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당의 단매] 친서 열흘만에 민간인 사살하고선 믿으라고?

김당 / 기사승인 : 2020-09-26 23: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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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한 사과에 '감동'받을 거라면 '착각'…北주민 모르는 '반쪽 사과'
추석 차례상 민심 심상치 않자 사태 수습 위해 친서 전문도 공개
전쟁∙대남도발 3,100여건 반복…백 마디 말보다 한번 실천이 중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군의 대한민국 국민 총격∙피살 사건에 대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사과 및 재발방지 의사를 표명했다. 바다에 표류해 탈진한 민간인을 사살한 만행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 편지 쓰기는 김정은 위원장의 주요 일과이다. 김 위원장이 지난 5일 수도평양의 전체당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쓰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김 위원장은 25일 오전 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대남통지문을 통해 "우리(북한) 측 수역에서 뜻밖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남측에 전해왔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날 오후 2시에 대독(代讀) 형식으로 발표했다.

국방부는 앞서 24일 "북한의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면서 전날 오후 유엔사 정전위를 통해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대북전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도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결과를 보고받고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북한 당국이 책임 있는 답변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강민석 청와대 대변인 발표).

국방부가 유엔사 정전위를 통해 대북통지문을 발송한지 이틀 만에, 문 대통령이 북한 당국에 책임 있는 답변과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지 불과 하루만에 김 위원장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응답해온 것이다. 그동안의 남북관계에 비추어 분명히 이례적이다. 의외성은 때로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감동을 주기도 한다.

 

김정은 '사과' 이례적…청와대의 친서 전문 공개는 더 이례적

청와대가 김 위원장이 보낸 친서 전문까지 공개한 것은 더 이례적이다. 당초 이날 오후 2시 서훈 실장이 대남통지문을 발표한 때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에 친서가 오간 사실과 친서의 일부 표현만 공개했다. 하지만 2시간 뒤에 전격 전문을 공개했다. 서훈 실장은 "문 대통령이 친서의 내용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려드리도록 지시했다"고 공개 배경을 전했다.

이는 청와대가 그동안 친서가 오간 사실을 일체 말하지 않다가 하필 이 시점에 전문까지 공개한 것인지를 설명해주는 답변은 아니다. 오히려 북한의 민간인 총격으로 추석 차례상 민심이 심상치 않을 것임을 우려한 청와대가 사태 수습을 위해 친서까지 공개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더 설득력 있다.

▲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 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외교 관례상 친서 공개에는 상호간의 합의가 필요한 만큼 국정원-통전부 비공개 라인의 물밑 접촉을 통해 이번 친서가 공개된 데는 북한의 동의와 의도가 담겼을 가능성이 크다. 남북한의 통신선이 단절된 데다가 인편으로 친서와 통지문이 교환된 사정에 비추어 남북한은 비공개 라인을 통해 그 배경을 공유하기 마련이다.

이에 비추어 남측이 비공개 라인을 통해 북측에 이번 사건으로 남측의 반북(反北) 정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입장에서도 자신이 직접 나서 치솟는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않으면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대남관계의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도 그만큼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으며 진정성 있게 대응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신들도 김 위원장의 공개 사과 소식을 신속 보도했다. AP는 "북한 지도자가 특정 이슈에 대해 남측에 사과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extremely unusual)"이라고 평가했다.

 

조난당한 민간인 외면∙사살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

하지만 김정은의 사과를 담은 대남통지문과 코로나19 위로 편지 한장으로 바다에 표류한 민간인을 사살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분노가 봄눈 녹듯 사라질 거라고 계산한 것이라면 이는 착각이다. 유감 표명과 사과가 피해자의 동의와 용서를 얻으려면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진정성을 가늠할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국제사회의 보편적 상식과 남북관계의 대칭적 비례성을 들 수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측에 사과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김정은의 통지문(문서) 사과는 구두(말)로 사과한 김일성·김정일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북한 특수군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라며 "재발하지 않도록"이라는 표현을 써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구두로 사과한 바 있다. 김정일 위원장도 2002년 당시 방북한 박근혜 의원에게 같은 사건에 대해 "극단주의자들이 잘못 저지른 일로 미안한 마음"이라며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응분의 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의 경우 정부 고위관계자나 정치인의 면담 과정에서 오간 구두 메시지가 아니라 대남통지문 형식이긴 하지만 문서로 사과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적어도 한국 국민들에게 공개 사과를 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상식에 비추어 김 위원장의 사과가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김정은은 2018년 4월 중국인 관광객들이 탄 버스가 전복돼 30여명의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깊이 속죄한다"는 위로전문을 보내 사과했다.

▲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4월 당시 북한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중국인 관광객들의 시신과 부상자를 후송하기 위한 전용열차에 올라 부상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버스 전복으로 사상자가 많이 나왔지만 이는 단순 교통사고였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직접 병원을 찾아 부상자를 위로하고 희생자 이송을 위한 전용열차를 편성해 평양역까지 나가 열차의 부상자들을 직접 배웅함으로써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절히 느끼고 있다"는 '성의'를 조선중앙TV 화면을 통해 중국측에 전달했다.

이에 비추어 바다에 표류한 남측 민간인을 북한군이 사살한 이번 사건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유엔해양법 제98조는 모든 국가가 자국 선박 등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는 한 "바다에서 조난 위험에 빠진 어떤 인명에도 도움을 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남통지문을 보면, 북측은 표류한 사람을 구조의 대상으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불법 침입자로 간주해 "해상 경계근무 규정이 승인하는 행동 준칙에 따라" 총격을 했을 뿐, 원인 제공은 남측에 있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런 인식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은 김정은의 사과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체제 특성상 주민들 모르는 김정은 사과는 '반쪽짜리 사과'

전쟁까지 한 남북관계의 대칭적 비례성도 감안해야 한다. 〈국방백서〉에 따르면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현재까지 북한의 대남도발은 3,100여건이나 된다. 이번 민간인 사살 이전까지 우리 국민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북한에 대한 이미지의 잔상은 지난 6월 16일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이다.

남북관계의 파탄을 예고하는 개성 공동사무소 폭파 소식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 북한 주민들이 보는 관영매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이에 비해 북한군의 민간인 사살 및 김정은의 사과 소식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TV 같은 관영매체는 물론 우리민족끼리, 조국의오늘 같은 대외 선전매체에도 일절 보도되지 않고 있다.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인 개성 공동사무소 폭파 소식은 북한 전체주의 체제의 특성상 모든 인민들이 인지하고 있음에 반해, 민간인 사살 및 사과 소식은 외신을 접할 수 있는 당간부나 외교관 등 극소수를 제외하곤 대부분 모른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남북관계의 대칭적 비례성에 비추어 북측 주민들이 모르는 최고지도자의 사과는 진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반쪽짜리 사과'일 뿐이다.

▲ 북한 관영매체들은 2019년 6월 23일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고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공개했다. [노동신문 캡처]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고받은 의례적 친서에서 알 수 있듯, 위정자들의 친서는 사실 별로 믿을 게 못된다. 심지어 김정은이 보내온 편지에 대해 "아름다운 편지"라며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던 트럼프조차도, 최근 김정은과 주고받은 편지를 '러브레터'라고 했던 것은 '비꼬는 표현'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 같은 해명은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이 새로 내놓은 〈격노(Rage)〉라는 책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25통의 친서 내용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나왔다. 이에 친서가 공개돼 11월 대선을 앞두고 '독재자와 영합하는 지도자'라는 민주당의 공격이 거세질 것에 대비해 트럼프가 김정은과 거리두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진심 전한다"는 김정은 친서 열흘만에 남측 민간인 사살

 

지난 3월에 이어 6개월만에 주고받은 문재인-김정은 친서도 마찬가지이다. 개성 공동사무소 폭파와 남북간 모든 통신선의 봉쇄로 꽉 막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 문 대통령이 편지를 보내 답장을 받은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문 대통령은 9월 8일 보낸 친서에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기원하며 진심을 담아 이렇게 썼다.

"무너진 집은 새로 지으면 되고, 끊어진 다리는 다시 잇고, 쓰러진 벼는 일으켜 세우면 되지만, 사람의 목숨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으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입니다. 우리 8천만 동포의 생명과 안위를 지키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도전과 난관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가장 근본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9월 12일자 친서에서 "끔찍한 올해의 이 시간들이 속히 흘러가고 좋은 일들이 차례로 기다릴 그런 날들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겠다"면서 "남녘동포들의 소중한 건강과 행복이 제발 지켜지기를 간절히 빌겠다"고 답장했다. 그는 친서에서 "가식 없는 진심을 전해드린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10일만에 바다에 표류한 남측 비무장 민간인이 북한군 총격으로 사살되는 야만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의 목숨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으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는 문 대통령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민간인 사살 사건이 벌어졌다. 냉엄한 남북관계의 현실 앞에서 '가식없는 진심을 전한다'는 김정은의 친서는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이 김정은한테 편지 쓰기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생존과 직결된 일이다. 김정은은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해 트럼프한테 친서를 보내기도 하지만, 내부적으로 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전체 당원들에게 공개편지를 써서 노동신문에 공개해 평양당원 1만2천명을 함경도 수해복구에 동원하기도 한다.

▲ 26일 낮 12시27분 현재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첫 화면. 각국의 축전과 답전, 축하편지와 친서를 보내고 받은 소식으로 가득 차 있을 만큼 '편지 주고받기'는 김정은 위원장의 주요한 일과이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실제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을 보면, '편지 읽기'와 '편지 쓰기', 그리고 '현지지도'가 김정은의 주요 일과이다. 김정은은 거의 매일 축전과 축하편지, 그리고 친서를 쓰거나 보내고 받는다. 그와 그 측근들 상당수가 유엔과 미국의 제재 대상이어서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해외여행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처지다. 정상외교 대신 친서외교가 유일한 타개책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가 문 대통령에게 쓴 친서도 그가 날마다 쓰고 받는 의례적인 편지 수백 통의 하나일 뿐이다. 대남통지문에 담긴 '사과'와 친서에 담은 '진심'도 수백 마디 수사(修辭)의 하나일 뿐이다. 수십년 축적된 남북관계의 경험칙에 비추어도 백 마디 말(편지)보다 한번의 실천이 믿음을 줄 수 있다.

김정은의 사과가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북한 인민들도 그 진정성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북측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발생"한 소식과 김 위원장이 사과를 표명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싣는 것이다. 그런다고 피살된 공무원의 목숨을 되돌릴 순 없겠지만, 그나마 남측의 추가조사 요구에 응하고 개성 공동사무소를 원상복구 한다면 비로소 신뢰의 싹이 틀 수 있을 것이다.

U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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