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모레 여든, 3만보 걸으며 3만원 벌어" 실버택배원의 하루

문재원 / 기사승인 : 2020-10-29 11: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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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실버 택배원과 현장을 가다
외로움 덜고 건강도 덤으로 '일석이조'
"택배기사 과로사 뉴스에 분노 일어요"
지난해 6조 원 규모로 급성장한 택배 산업. 코로나19 사태 이후 물량은 더 급증했다. 동시에 화려한 이면에 숨겨진 그늘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총알 배송은 소비자의 '빨리빨리'니즈를 채워줬으나 그 이면엔 살인적 업무량과 불공정계약이 있었다. 올해만 택배기사 14명이 과로로 숨졌다.

배송의 세계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살인적 환경만 제어한다면 그 세계도 보람과 긍지가 넘치는 삶의 현장이다. '실버 택배'의 세상이 그랬다. 
 
▲ 28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실버퀵지하철택배 사무실에서 배송원들이 TV를 시청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28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건물.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모여 TV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곳은 평균 연령 70세의 실버퀵 지하철 택배 사무실이다. 지하철 요금이 무료인 65세 이상 시니어들이 택배원으로 일하는 현장이다.

▲ 실버퀵지하철택배 배기근(70세) 대표가 28일 오전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배송 전화를 확인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북한산우이역에서 인천", "여의도 의원회관" 

"네, 지금 갑니다."

전화가 끊어지자 TV를 보며 앉아 있던 시니어들은 단숨에 가방을 챙기고 택배 준비를 마쳤다.

▲ 실버퀵 지하철 택배원 최영식(71세)씨가 운송장을 전달받고 있다. [문재원 기자]

 

▲ 운송장에 찍힌 주소를 확인하는 실버퀵 지하철 택배원 최영식(71세)씨. [문재원 기자]


최영식 씨는 내비게이션 확인 후 71세의 걸음속도라고는 믿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선생님 원래 이렇게 걸음이 빠르세요?"

"네 , 이 일을 하고 자주 걷다 보니 더 건강해졌어요. 우리같은 은퇴자들, 노인네들이 제일 어려운게 뭔지 알아요? 하루 하루 시간을 때우는 거에요. 나는 이거 하면 몸에 엔돌핀이 돌아요,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함께 일하는 거에 행복을 느껴요. 늙어서 가만히 있으면 병 나요. 그 빼기 힘들다는 뱃살도 잘 빠지구요."

하루 2건 정도 배달을 하면 대충 2~3만원 정도는 번다고 한다.

▲ 지하철을 타기 위해 승강장에 내려 오고 있는 최영식씨. [문재원 기자]

 

 

▲ 노선도를 확인하는 최영식 씨. [문재원 기자]

 

▲ 내비게이션을 보며 길을 찾는 최영식씨. [문재원 기자]

 

▲ 실버퀵 지하철 택배원 최영식(71)씨가 28일 오후 서울 강북구에서 물건을 전달받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제 이 서류 들고 인천갑니다. 조심히 들어가요."

 

▲ 실버퀵지하철택배 배기근(70) 대표가 28일 오후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배송 확인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IMF 때 사업 실패 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참 고민 많이 했어요."

오전 업무를 마친 실버퀵지하철택배 배기근 대표는 기자에게 20년 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아침 9시에 어느 물건을 갖다달라고 퀵배송을 주문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오후 5시나 돼서야 젊은 학생이 물건을 가져오더군요. 그 경험을 하면서 아, 퀵배송 일이 많구나, 돈 벌 수 있겠다, 하는 생각에 무작정 시작했어요. 그러다 공원에서 건강하시고 말도 잘하시는 노인들이 바둑만 두고 계신걸 보고, 저분들이랑 같이 일하면 좋겠다 싶어서 한 세월이 벌써 20년이 됐네요."

▲ 실버퀵지하철택배 배기근(70세)대표가 28일 오후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기자에게 '실버택배 20년'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배 대표는 요즘 잇달아 발생한 택배 기사의 과로사 뉴스에 분개했다.

"나는 요즘 택배 기사 과로사라는 뉴스를 볼 때, 화가 나는 걸 넘어 아주 분개해요. 어떻게 한 사람한테 분류와 배송을 다 시킬 수 있어요? 일 양이 터무니 없이 많은거예요. 젊은 나이에 한창인 사람들이 일을 하다 과로로 죽는다...이건 정말 분개할 일입니다. 대기업 택배사의 운영 방식은 잘못됐어요, 지금이라도 시스템을 다 바꿔야 합니다."


다음 배송 전화가 들어오자 이번엔 분홍 외투를 곱게 차려입으신 할머니가 사무실 문을 나섰다.

▲ 실버퀵 지하철 택배원 김진순(79)씨가 28일 오후 서울 중구에서 물건을 배달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노오란 은행잎 비가 내리네요"

배송할 물건을 들고 길을 걷던 실버퀵 지하철 택배원 김진순(79)씨가 말했다.

▲ 지하철 탑승을 위해 역으로 내려가고 있는 김진순 씨. [문재원 기자]

 

▲ 기자에게 일일 걸음수 기록 어플을 보여주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매일 걷다 보니, 몸이 더 건강해졌어요. 오늘 3만보 넘게 걸었어요. 이 나이에는 가만히 있으면 병 나요,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해야..." 

 

▲ 실버퀵 지하철 택배원 김진순(79세)씨가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물건을 배달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79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젊은 사람들 속에서 당당히 길을 걷는 김진순 씨.

▲ 실버퀵 지하철 택배원 김진순(79세)씨가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택배 수취인을 기다리고 있다. [문재원 기자]

 

▲ 김진순 씨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수취인에게 물건을 전달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 화단을 넘은 지렁이를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 주는 김진순씨. [문재원 기자]


64학번 대학생활 이야기, 어릴 적 부모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하는 김진순씨의 모습은 공원에 산책을 나온 여느 할머니의 모습과 같았다.

"일할 땐 행복해야 해."

▲ 실버퀵 지하철 택배 기사 김진순(79세)씨가 다음 일거리를 확인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 김진순(79)씨가 다음 일거리를 확인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배송 완료 여의도역, 오더 주세요" 김씨는 능숙하게 메시지를 날렸다.


UPI뉴스 / 문재원 기자 mjw@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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