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기 아냐"… 경기도의회, 이재명 역점사업 날선 심의

김영석 / 기사승인 : 2020-09-14 18:13:34
  • -
  • +
  • 인쇄
민주당 소속 의원 선명성 경쟁도 한몫

경기도가 '우리 편'이라 믿고 있던 경기도의회의 예기치 않은 행보에 긴장하다 못해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경기도의회 전경 [경기도의회 제공]


이재명 경기지사의 역점사업 예산을 잇따라 삭감하거나 제동을 거는 것은 물론, 집행부에서 삭감 예정한 수백억 예산의 활용방안을 직접 제안해 정책에 반영하는 등 '정책 대안자' 역할까지 하고 나섰다.

이재명 역점사업 잇단 제동

14일 경기도와 경기도의회에 따르면 도 의회 경제노동위원회와 안정행정위원회는 지난 8일 경기도의회에 집행부가 세운 추경예산안 가운데 '공공 디지털 SOC 구축사업'과 '지방조달시스템 개발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공공 디지털 SOC 구축사업'은 일명 경기도 공공배달앱 구축을 위한 것으로 이 지사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지난 4월 배달앱 1위 업체인 '배달의 민족'의 수수료 체계 변경 방침과 관련, '독점적 지위 남용' 논란이 일면서 이 지사가 "유사 독과점 업체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며 시작한 사업이다.

 

지방조달시스템 개발도 지난 7월 이 지사가 "조달청의 국가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가 공공물품 조달시장을 독점해 조달가격이 비싸고 조달 수수료가 불공정하게 분배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된 사업이다.

 

앞서 지난 3일과 4일 농정해양위원회와 도시환경위원회는 '경기도 농민기본소득 지원 조례안'과 '경기도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을 각각 보류했다.

 

'농민기본소득 지원 조례안'은 이 지사의 기본소득 정책과 연계해 도내 농민들에게 연 6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 조례안'은 이 지사의 주택복지 사업의 한 축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회적 기업에 장기임대주택 사업을 맡기는 공익 사업이다.

 

모두가 도정의 핵심 가치를 '공정'에 둔 이 지사가 독과점 폐해를 개선하거나 사회적 약자에게 '부'를 나눠 주겠다며 역점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나 조례로, 전체 의석 142석 가운데 131석의 의원이 같은 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어서 무난하게 통과가 될 것으로 전망됐었다.

 

하지만 공배달앱 개발을 위해 편성된 33억 원과 지방조달 시스템 개발을 위한 타당성 및 시스템 설계 용역 예산 3억5000만 원 전액 삭감 또는 조례안 보류라는 결과가 초래됐다.

 

같은 여당 소속 절대 다수 의석과 '공정'이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경기도의회의 '우리 편 반란(?)'에 집행부 간부들의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집행부 예산관련 한 간부는 "'공정'이라는 공동 가치 아래 지사가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당혹감을 넘어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촘촘하고 깐깐한 의정 활동"

 

집행부의 '충격'에 가까운 당혹스러움'은 여당 집행부 시절 다수 의석인 야당에 의한 것이거나, 반대로 야당 집행부 시절 다수당인 여당 의회에 의한 게 아니어서 더 컸다. 특히 공공배달앱 사업의 경우 이미 사업자 선정과 가맹점 모집까지 상당부분 진척된 것이어서 더더욱 의외로 여겨졌다.

 

하지만 '동지'에 가까운 경기도의회의 반란(?)은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다. 지난 7월 7일 후반기 경기도의회 의장에 당선된 장현국 의원은 UPI뉴스와의 당선 인터뷰에서 "같은 당이라고 해서 절대 거수기 노릇은 되지 않는다"며 "절대 의석을 차지한 같은 당 의원들끼리 벌여야 하는 '선명성' 경쟁은 다른 당과의 싸움보다 훨씬 더 조직적이고 치열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었다.

 

광역의회 차원이지만 의정활동이 과거처럼 정략적으로 '무조건적 반대나 찬성'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촘촘하고 깐깐하게 짜여질 수 밖에 없다는 구조를 설명한 것이다.

 

여기에 초선이지만 위회 입성 이전 행정부의 고위 간부를 지냈거나 시군의회 의장 등 의장단을 역임한 '베테랑' 의원들이 대거 상임위원장에 배치되면서, 집행부에 호락호락 하지 않을 의정활동을 예고했었다.

 

실제 이들 역점사업 예산을 삭감한 이유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배달앱사업은 경제노동위에 이어 지난 9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예결위 권락용(민·성남6) 의원은 "정부는 영향력이 있어야 하지만 전지전능해서는 안 된다"며 "공공 배달앱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기존의 공공 배달앱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권 의원은 "변화에 대응이 빠른 민간과 달리 공공은 의사결정 후에 예산을 집행하기까지 여러 단계가 있어 한계가 있다"며 "특히 공공 배달앱이 계속 이용되기 위해선 지역상품권이 꾸준히 공급돼야 하는데 사용하기 불편해서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 문제를 품고 있다"고 평가했다.

 

배달 플랫폼이 민간 영역인 데 힘 있다고 정부(경기도)가 나서는 게 맞느냐는 논리다.

 

안행위도 지방조달시스템 개발 예산 삭감과 관련, "경기도가 자체 조달시스템을 추진하면서 기획재정부·조달청 등 정부 부처나 기관과 협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전자조달법·지방계약법 시행령 개정 등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예산부터 편성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또 농정해양위는 재원 조달의 문제점과 타 직군 간 형평성 문제를 들었고, 도시환경위는 고소득 무주택자 주택 배정 문제와 사회적 기업에 대한 특혜 소지가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

 

삭감 위기의 예산 활용방안까지 제시

 

집행부가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의 분석과 논리로 이 지사의 '역점사업' 예산을 잇따라 삭감하거나 조례를 보류시켜 도민을 놀라게 한 도 의회가 집행부에서 삭감하겠다고 나선 예산안에 대해 질타하며 활용방안까지 제시하는 일도 벌어졌다.

 

도 의회 보건복지위는 코로나19 위기가구 지원을 목적으로 편성된 500억원이 같은 항목의 국비 지원으로 불용될 수 밖에 없다며 삭감하겠다고 나서자 "더 많은 도민들에게 지원이 돌아갈 수 있도록 관련 예산을 유지하고 오히려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집행부를 질타했다.

 

도 의회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의장단을 중심으로 "이 예산을 코로나로 어려운 도민들에게 지역화폐로 나눠주자"며 집행부에 안을 제시, 이 지사가 이 예산에 500억 원을 더해 1000억원으로 사상 초유의 이른 바 '25% 혜택의 지역화폐 지급'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같은 와중에 경기도의회는 지난 8일 전국 최초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통과를 위한 지원 위원회인 '자치분권발전위원회' 구성 조례안을 의결하기도 했다.

 

이날 상임위를 통과한 조례안은 자치분권과 그 추진방안, 지방자치법 및 관계 법령 개정, 지방의회법 제정, 지방의회 조직과 인사에 관한 사항 등을 담았고, 오는 18일 본회의에서 심의·가결될 전망이다.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지난 7월 21대 국회에 수정 제출됐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내 통과를 약속한 상태다.

 

예상치 못한 촘촘한 추경안 심사에 이어 지치분권을 위한 활약까지 지난 7월 출범한 후반기 경기도의회의 의정활동에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11일 도지사 공관에서 집행부 실·국장을 대동하고 박근철 도 의회 민주당 대표와 상임위원장등을 초청해 정담회를 열기도 했다.

도 의회의 이같은 활동에 도민은 물론, 지역 시민단체도 놀라워하면서 갈채를 보내고 있다.


경기도 경실련 허정호 사무처장은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처럼 집권 여당 소속의 집행부 장과 경기도의회간 '짬짜미'로 예산이 결정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많았다"며 "하지만 후반기 경기도의회가 놀랄 정도로 꼼꼼한 심의와 현장 목소리 청취 및 자치분권을 위한 의정활동을 펴고 있어 응원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UPI뉴스 / 김영석 기자 lovetupa@upinews.kr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핫이슈

만평

2020.10.23 0시 기준
25698
455
23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