들으면서 아버지와 함께 소여물을 쑤는 아궁이의 따듯한 온도와 여물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떠올랐다. 아들이 베어온 소꼴에서 나는 풀 내음도 마음을 평안하게 했을 듯하다. 아들과 함께 일하는 데서 오는 충만한 느낌이 아버지의 가슴에서 감동적인 한 마디가 나오게 했을 것이다.

어느 여성은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렇게 기억했다. "제가 한창 사춘기 때였어요. 친구들과 관계가 좋지 않고 집에만 오면 짜증이 나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어요.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성적은 바닥을 기었죠. 상상을 벗어난 성적 하락에 아버지께서 걱정되셨는지 어느 비 오는 날 마루에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그때가 아버지와 단둘이 대화한 첫 기억이어요. 아버지는 '네 엄마를 봐라.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못 마쳐서 평생 한이 되어 저렇게 노력하지 않니? 새벽에 일어나서 한자 공부하고 뒤늦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배운다고 고생이잖냐. 공부를 덜 해서 기회도 없었고 돈도 못 번다고 후회하고 살지 않냐. 공부도 때가 있어서 시기를 놓치면 다시 따라잡기 어렵다. 무슨 공부든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돼'하고 말씀하시더군요. 다른 것은 몰라도 아버지의 간곡한 진심이 느껴졌어요. 엄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느껴져서 딸인 제게 더 감화되었던 것 같아요."

딸에게 말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오롯이 잘 전달되는 데는 빗소리가 한몫했을 듯하다. 일정하게 들리는 빗소리와 빗물의 차가움이 전해져온다. 차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눅눅한 마루에 앉아 사춘기의 열기를 식히는 순간 딸의 귀에 아버지의 말은 콕콕 전해졌을 것이다. 아버지가 엄마를 이해하는 마음이 딸에게는 각별하게 다가갔으리라 짐작된다.

잔소리는 자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지 못한다. 자녀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고 힘을 줄 수 있는 한 마디가 평생 기억된다. 그 기억에는 부모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그 순간의 배경이 큰 역할을 한다. 자녀와 일대일로 눈을 마주 보며 하는 이야기, 함께 일을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 마당에 내리는 빗줄기를 보면서 조용히 해준 말들이 감화된다. 그런 말들은 목소리 높여 소리치듯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서적 친밀감이 바탕이 될 때 자식에게 감화를 주는 말이 나온다.

공감하는 마음이 부족한 상태에서 하는 말은 좋은 내용도 부정적으로 전달되기 쉽다. 흔히 성급한 마음에 "무엇을 해야 한다", "그것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 쉽다. "~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말보다 "무엇을 하고 싶니?", "지금 어떻게 하고 싶구나"하고 묻는 게 효과적이다. 자녀가 의무감에 쌓여 힘들고 무겁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자녀가 자발적인 의욕을 갖도록 격려하는 게 부모의 역할일 터. 행동으로 옮길지 말지는 자녀의 몫이다.

자녀에게 전하고픈 한 마디, 힘이 되어주고픈 마음 한 가닥이 있다면 정서적으로 가깝게 다가가는 게 먼저다.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자녀의 감정을 헤아리며 타이밍을 기다리는 부모의 준비가 필요하다.

▲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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