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리포트] '아, 옛날이여'…코로나로 시들어가는 실리콘밸리

공완섭 / 기사승인 : 2021-01-14 11: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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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임대료 하락…아파트 40% ↓
오라클, HP 등 아이콘 기업 본사 이전
테슬라 이전 발표에 엑소더스 가속화
"기술, 인재, 네트워크 남아" 낙관론도
미국 샌프란시스코 사우스비치에 사는 한인 벤처기업가 케빈 김은 다음달 자신의 출신지 뉴욕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코로나19 이후 타주로 떠나는 친구들 소식을 듣고도 망설여 왔으나 최근 아파트 임대(rent) 시세를 확인하고 나서 마음을 굳힌 것.

그는 4년 전 방 두 칸짜리 아파트를 월세 4900달러에 얻어 친구들과 룸메이트를 하며 지내왔다. 렌트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뉴욕보다도 훨씬 비싼 조건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최근 단지 내에 빈 아파트가 늘기 시작하고, 같은 조건의 아파트가 2900달러로 무려 40%나 떨어졌지만 이 참에 아예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어차피 직원들도 한국과 베트남, 캐나다 등지에 흩어져 있어서 비디오 채팅앱 줌(Zoom)을 이용해 일을 하고 있고, 코로나 이후 투자자들과도 직접 만날 일이 거의 없어 굳이 샌프란시스코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실리콘밸리 엑소더스가 가속화하고 있다. [UPI뉴스 자료사진]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살던 또다른 벤처기업가 벤 라네마는 이보다 앞선 지난해 11월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이사했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매우 흡족해 하고 있다. 일단 샌프란시스코방 한 칸짜리 렌트 요금으로 오스틴에서 넓은 뒤뜰과 실내 운동시설, 홈오피스가 갖춰져 있는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얻어 주거환경이 확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가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와 근무형태 변화 때문. 기업간 비즈니스(B2B)를 하는 사업 성격상 굳이 사무실에 출근할 필요가 없어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오클랜드 지역 사무실 문을 닫고, 비용이 적게 드는 오스틴에서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라네마 사장은 "동종업계 회원 150명 가운데 15~20명 정도가 타주로 떠났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엑소더스 행렬은 갈수록 가속화하고 있다. IBM과 삼성, 델컴퓨터 등이 실리콘밸리를 떠나 오스틴에 새 둥지를 틀었다.

오라클과 HP 등 실리콘밸리의 아이콘 기업들은 지난달 아예 본사를 오스틴으로 옮기겠다고 밝혔고, 드루 휴스턴 드롭박스 CEO도 조만간 옮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엑소더스 행렬에 채찍을 가한 이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조만간 오스틴시 북부에 터널을 뚫는 보링회사와 사이버트럭 생산공장을 착공할 예정이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IT간판기업들은 일찌감치 거점을 이곳으로 옮겼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지는 최근호에서 실리콘밸리 기업들 사이에서는 어물쩍하다가는 시대에 뒤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감, 이른바 FOMO(Fear of Missing Out)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다 떠나고 덩그러니 남아 있는 신세로 전락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집단심리(hive-minded)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높은 부동산 임차료 부담도 크지만 높은 인건비도 실리콘밸리 기업에겐 멍에였다. 오라클은 본사를 오스틴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 "회사의 발전과 융통성 있는 인력조달을 위해 최선의 결정이었다"며 막대한 인건비 부담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대(어바인) 켄 머피교수는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는 또다른 이유로 높은 비용구조, 조세부담 등을 꼽고 있다. 또 텍사스를 비롯해 애리조나, 유타, 오리건, 플로리다, 워싱턴주 등 지역이 최근 2년새 실리콘밸리 못지 않게 첨단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도 엑소더스를 부채질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해도 지구상의 스마트 머니들이 몰려 드는 곳, 제2의 골드러시를 부른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가 순식간에 빛을 잃어간 결정적인 요인은 코로나다.

기술과 인재, 자본 등 세 가지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수월해 IT 기업들의 산실이자 메카로 자리 잡았으나 코로나를 계기로 기업과 인재, 자본이 썰물처럼 동시에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대거 빠져 나가고 거리에 인적이 끊긴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의 어두운 밤거리는 쇠락한 디트로이트를 연상시키고 있다.

도시의 쇠퇴는 부동산과 임대료 하락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 부동산 시세는 미국 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부동산 전문 사이트 점퍼(Zumper)에 따르면 방 한 칸짜리 아파트 평균 임대료는 2650달러. 텍사스 오스틴에서는 이보다 300달러가 싼 2350달러에 방 4칸짜리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 그러니 굳이 사무실 근처에 살면서 출퇴근 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살인적인 임대료를 피해 탈출하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엑소더스는 부동산 폭락으로 이어졌지만 떠나는 이들의 발목을 잡기엔 늦었다. 부동산 사이트 질로닷컴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시내 아파트 임대료는 지난해 3월 이후 9개월의 팬데믹 기간 중 14%가 떨어졌다. 점퍼닷컴에 따르면 임대료가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25개 도시 가운데 10개가 베이지역에 몰려 있다.

기업들이 빠져 나가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도 큰 파장을 미쳤다. 핀터레스트는 9000만 달러를 포기하면서까지 리스계약을 해지했고, 오픈도어도 520만 달러를 지불하고 조기에 리스를 종료했다. 3월부터 연말까지 팬데믹 9개월 동안 상업용 공실률은 8.3%로 이전에 비해 두 배가량 늘었다.

일각에서는 실리콘밸리가 제2의 디트로이트로 전락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벤 라네마는 "샌프란시스코,베이지역이 몰락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지나치게 과장된 견해"라고 말했다.그는 "여전히 많은 기업과 기술인력, 네트워크가 남아 있고, 렌트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여전히 도심지로 진출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고 덧붙였다.

한순간에 부와 명예를 쥘 수 있었던 곳이자 꿈의 도시 '에메랄드 시티' 로 가는 길이었던 옐로 브릭 로드(Yellow Brick Road) 실리콘밸리. 그러나, 이젠 가수 엘튼 존처럼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를 불러야 할 지도 모르겠다.

UPI뉴스 / 공완섭 재미언론인 wanseob.k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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