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영어 범벅된 공문서…국어기본법 망각한 정부

김들풀 / 기사승인 : 2020-09-04 15: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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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르게] ① 오염된 공공언어
UPI뉴스 정부 43개 부처 공문서 조사
한자·영어 뒤섞인 어려운 표현 수두룩
한글은 우수하다. 일찍이 벽안의 이방인이 알아봤다. 미국인 호머 헐버트가 뉴욕 트리뷴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린 게 1889년이다. 헐버트는 "한글은 완벽한 문자"라고 극찬했다. "최소 문자로 최대 표현력을 갖는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한글의 주인'은 그 가치를 망각하고 사는 듯하다. 바른 한글 사용을 선도해야 할 정부부터 그러하다. 정부부처의 공공문서엔 오염된 언어 투성이다. '공문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국어기본법을 정부가 앞장서 위반하는 꼴이다. 이런 행태가 국민과의 소통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이다. 

UPI뉴스는 43개 정부 부처의 공공언어 실태를 취재, 분석해 기획보도 [우리말 바르게]를 연재한다.  

▲ 서울 광화문광장 앞 세종대왕 동상 [정병혁 기자]

"高價차사고 과실비율체계", "OTT(over-the-top)인터넷으로 방송","개선 TF팀 겸임도 허용","앵커기업 유치 등을 통한 세종테크밸리 활성화"…

정부 부처가 국민에게 발표한 공식문서에 등장한 표현들이다. 한글과 영어, 한자가 뒤섞여 있다. 많은 이들이 얼른 뜻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이다. 

정부는 매년 한글날이 돌아올 즈음이면 쉬운 우리말 사용을 독려하지만 정작 정부가 앞장서서 국어기본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우리말을 훼손하고 있다. 

UPI뉴스와 한국어인공지능학회가 함께 정부 부처·청·위원회 등 정부 부처 43곳 주요 문서를 수집해 조사, 분석한 '2020년 공공문서 사용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공문서에서 오염된 언어가 수두룩하게 발견된다.

로마자 오남용 사례를 보면, "216억원 Processing-In-Memory CPU중" "국가데이터맵과 Open API 확대로 공공데이터 활용" 등 우리말로 쓸 수 있는 용어를 두고 로마자를 빌려 써 뜻을 쉽게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자를 그대로 사용한 표기도 적지 않았다. "全軍的 노력 결집으로 전작권 전환","데이터 확충 및 異種 데이터 연계 시스템 구축", "정상 訪美사상 최초 남북미 정상회동" 등이다. 정부 문서에 자주 등장하는 現, 全, 新 등 한자는 '현재', '모든', '새로운'으로 표기하면 문제가 없다.

현행 국어기본법은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14조 공문서의 작성)고 규정하고 있다.

한자나 외국어는 괄호안에 써야 한다. 국어기본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를 테면 '연구 개발(R&D)'처럼  우리말을 앞세우고 괄호 안에 외국어를 넣으라는 말이다. 

이처럼 꼭 필요한 전문 용어나 신조어 등에 한해 괄호를 통해 한자 및 외래어를 함께 적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공공기관들은 여전히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

"高價차사고 과실비율체계","인권정책 라운드테이블인권정책","법률홈닥터 제도를 '다부처연계시스템'을" 등 영어표현과 한자를 섞어 쓴 사례도 많았다.

이대로 한국어인공지능학회장은 "현재 중앙행정기관마다 국어책임관을 두고 있으나 유명무실하다. 각종 자료에서 외래어를 걸러내고 어문 규정에 맞게 고치는 업무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며 "이제라도 정부가 모든 국민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UPI뉴스 / 김들풀 IT과학 전문기자 itnews@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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