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이승우 "사랑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조용호 / 기사승인 : 2020-11-20 13: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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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를 소설로 '번역'한 연작모음집 '사랑이 한 일'
아들을 바치고 딸을 내놓으며 아내를 내쫓는 아버지
인간의 마음으로 소설을 통해 신과 믿음의 문제 접근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거나 조금 덜 사랑했어야 했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사랑하더라도 조금만 사랑했다면 신은 나에게 바치라는 요구를 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요구하지도 않은 것을 바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사랑하더라도 조금만 사랑했다면 너를 바치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들을 산 채로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은 아브라함의 말이다. 정확하게는 그의 아들 이삭이 애써 옹호하는 아버지와 신의 입장이다. 신은 100살 먹은 아브라함에게 뒤늦게 막둥이 이삭을 선사했고, 그 사랑하는 아들을 다시 자신에게 제사의 희생 제물로 배를 갈라 태워서 바치도록 요구했다. 아브라함은 순종했고, 마지막 순간 신은 자신의 요구를 취소했다. 신은 왜 그런 요구를 했고 아버지는 두말 없이 받아들였는지,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이삭은 내내 생각했다. '창세기'가 아니라 이승우(61)의 연작소설 '사랑이 한 일'(문학동네)에서 그리 했다. 이승우는 아브라함의 목소리로 소설에서 말한다.

▲'창세기'를 '사랑'의 열쇠로 풀어낸 이승우. 그는 "제물로 바쳐지는 아들의 심정 속으로 들어가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믿으려고 했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거나 조금 덜 사랑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그 불가능한 요구를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끔찍이 사랑하는 아들을 바치라고 요구하는 신은 대체 어떤 마음일까. 이승우는 이 모든 것이 사랑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음을 전제하고, 그 사랑을 논리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소설 내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잔혹한 명령을 내린 신이야말로 외로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은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마음보다 더 간절하고 절실한 것은 없다. 시험이라는 비순수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사랑보다 더 순수하고 큰 사랑은 없다. 비순수를 통해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종류의 순수가 있다. 사랑이야말로 그러하다."

 

이승우는 신이 아브라함의 사랑을 시험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했다. 신은 스스로 시험에 빠진 것이다. 아브라함이 자신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여 그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신은 사랑을 잃고 마는 외로운 처지다. 이미 소돔과 고모라에서 자신의 창조물들을 유황불로 단죄했고, 대홍수를 일으켜 노아의 방주만 남긴 채 족속들을 절멸시킨 신이 아니던가. 이제 아브라함마저 다시 잃는다면 어찌할까. 이승우는 이삭의 입으로 말한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조금 덜 사랑했어야 했어요. 아버지의 신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거나 조금만 사랑했어야 했어요. 그랬더라면 그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일도 받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사랑하지 않거나 조금만 사랑하기가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사랑은 참으로 무서운 거예요."


신학대학을 나와 일찍이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구원의 문제를 천착해온 소설가 이승우의 연작소설집 표제작 '사랑이 한 일'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서구에서 특히 각광을 받고 있는 '관념의 토르소' 이승우는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로부터 '한국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그가 본격적인 '종교적 영성'으로 '창세기'의 에피소드들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결실이 이번 소설집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자기 딸을 불량배들에게 내주는 소돔성의 롯, 아들과 함께 부당하게 내쫓기는 하갈, 그리고 쌍둥이 형제를 각각 편애하는 야곱의 부모' 등 모두 5편을 수록했다.

 

'소돔의 하룻밤'은 이방인들을 내놓으라는 소돔 사람들의 행태에 맞서 "시집가지 않은 딸들을 내어줄 테니 당신들 좋을 대로 하고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는 '롯'에 대한 변론이다. 아무리 이방인을 보호하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딸들을 그 방어용으로 내놓을 수 있는가. 이승우는 말한다. 

 

"그의 딸들은 '오늘밤 이 도시에 들어온' 외지인들이 아니므로 안전할 것을 아마 확신했다고 할 수 있다. 남자들이 딸들을 범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그런 제안을 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내놓을 수 있는 것 가운데 최고인 딸을 제시함으로써 그의 손님 보호의지가 얼마나 크고 양보할 수 없는 것인지를 전달하려 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90살이 되도록 그의 아내 사라가 아이를 갖지 못하자, 여종 하갈을 대신 침실로 들여보내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이다. 신의 뜻에 따라 뒤늦게 아이를 낳은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학대하자 아브라함은 분란을 피하기 위해 이들을 광야로 내보낸다. '하갈의 노래'에서 이승우는 신의 뜻에 기대는 아브라함에게 하갈의 입으로 말한다.

 

"아내와 아들을 쫓아내는 가장이 어디 있는가. …당신이 섬기는 신이 그런 분이라면, 인륜도 사랑도 짓뭉개는 그런 분이라면 어떻게 경배를 받을까? 그런 분을 위해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는 당신을 누가 존중할까?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게 막는 신이 있다니. 그런 신을 섬긴다니. 당신은 변명을 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당신의 사랑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보여줄 사랑이 없는 거예요."

 

이승우는 "신은 그 집의 주인 말고는 누구도 받은 적 없는 복을 그녀에게 약속함으로써 그녀를 설득했다"면서 "주인의 신이 곧 그녀의 신이기도 하다고 말함으로써 주인과 그녀가 신 앞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을 선언했고, 그 사실이 그녀를 다시 울게 했다"고 신을 지지한다.

▲이승우는 "소설쓰기가 일종의 패러프레이즈라는 생각을 한다"면서 "이미 쓰인 것을 다시 쓰고 풀어 쓰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일은 번역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허기와 탐식'에서는 이삭이 늙어서도 아버지로부터 어린시절 죽임을 당할 뻔 했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전제로,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 중 맏아들 에서를 편애한 배경에 대해 해석한다.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해 눈먼 이삭을 속여 장자권을 편취하게 만들었거니와 이승우는 "사람에게는 균형을 잡는 재주가 없고 사랑에게는 균형에 대한 감각이 없다"면서 "편애는 비정상적인 사랑의 한 방식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랑의 일반적 현상"이라고 설파한다.

 

아버지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할 뻔한 이삭은 쫓겨난 형 이스마엘을 만나러 간다. 광야에서 사냥해 먹여주던 형의 요리, 그것은 살아오면서 내내 탐식을 하게 만든 모티브가 되었다. 트라우마에 신음하고 울 때마다 그는 무엇이든 먹었고, 무엇을 먹어도 허기가 사라지지 않아서 계속 먹었다고 이승우는 말한다. 사냥해서 요리하기를 좋아했던 맏아들 에서를 편애한 배경이다. 형을 쫓아낸 아버지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신의 뜻을 앞세웠을 것"이고 "최선을 넘어서는 최선, 법과 도리를 뛰어넘는 신의 섭리에 대해 말했을 것"이지만 "최선을 넘어설 수 없는 최선, 신의 섭리를 뛰어넘을 수 없는 법과 도리의 세계에 사는,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 그것을 넘어서고 뛰어넘으려고 할 때 인간성의 파괴 없이 그 넘어섬과 뛰어넘음이 가능한가"라고, 이삭의 입으로 이승우는 말한다. 

 

이승우는 "나는 바칠 것을 요구하는 신이나 그 요구에 순종하는 아버지 대신 그 요구에 의해 제물로 바쳐지는 아들의 심정 속으로 들어가 이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믿으려고 했다"면서 "(창세기에 대한) 내 번역의 방법은 인간의 마음으로, 즉 소설을 통해 신의 마음, 즉 믿음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었다"고 작가의 말을 썼다. 그는 이 과정에서 '사랑'을 발견했고, 이것이야말로 부담스러운 작업을 이어가는 열쇠가 됐다고 부연했다. 

▲이승우는 "나는 내 소설들이 위대한 원작을 조심스럽게 가리키는 수줍은 손가락이기를 바란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는 실제로 소설 여러 곳에서 사랑에 대해 언급하거니와 그 사랑은 황홀하거나 좋거나 느꺼운 무엇이 아니라, '무서운'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찬 사랑의 명령'을 내리는 신에 대해 말하면서 "사랑은 시험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을 뛰어넘는 것도 아니고 시험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라며 "사랑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라고 언명한다.
그리 무서운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재앙과 어떻게 다른가. 돌아온 답은 이러하다.


"무섭다는 말을 나는 엄청난 것,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썼습니다. 신성에 대한 종교적 인간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는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기운이 느껴지는 어감으로요. 여기서 사랑은 아브라함과 신을 같이 이해하려는 아들(인간)의 사색의 결과물인데요, 믿음이라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을 발생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 그러니 엄청나고 경이롭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뭐 그런 뜻으로요."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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