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검찰개혁, 목욕물 버리려다 애까지 버릴 판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03-03 14: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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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확실히 검찰개혁 완수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원혼을 달래주세요." 어느 친문 지지자가 한겨레의 검찰개혁 관련 기사에 남긴 댓글이다. 검찰 관련 기사엔 이런 종류의 댓글들이 많다. 그런 원한 때문에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들은 소수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는 6월까지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입법을 완료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 내 움직임은 갚아야 할 원한의 대상이 자꾸 늘어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검찰 수사권의 완전 폐지는 '중·장기적 과제'라고 했던 민주당이 왜 이렇게 달라진 걸까? 민주당의 윤호중 검찰개혁특위 위원장은 "(검찰 수사권 폐지를) 앞당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한 건 윤석열 총장이나 검찰이 해온 행태 때문"이라고 했다. 그 행태가 무엇이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일부 여권 의원 수사에 대한 보복이자 대응책이라고 보는 건 합리적 의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2월 24일 국회에서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이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의 속도 조절을 당부했다"고 말한 것에 대해 김태년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그런 뜻이 아닐 것이라며 집요하게 이의를 제기한 사건이 있었다.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사람을 면박주면서까지 이의를 제기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텔레비전을 통해 본 이 장면은 한 편의 '개그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책임윤리라고 하는 점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다르다. 집단으로 움직이는 국회의원들은 '책임감 분산'으로 인해 어떤 제도의 급격한 변화가 훗날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려가 단독 책임을 져야 하는 대통령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여당의 기본 생각은 같을망정 대통령이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데엔 이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는 것이다.

중수청 설치를 추진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움직이는 동력 중엔 친문 지지자들의 강한 요구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5선 이상민 의원은 "너무나 단순 무식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속도 조절을 요구했는데, 그는 이 발언으로 강성 지지층의 문자 폭탄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국가를 위해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그의 소신과 용기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의원은 "당내에도 수사청 설치법이 과속이라며 걱정하는 의원이 많다"며 "하지만 강성 당원들을 의식해 목소리를 내지 못 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른바 '친(親)조국' 성향 초·재선 의원들이 이 법을 밀어붙이는 데에 관해서도 "각자 생각은 다르겠지만, 강성 당원들의 요구가 워낙 커서 이에 따라 움직이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민주당 당원게시판에 "그동안 뭐한게 있다고 검찰 개혁에 속도 조절을 하냐"고 문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는 글들이 올라온 것도 그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럼에도 강성 당원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수사청 설치를 주도하는 의원들이 검찰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들로서 이해 당사자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해충돌의 소지가 다분한 이들이 "선진국 대부분이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 있다"며 사실 왜곡을 하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들이 강성 친문을 업고 힘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겠지만, 정부여당은 검찰개혁에 관한 한 신뢰를 잃은지 오래라는 점을 감안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칸타코리아의 신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정권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에 대해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당초 취지와 달라졌다'는 응답(57.5%)이 '당초 취지에 부합한다'는 의견(28%)의 약 2배였다. 여론은 바뀌기 마련이라는 점을 믿고 강행할 수도 있겠지만, 검찰개혁에 적극 동의하는 시민들도 목욕물 버리려다 애까지 버리는 것엔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역사가 바바라 터크먼의 다음 경고를 명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 "모든 성공한 혁명은 조만간 자신이 몰아냈던 폭군의 옷을 입는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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