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마해라 마이 뭇다 아이가'

UPI뉴스 / 기사승인 : 2020-07-29 15: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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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프로그램은 한국인의 불안과 허기를 반영
도처에 먹방이다. 여기도 먹방, 저기도 먹방이다. 웬만한 관찰예능에서도 먹방 분량은 빠지지 않는다. 익히 알다시피 먹방(영어: mukbang 또는 mokbang)은 '먹는 방송'의 줄임말이다. 출연자들이 요리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 주는 프로그램인 쿡방(cookbang)과 짝을 이룬다. 요리해서 맛있게 먹으니 쿡방과 먹방을 넘나든다. 먹방이 쿡방이고 쿡방이 먹방이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

실제로 방송광고공사(KOBACO)의 '소비자행태조사(MCR) 보고서'(2019년 12월)에 따르면 온라인 동영상 유형에서 '먹방'이 전체의 61%를 차지하며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특히 13∼18세의 61.4%가 먹방을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즉 여자 13~18세에서 62%로 1위를 기록하고 이 추세는 19~29세에까지 이어진다. 남자라고 빠지지 않는다. 남자 13~18세, 19~29세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가히 먹방 전성시대다.

처음에는 TV의 맛집 소개 프로그램으로부터 시작했을 성싶다. 소문난 식당에 가서 요리하는 현장인 주방을 보여주면 그것은 쿡방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와 맛있게 먹는 장면에 카메라를 바짝 들이대기 시작하면 그것은 먹방이다. 이것이 원형이 되었음직하다. 아마도 시청률도 잘 나왔을 것이다. 제작하기도 어렵지 않다. 목하 '먹방의 장르화'가 시작된다.

출연자들의 실감나는 리액션은 시청자를 유혹한다. 호기심을 유발하고 식욕을 자극해 감정이입과 대리만족을 유도한다. 엔도르핀인지, 도파민인지, 세로토닌인지 알 수 없으나 대뇌는 흥건해진다. 먹는 이의 시연만으로 부족해 스튜디오에서 VPB를 보는 진행자의 리액션도 화면에 파서 넣는다. 그러자 고명하신 MC들도 추임새에 동참한다.

먹방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비판은 '푸드 포르노(food porno)'라는 말이다. 요리와 음식, 또는 이를 먹는 모습이 담긴 사진, 영상으로 시각적인 자극을 주는 것을 뜻한다. 극단적인 탐식이나 폭식을 하고 이 과정을 울트라타이트하게 잡은 영상을 만인이 시청하는 것을 관음증 혹은 가학성 성애장면에 비견하는 것일까. 아마도 애먼 음식이 무척 억울해할 것 같다.

보다 못한(?) 정부는 한때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먹방'이 폭식을 유발해 국민건강을 해칠 수 있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역풍이 불었다. '때가 어느 땐데 국가가 먹는 것을 가지고 규제를 한다는 말이냐'가 반발의 핵심이었다. 당시 한 언론은 반대가 찬성보다 59.4 vs 39.1의 비율로 우세했다고 보도했다.

논란이 커지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먹방 규제는 사실무근이다. 규제라는 말을 사용한 적도 없거니와 법으로 규제할 수도 없다. 국민 건강 증진 차원에서 먹방 콘텐츠의 기준을 정립하고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다"라고 해명했다. 반대 여론이 비등하고 항의가 빗발치자 결국 없던 일이 되었다.

권위주의 정권에서처럼 방송에 대한 규제를 '전가의 보도'로 꺼낸다면 이는 분명히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만하다. 더욱이 '비만 관리대책' 차원에서 보건복지부가 이를 거론한 것은 하나의 소극(笑劇 farce)이 되었다. 먹방과 비만의 관계는 마치 갱스터 영화와 폭력범죄, 게임중독과 질병처럼 검증되지 않은 논쟁의 영역에 있다. 섣부른 규제론으로 먹방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놓쳤다.

그로부터 바뀐 것은 없다. 먹방은 여전히 성업 중이며 일부 먹방 스타는 인기와 돈을 거둬들이고 있다. '마리텔 백주부'는 '집밥 백선생'을 거쳐 '백파더'가 되어 전 국민에게 "요리를 멈추지 마!"라고 호언하고 있다. 유튜브 구독자 300만이 넘는 먹방 셀럽도 있다고 한다. 플랫폼도 다양해졌다. 아프리카TV, 트위치, 카카오TV 등이 명멸하고 있다. 오죽하면 먹방의 한국어 발음 표기인 'mukbang'이 그대로 전 세계 유튜버들의 콘텐츠로 일반명사화 되었겠는가.

창궐하는 먹방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의 빈곤과 결핍을 드러낸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에서 먹방이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해 '경제침체 속에서 널리 퍼진 한국인들의 불안감을 보여주는 현상(a symptom of widespread unhappiness amid the country's economic doldrums)'이라고 진단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것이다. 보릿고개 시절의 트라우마가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방송PD 출신의 홍경수 교수는 "대중이 발설하지 않고,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욕구를 찾아내는 것이 기획의 본령"이라고 했다(<예능PD와의 대화>, 2016). '이 시대 대중의 필요와 욕구를 넘어선 대중이 말하지 못하는 결핍을 찾아내는 것'이 방송이라고 했을 때, 지금의 먹방 프로그램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 다수의 허기(虛飢)를 적확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한편으로 먹방이 '몸짱 사회'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분석도 있다. 2017년 이화여대 박동숙 교수팀이 유튜브로 먹방 콘텐츠를 즐겨보는 20∼30대 남녀 14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론이다. 즉 끊임없이 몸매를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위안을 얻고자 폭식 과정을 재미있게 보게 된다는 것이다. '먹방' 인기 비결은 한마디로 '다이어트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얘기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결핍의 결과이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기승전먹방'이다. 이는 베끼기식 동종교배와 남발, 변형된 복제로 이어진다. 기획의 나태, 상상의 빈곤이라 해도 개의치 않는다. 대중이 원하니까 '지금 이대로 계속…'이다. 먹방 방송을 하니까 대중이 보는 것일까, 보(고 싶어하)는 시청자가 있으니 계속 들이대는 것일까. 먹방, 쿡방이 우리 사회의 기갈과 걸식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제는 이를 뛰어넘을 때가 되었다. 기만적이고 현실도피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 절반은 '먹방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공중보건 국제학술지에 실린 이 내용에 따르면 응답자 51.9%는 먹방 규제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누적된 먹방 프로그램에 마침내 피로증을 보인 것일까. 그야말로 '마이 뭇다 아이가 고마 해라'다. 국민들은 정부가 나서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먹방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중의 결핍을 달래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출현이 절실한 가운데 오늘도 먹방프로그램은 이 채널 저 채널에서 범람한다.

▲ 정길화 교수

정길화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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