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사대주의 정부?…과기부, 영어 사용 가장 많아

김들풀 / 기사승인 : 2020-09-10 16: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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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르게] ② 영어 투성이 공공언어
로마자 많이 쓴 기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특허청', '관세청' 순
"영어는 세련된 느낌이라서 좋아"
"우리말 자긍심 찾아야"
한글은 우수하다. 일찍이 벽안의 이방인이 알아봤다. 미국인 호머 헐버트가 뉴욕 트리뷴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린 게 1889년이다. 헐버트는 "한글은 완벽한 문자"라고 극찬했다. "최소 문자로 최대 표현력을 갖는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한글의 주인'은 그 가치를 망각하고 사는 듯하다. 바른 한글 사용을 선도해야 할 정부부터 그러하다. 정부부처의 공공문서엔 오염된 언어 투성이다. '공문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국어기본법을 정부가 앞장서 위반하는 꼴이다. 이런 행태가 국민과의 소통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이다.

UPI뉴스는 43개 정부 부처의 공공언어 실태를 취재, 분석해 기획보도 [우리말 바르게]를 연재한다.

▲ 서울 명동 거리. 영어 간판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셔터스톡]

서울 시내 거리는 영어 간판으로 뒤덮여 있다. 어느 외국인은 "거리 모습만 봤을 때 한국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했다. '영어 사대주의'가 일상화, 체질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의 대국민 공문서에도 영어가 숱하다. 43개 정부 부처의 공공언어 실태조사 결과 로마자를 많이 쓴 기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000낱말 당 26개로 가장 많았고, 특허청 25개, 관세청 20개 순으로 나타났다. 로마자를 기장 적게 쓴 기관은 '원자력안전위원회 0개, 법제처 0.5개, 국가보훈처 0.6개 순이다. 43개 정부 부처의 로마자 사용 평균값은 1000낱말 당 8개였다.

주로 사용한 로마자 예를 보면, "AI, DB, TF" 등 흔하게 쓰이는 짧은 어휘에서, "Tech-Bridge", "Real-time", "Processing-In-Memory" 등과 같이 길고 어려운 어휘까지 다양하게 쓰였다.
▲ 43개 정부 부처 공문서에 로마자를 그대로 쓴 기관 순위. [출처: 공공언어 실태조사 보고서]

정부 공문서에서 흔하게 쓰이는 이러한 영어는 뜻을 파악하기 어려워 국민들을 단절시키고 정보에 접근할 수 없도록 차별을 조장하는 장벽이 되고 있다.

UPI뉴스가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외국어, 특히 영어를 쓰면 뭔가 더 고급스럽다거나 세련된 느낌이라서 외국어를 좀 오남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페나 식당에서 차림표를 보면 모두 영어로 돼 있어 난감할 때가 많다"고 했다.

한글학회 권재일 회장은 "우리가 1970년대 전국국어운동대학생회 활동 당시 한 과자 제조업체를 찾아가 우리말로 된 과자 이름을 짓도록 요청하자, '영어로 쓰지 않으면 과자가 팔리지 않는다, 우리말로 된 과자를 찾는다면 영어로 쓰라 해도 우리는 우리말로 이름을 지을 것이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당시에도 우리말에 대한 자긍심이 없음을 개탄했는데 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국민들은 물론이고 정부 공문서에 온통 영어가 섞여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기부나 산자부 등 영어로 된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기관은 다른 기관보다 더욱더 우리말 용어 순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는 방탄소년단을 중심으로 한글과 한국어를 공부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어느새 주류 문화가 된 한글과 한국어를 우리만 모르는 모순 속에 살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UPI뉴스 / 김들풀 IT과학 전문기자 itnews@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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