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호영 공개 '이면 합의서'는 위조 문서

김당 / 기사승인 : 2020-07-30 10: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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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대북송금 특검 수사기록·증거목록 전수조사…'부존재'
北 아태가 현대에 제시한 초안(30억 달러) 짜깁기·서명 위조 혐의
남북 특사단-국정원 KSS라인-정몽헌 등 모두 '이면 합의서' 부인

27일 열린 박지원 국정원장(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남북간의 '이면 합의서'와 '적과의 내통' 의혹이 논란이 되었다.

▲ 주호영 의원(왼쪽)은 박지원 국정원장후보자가 6·15 남북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 북한에 총 30억 달러를 제공하는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했다며 문제의 '4·8 이면 합의서'를 공개했다. [뉴시스]


국회의 당연직 정보위원인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정원장은 상대국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다른 국가 기관들이 '한국에 정보를 주면 보안이 안 되고 북한으로 넘어간다'고 하면 정보를 안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박 후보자는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제가 아는 것을 어떻게 북한에 보고하나"라고 반박했다. 또 주 의원이 자신을 '적과 내통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데 대해서도 "모욕적"이라고 반발했다.

 

주호영 "증거없이 얘기한 것 아냐" vs 박지원 "이면합의서는 허위·날조"

 

그러자 주 의원은 "제가 증거없이 이야기한 것 아니다"고 공세를 이어갔다. 주 의원은 박 후보자가 6·15 남북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 북한에 총 30억 달러를 제공하는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했다며 문제의 ''4·8 이면 합의서'를 공개했다.

박 후보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던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측 송호경 특사(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와 비밀접촉해, 남북한 최고 지도자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4.8 남북합의서'를 이끌어냈다.

▲ 주호영 의원이 공개한 문제의 '이면 합의서'(왼쪽)와 '4.8 남북합의서' [주호영 의원 제공]


주 의원은 이날 '이면 합의서'와 함께 대통령기록관에서 누구나 검색할 수 있는 '남북 합의서' 사본도 공개했다. 두 개의 합의서에는 모두 '2000년 4월 8일'이라는 날짜와 박지원-송호경 특사의 서명이 들어 있다.

주 의원 공개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에는 남측은 북측에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 25억 딸라(달러)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 차관을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부문에 제공한다 △남측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5억 딸라(달러)분을 제공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박 후보자는 28일 입장문을 내고 "대북특사단에 확인해보니 그런 합의서는 없었다고 한다"면서 "합의서는 허위·날조된 것으로 주호영 원내대표에 대해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측도 29일 이와 관련해 "국정원·통일부 등 관계기관을 통해 파악한 결과, 이면 합의서는 정부 내에 존재하지 않는 문건임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UPI뉴스의 '이면 합의서' 검증 결과 '위조'인 까닭

▲ UPI뉴스는 대북송금 특검 수사기록과 공판 증거목록을 입수해 '이면 합의서'의 존재 여부를 조사했다. [김당 기자]


이에 〈UPI뉴스〉는 남북정상회담 관련 대북비밀송금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이하 대북송금 특검)의 수사기록과 공판 증거목록 등을 입수, 전수조사해 '이면 합의서'(이하 4·8 경제협력 합의서)의 존재 및 위조 여부를 확인했다.

조사 결과 우선 남과 북이 그동안 주고받은 각종 합의서의 양식에 비추어볼 때 4·8 경제협력 합의서는 십중팔구 가짜일 가능성이 크다.

통상 남과 북은 합의서를 2부 작성해 1부씩 나눠 갖는다. 남측본과 북측본의 차이는 그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있다. 즉, 남측본은 "남과 북은"으로 합의서가 시작하는 반면에, 북측본은 "북과 남은"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4·8 경제협력 합의서 본문을 보면 "25억딸라" 또는 "5억딸라분"이라고 표기돼 있다. 딸라는 북측에서 쓰는 표기다. 남측에선 '4딸라'로 유명해진 탤런트 김영철씨를 빼곤 문서에 '달러' 또는 '불(佛)'을 쓴다. 결국 북측본이라는 이야기다.

북측에 있어야 할 합의서가 청문회장에 등장한 것이다. 오히려 이 합의서를 제공한 자가 북측과 내통했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에 가깝다. 

북측과 현대측이 체결한 합의서라면 북측 용어를 그대로 쓸 순 있다. 하지만 이는 민간 문서이므로 거기에는 박지원 특사의 서명이 있을 수 없다.

 

대북특사단 참여한 당사자들도 '이면 합의서' 존재 부인


당시 대북특사단에 참여한 당사자들도 합의서의 존재를 부인한다.

남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상봉해 정상회담을 한 것은 2000년 6.15 정상회담이 분단 이후 처음이다. 지금은 두 정상이 마음먹으면 판문점에서 '번개 회담'도 할 단계까지 왔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대북사업에 집중한 현대그룹이 '중매'를 서 남북 최고지도자의 특사들이 탐색전을 가졌다. 이른바 남북특사단 비밀접촉(회담)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임동원 국정원장은 박지원 문광부장관을 특사로 하고, 대북협상 경험이 풍부한 국정원 대북전략국의 'KSS라인'이 보좌하도록 했다. 김보현 5국장(대북전략국장)과 서영교 단장, 서훈 과장이 그들이다. 3인은 나중에 정상회담의 성공적 추진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북측은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인 일본통인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황철·권민 참사 3인이 남측과 마찬가지로 상견례부터 마지막 3차 회담까지 일관되게 협상에 참석했다.

분단 이후 첫 정상회담인 만큼 남북한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싱가포르에서 첫 상견례를 갖고 상하이(1차)와 베이징(2·3차)으로 장소를 옮겨 다니며 3차례 비밀회담을 했다. 국정원 내에서도 임동원 원장 직보체제를 유지해 차장들도 비밀접촉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김보현 국장은 특사 보좌역, 서훈 과장은 특사 수행 겸 회담 기록을 맡았고, 서영교 단장은 서울 본부에서 보고 및 협상 조율을 맡았다. 4.8 남북 합의서 초안도 김보현 국장이 작성한 것이다.

 

계획이 다 있었던 현대…남북 정상회담 '중매' 나서

▲ 1998년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현대그룹 제공]


북한의 강원도 통천이 고향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89년에 최초 방북해 북측과 금강산 개발을 위한 '의정서'를 체결하는 등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대북사업을 추진해왔다. 이후 대북 '햇볕정책'을 표방한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소떼'(1001 마리)를 몰고 방북해 서해공업지구 개발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하는 등 대북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현대로서는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개발과 안정적인 대북사업을 위해서 북측 '담보'뿐 아니라 한국 정부의 '담보'가 절실했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는 정상회담 이후 북측과 △투자보장 합의서 △소득 이중과세방지 합의서 △상사분쟁 해결절차 합의서 △청산결제 합의서 등 4대 투자보장합의서를 체결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았다.

현대측은 이런 계획이 다 있었기에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을 계기로 정상회담 '중매'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의 중매를 선 현대측과 회담에 관여한 정부 관계자들은 노무현 정부 출범후 시작된 대북송금 특검조사에서 호된 대가를 치렀다.

 

▲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대북 비밀접촉 특사단의 김보현 전 국정원 차장은 '이면 합의서'의 존재를 부인했다. [김당 기자]


이를 테면 김보현 전 국정원 차장은 특검에서 조사받을 때 "4.8 합의를 본 후에 박지원 장관과 송호경 사이에 합의문 외에 경제지원이나 금전에 관한 별도의 합의서 등을 작성한 사실이 있는가"라는 검사의 질문에 "없었다"고 부인했다.

박지원 장관이 이면 합의서의 '부존재'를 확인했다는 대북특사단은 김보현 전 차장과 서훈 현 청와대 안보실장을 말한다. 추가 확인을 위해 김 전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다른 때와 달리 받지 않거나 전화기를 꺼두었다.

 

현대그룹, 정상회담 중매하면서 북한과는 '독점사업 대가금' 협상


현대가 독점사업권을 대가로 국정원의 환전 편의제공 하에 5억 달러를 북한(아태)에 송금한 사실은 〈오마이뉴스〉가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1월 29일 단독 보도했다.

이어 그다음날 석간 〈내일신문〉이 (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싱가포르에 있는 북한 계좌로 5억 달러를 넣었다고 한 경제계 원로 인사에게 그해 10월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 정주영 명예회장의 발언을 인용해 북한 개발권에 대한 정몽헌-송호경이 서명한 계약서(합의서)를 남북한이 갖고 있다고 전한 기사. [내일신문 캡처]


이 기사에서 주목할 것은 북한 개발권에 대한 정몽헌-송호경이 서명한 계약서(합의서)를 남북한이 갖고 있다고 밝힌 점이다.

이에 비추어보면, 주호영 의원이 공개한 '경제협력 합의서'는 이 계약서의 내용을 짜깁기하고 서명을 '정몽헌' 대신에 '박지원'으로 오려붙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같은 추정은 대북송금 사건 공판에 제출한 특검의 수사기록과 증거목록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정몽헌 회장 등 현대측 관계자들의 특검 및 법정진술을 종합하면, 현대측은 일종의 '투트랙'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중매하는 한편으로 협상장에 나온 아태측과 독점 사업권의 '대가'를 두고 협상을 벌였다.

정몽헌 등 현대측 관계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북측은 1차 최초 접촉 때는 현대에 독점사업권의 대가로 30억 달러를 요구했다. 말이 안되는 거액이지만 일단 질러본 것이다.

이에 정 회장이 일축하며 웃어넘기자 북측은 10억 달러로 금액을 낮추었다. 이런 줄다리기를 거쳐 현대측은 독점사업권의 대가를 5억 달러로 낮춘 것이다.

 

 대북송금 특검 수사기록에 현대-아태 체결한 합의서와 부속 합의서 수십종 편철

▲ 정몽헌 의장의 대북송금 특검 피의자 신문조서 [김당 기자]


대북송금 사건 공판에 제출한 특검의 수사기록과 증거목록을 샅샅이 훑어봐도 박지원-송호경 특사가 서명한 이면 합의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된다. 다만 현대아산과 북한 아태평화위측이 체결한 각종 합의서(5종)와 부속합의서는 수십 종이 편철돼 있다.

이를 테면 정몽헌 회장 특검 진술조서(2003. 5. 31)에 보면, 검사가 현대아산에서 압수한 △금강산지구 관광개발 의정서(1989. 1. 31) △서해공단 건설 합의서(99. 10. 1) △경제협력 사업 잠정합의(2000. 5. 3) △SOC 위한 '7대 경협사업' 독점권 합의서(2000. 8. 22) 등을 보여주며 "5건의 의정서 및 합의서 사본을 제시하고 조서말미에 첨부"한다고 돼 있다.

합의서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북 정상회담 이전(5월 3일)에 현대아산과 아태가 체결한 '경제협력사업권에 관한 합의서'(잠정안)는 "사업권을 30년간 현대에게만 부여하였음을 합의하고 확인한다"면서 "현대는 사업시행 대가를 별도로 정한 금액, 조건 및 방법에 따라 아태에 지불한다"고만 돼 있다.

▲ 정몽헌 의장은 "합의결과가 공개될 경우 정상회담의 대가성 시비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어 현대는 사업시행 대가를 별도로 정한 금액, 조건 및 방법에 따라 아태에 지불한다는 문구만 넣었다"고 진술했다. [김당 기자]


정몽헌 회장은 특검에서 검사가 잠정합의서에 4월 8일 북측과 합의된 금액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이유를 묻자 "합의결과가 공개될 경우 정상회담의 대가성 시비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었기 때문에 합의서 상에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답한 것이다.

현대 김윤규 사장과 아태 강종훈 서기장이 서명한 이 합의서에는 또한 "이 합의서는 양측 당국의 승인을 받은 때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이 합의서는 남측 통일부의 승인을 받지 못한 잠정안이었다.

한두 차례 더 수정안을 거친 뒤(8월 22일)에 현대아산과 북측 아태-민경련(민족경제협력연합회)이 체결한 '경제협력사업권에 관한 합의서'(최종안)는 "모든 사업권을 30년간 현대에게만 부여하였음을 합의하고 확인한다"면서, 초안과 달리 "현대는 사업시행 대가를 사업별로 협의하여 결정한다"고 돼 있다.

▲ 현대아산과 북한 아태-민경련이 체결한 '경제협력사업권에 관한 합의서'. [김당 기자]


합의서 서명자의 '급'도 달라졌다. 잠정안(초안)과 달리 최종안은 남측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김윤규 사장과 아태 강종훈 서기장-민경련 정운업 회장이 서명했다. 이 합의서도 "양측 당국의 승인을 받은 때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고 돼 있다.

요컨대, 정몽헌 의장과 북한 아태측 인사들이 서명한 '경제협력 합의서'는 존재하지만, 박지원-송호경 특사가 서명한 '경제협력 합의서'는 대북송금 특검이 압수해 편철한 증거목록과 공판 기록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 의원이 공개한 '이면 합의서'는 현대와 아태측의 협상 초안이거나 짜깁기한 '위조 문서'라고 판정하는 이유다.

U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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