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성추행' 의혹 일파만파…'딜레마'에 빠진 외교부

김광호 / 기사승인 : 2020-07-31 18: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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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뉴질랜드 정상 통화서 언급되며 외교문제 비화 조짐
외교부, 감봉 1개월 처분…뉴질랜드 수사엔 협조 안해
뉴질랜드 정부, 韓에 추가 조치 요구…재조사 필요성 대두
한국 외교관이 주뉴질랜드 대사관에서 일하는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외교문제로 비화하면서 외교부가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당초 외교부는 해당 외교관 개인이 판단할 문제라며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양국 정상 간 통화에서 이 문제가 언급되고, 국가 간 외교 문제로 확산되자 해결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양새다.

▲ 뉴질랜드 방송 뉴스허브가 지난 25일 주뉴질랜드대사관 소속 한국 외교관의 현지 직원 성추행 의혹을 보도했다. [뉴스허브 캡처]

지난 25일 뉴질랜드 방송인 뉴스허브는 2017년 말 한국 외교관 A씨가 주뉴질랜드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현지 남자 직원 B씨를 성추행한 혐의가 있으나, 한국 정부의 비협조로 뉴질랜드 경찰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A씨는 뉴질랜드 대사관에서 이 문제가 제기된 후 2018년 뉴질랜드를 떠났으며, 현재 다른 국가의 한국 공관에서 총영사로 근무 중이다.

이후 뉴질랜드 법원이 A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뉴질랜드 외교부가 한국 정부에 조사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주뉴질랜드대사관 CCTV 영상 제공과 현장 조사 등 뉴질랜드 사법당국의 수사 협조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 A씨는 외교부 조사과정에서 "성추행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B씨가 오해한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라며 "아마 서로의 기억이 달라서 논의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행위와 관련해서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배가 나온 것 같아 장난삼아 배를 두드린 것(giving his belly a couple of taps)"이라며 "양손으로 B씨의 가슴을 친 적(knocking his chest with both hands)은 있지만 B씨의 주장처럼 더듬은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결국 A씨에겐 경징계에 해당하는 '1개월 감봉' 조처가 내려졌다. 성범죄에 대해선 예외 없이 중징계가 내려진 전례로 볼 때, 외교부가 A씨 입장을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뉴질랜드 언론의 보도 이후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지난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에서 이례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오른쪽) 총리와 전화 통화했다. [뉴시스] 

외교부는 '자국민 보호'와 '외교적 갈등 해소'라는 문제를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뉴질랜드 언론은 한국이 면책특권을 들어 A씨를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특권 면제는 외교관에 대해 전 세계에서 적용되는 게 아니고 근무하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A씨는 뉴질랜드를 떠났기 때문에 면제 대상이 아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해당 외교관을 특권 면제를 원용해 보호하려고 한 적이 없다"며 "어떻게 협조할 것인지 뉴질랜드와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직접 나서 A씨의 뉴질랜드행을 강권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외교부 자체 조사로 이미 징계를 내린 상황이어서 추가 증거나 의혹이 나오지 않는 한 결과를 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뉴질랜드 정부는 한국 정부가 이 사안과 관련해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날에는 뉴질랜드 외교부 대변인이 "뉴질랜드는 모든 외교관이 주재국의 법률을 준수하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법적 책임 지기를 기대한다"며 "이제 한국 정부가 다음 조치를 결정할 사안"이라고 유감의 뜻을 전했다.

이처럼 한국 정부가 비협조적이라고 밝히며 "실망스럽다"는 뜻까지 내놨지만, 외교부가 관련 사건 대응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체 조사한 내용을 근거로 정확한 해명을 했더라면 이렇게 논란이 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외교부에서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은 당시 CCTV 자료 등을 정밀 검토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재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만약 재조사 결과, 해당 외교관의 혐의가 사실이 아니라면 그 증거를 뉴질랜드 정부에 제공하면 된다"며 "성비위는 인권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뉴질랜드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양국간 외교 충돌로 비화하기 전에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UPI뉴스 / 김광호 기자 kh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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