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말보다 강했다…눈빛과 몸짓으로 그려낸 이산가족의 '한과 고통'

장기현 / 기사승인 : 2020-07-31 13: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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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단체 AOK한국 제작 '행당동 115번지' 댄스시어터
관객 "몸으로 표현된 이산가족의 슬픔,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돼"
때로는 말하지 않음으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하기도 한다. 

첫 장면에 등장한 어머니는 의자에 앉아 1분 넘게 정면을 응시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선 남아있는 이산가족들이 텅 빈 의자를 둘러싸고 관객을 바라본다. 눈으로 말한다. 그렇게 관객들은 배우들의 침묵과 눈빛으로 이산가족의 '한과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한 시간이 넘는 공연이 이어지면서 무대에서는 단 한마디의 육성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흐느꼈고, 통곡했다. 관객들도 막이 끝날 때까지 배우들의 눈빛에 호응하고 몸짓에 함께 느낌을 타며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못했다. 관객들은 배우들의 몸말을 꼼짝없이 들어야 했다.

객석에 불이 켜지면서 비로소 관객들은 긴 숨을 내쉬며, 또 어떤 이는 눈물을 훔치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무용극(댄스시어터) '행당동 115번지' 이야기다. 30일 서울 구로구 오류아트홀에서 마지막인 세 번째 공연을 끝냈다.

▲ 무용극 '행당동115번지' 공연 장면 [한필름 제공]

이산가족의 애절한 기다림과 고통의 세월을 춤으로 승화한 '행당동 115번지'는 2020년 서울시 평화통일교육 공모사업에 선정된 풀뿌리통일단체 'AOK한국'이 제작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특히 6·25 한국전쟁 이후 70년간의 비극적 현대사를 댄스시어터(무용극)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AOK한국의 이기묘 상임대표의 가족사를 토대로 재구성됐다. 이 대표의 조부모는 6·25 당시 38선 이남 지역이었던 경기도 개풍군(현재 이북 지역)에 살았고, 아버지는 서울 성동구 행당동 115번지에 살고 있었다. 전쟁으로 남과 북이 갈라지면서 가족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이 대표의 아버지는 남과 북으로 흩어진 가족들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념으로 평생 행당동 집을 떠나지 않았다. 행당동에서 태어난 이 대표 역시 줄곧 행당동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연극에 앞서 UPI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이 대표의 말이다.

"북에 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우리 가족이 행당동에 살고 있다는 걸 아세요. 딴 데 가면 못 찾으실 것 같아서…그래서 행당동을 떠나지 못해요. 물론 북에 계신 조부모님은 돌아가셨겠지만 영혼이라도 자식 곁으로 찾아오시라고…그래서 태어나서 65년 동안 행당동을 벗어나지 못했고, 앞으로도 이곳을 지키고 있을 거예요."

▲ 무용극 '행당동115번지' 공연 장면 [한필름 제공]

작품은 어머니와 아들을 반대로 설정하는 각색을 거쳤다. 주인공인 어머니는 전쟁 때 헤어진 아들을 기다리며 이사도 못 가고 평생 같은 집에서 살지만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슬픔은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겪은 이 땅의 모든 어머니를 함축하고 있다.

주인공인 어머니 역을 맡은 염정연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젊은 춤꾼 7명의 춤사위는 무대를 압도한다. 시대를 한눈에 보여주는 영상과 수준 높은 음악, 화려한 조명은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총연출을 맡은 김은희 감독은 "구구절절 가슴 아픈 가족사는 개인사가 아니라 수많은 이웃들의 현존하는 역사"라고 설명했다.

첫 장면부터 객석 곳곳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가 멍하니 있다가 반복적으로, 마치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장면에서다. 아들이 있는 북쪽을 향하다가 다시 현실인 남쪽으로 돌아오는 움직임의 반복. 배우의 몸짓과 눈빛 하나라도 놓칠세라 관객들은 숨을 죽여 집중했다. 애절한 어머니의 몸동작에 관객들은 두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안타까움을 함께했다.

마지막 장면에는 실제 남아있는 이산가족들이 무대에 오른다. 특별출연한 5명의 노인은 전문 배우가 아니지만 진정성 실린 눈빛만으로 관객의 마음속에 큰 울림을 남긴다. 그들이 '행당동 115번지'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들의 존재가 슬픔이자 희망이고, 그들의 이야기는 무용극이면서 한 권의 역사책이다.

▲ 무용극 '행당동115번지' 공연 장면 [한필름 제공]

처음 무용극을 봤다는 이난새(34) 씨는 "배우의 움직임만으로 극이 전개된다는 점이 신선했고 몸이 말보다 더욱 강렬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몸으로 표현된 이산가족의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친구와 동행한 김미정(57) 씨는 "이산가족은 아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고, 유학 간 아들이 보고 싶더라"라며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감동을 전했다.

U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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