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 살처분 철회하라"…친환경농장 '건강한 닭'들의 반란

권라영 / 기사승인 : 2021-01-22 16: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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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방역 모범 산안마을 양계장 살처분 명령에 한달째 맞서
"사육 환경, 조건 등 고려하지 않는 획일적 살처분 명령 부당"
바이러스의 습격에 위기를 맞은 건 인류만이 아니다. 지금 농가의 닭과 오리들도 바이러스 확산에 떼죽음 당하는 중이다. 인간의 '살처분 행정명령'에 녀석들은 이유도 모른채 그렇게 무더기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서 살처분된 닭과 오리가 2000만 마리에 육박한다.

꼭 AI에 감염됐기 때문이 아니다. '발생농장 반경 3㎞ 이내'라는 당국의 명령은 건강한 조류의 삶도 무더기로 앗아간다. 당국으로선 AI 확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일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한 녀석들을 살처분해야 하는 농민의 가슴은 찢어진다. 분하고 억울해 행정명령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경기도 화성의 산안마을 친환경양계농장도 '반란'에 가담했다. 당국의 살처분 명령에 맞서 한달째 저항중이다. " 획일적 살처분 명령을 철회하라"는 것이다. 

산안마을 양계농장 종사자 유재호(39) 씨는 22일 UPI뉴스와의 통화에서 "AI의 최대 잠복기를 보통 3주로 보는데, (인근 농장에서 AI가 발생한 지) 4주가 지난 지금 우리 닭들은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서 무조건적 살처분 명령에 분통을 터뜨렸다.

▲ 경기 화성 산안마을에 있는 닭들. 계사 바닥은 볏짚, 왕겨, 톱밥, 흙, 숯가루 등 친환경 재료로 조성했다. [산안마을 제공]

산안마을 양계장은 3만7000여 마리의 닭을 사육하고 있는데 2015년 슬로푸드 농부상, 2017년 '동물복지형 방역선진화 농장에 선정된 바 있다. 동물복지형 농장은 동물보호법에 따라 충분한 자연환기와 햇빛 등 닭의 건강을 유지하고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육환경이 마련됐다고 인증된 곳으로 유 씨는 "기본적으로 건강하고, 어떤 병이 와도 이겨낼 수 있는 닭을 키우고자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안마을 양계장에 따르면 매일 하는 AI 간이키트 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오고 있으며 현재 주변 지역에서도 다른 AI발생은 없다고 한다.

살처분 명령은 AI 발생농장과 3㎞ 이내에서 사육되고 있는 동물 및 생산물에 대해 내려진다.

이는 2018년 12월 강화된 것으로, 그전까지는 500m 이내에만 적용해 왔다. 산안마을은 2014년과 2018년 두 차례 인근 농장에서 AI가 발생했지만, 800m 정도 떨어져 있어 살처분을 면했다. 당시 철저한 방역으로 닭들은 AI에 감염되지 않았으며 달걀도 정상적으로 출하됐다. 이번에 AI발생 농가와 산안마을 양계장은 1.6km 떨어져 있다.

산안마을 양계장은 계사 바닥을 볏짚, 왕겨, 톱밥, 흙, 숯가루 등을 섞어 조성했으며 사육닭 밀집도도 1평방미터 당 4.4마리 수준으로 동물복지농장 인증 기준인 9마리보다 훨씬 적다. 이 때문에 산안마을 양계장은 친환경 동물복지농장으로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유씨는 "달걀을 출하하지 못한 지 딱 한 달째다. 하루에 달걀이 2만 개씩 나오니 60만 개 정도가 나가지 못하고 쌓여있다"면서 "살처분을 하게 된다면 계란들도 다 같이 폐기해야 되는 것"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산안마을 양계장은 살처분에 따른 보상금도 받을 수 없는 상태다. 명령이 내려진 지 24시간이 지나면 보상금 90%가 삭감되기 때문이다.

경제적 압박도 만만치 않다. 유 씨는 "달걀이 못 나가고 있지만, 닭들은 생명이니 굶길 수가 없지 않냐"면서 "당연히 비용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들어오는 수입이 없으니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 산안마을에 출하되지 못한 달걀들이 쌓여 있다. [산안마을 제공]

닭들을 살처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AI는 매해 발생하는 상황"이라면서 "올해 살처분하고, 보상금 조금 받고, 다시 해보자고 해봤자 내년에 또 AI가 유행해서 저희나 옆 농가가 걸리게 되면 또 죽여야 한다"면서 일률적인 예방적 살처분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지침에 대해 "발생 당시에 위험도를 감안해서 지방가축방역심의회 결과에 따라 시·도지사가 살처분 및 그 생산물의 폐기를 축소하거나 제외하기로 농식품장관과 협의한 경우에는 그에 따른다는 예외 규정이 있다"면서 "지자체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닭들을) 살리고 말고 판단을 하면 누군가가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냥 살처분해버리면 비용이 들어가는 대신 관 입장에서는 판단을 안 해도 된다"면서 "여러 가지가 얽혀 있지만 저희는 행정의 획일성이나 편의성이 눈에 들어온다"고 개탄했다.

그는 또 "우리가 코로나19를 통해서 전염병에 대해서 국민적인 수준이 상당히 많이 높아졌다. 그러나 닭들에 대해서는 면역력과 전파력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 관련 연구도 별로 없고 시도도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사육 환경이나 방법, 조건등을 고려하지 않는 획일적인 살처분은 행정편의주의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유 씨는 지난 19일 올린 화성시 시민소통광장에 "산안마을에 내려진 예방적 살처분 명령에 재고를 부탁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SNS를 통해 이를 접한 누리꾼들은 "행정편의주의적인 행정"이라거나 "농가들 다 죽이자는 거냐"고 함께 분노했다.

이달 초에는 경기도를 상대로 살처분 명령 취소 행정심판을 청구했으며, 전날 도청 웹사이트의 '도지사에게 바란다'를 통해서도 민원을 제기했다. 그는 "이건 재난상황"이라면서 "조속하게 반응이 오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당국은 "산안마을만 예외를 두기 어렵다" "사안에 대해 회의중"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단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화성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달 말 성명을 내고 "예방적 살처분은 가축의 생명권 침해이며 지속가능한 친환경 축산에 대한 강력한 탄압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고재섭 상임이사는 "화성시는 산안마을 방역노하우를 배워 확산시키려 하지 않고 살처분이라는 극단적 처방을 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UPI뉴스 / 권라영 기자 ry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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