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주장할 자격이 있을까

김광호 / 기사승인 : 2021-03-05 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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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권 박탈이 헌법정신과 법치 파괴라는 윤석열
수사권, 기소권 독점한 수십년 검찰의 흑역사엔 함구
헌법정신과 법치를 위한 것인가, 검찰 조직 이기주의인가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핵심은 권한 분산이다. 검찰이 다 쥐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이다. 검찰이 두 권한을 쥐고 남용하거나 멋대로 사건을 덮어버리는 짓을 못하게 하려는 시대적 여망이 바로 검찰개혁이다.

여권이 추진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 청)은 그런 흐름의 정점에 있다. 검찰에 남아 있는 6대 범죄 수사권을 중수청에 이관하고 검찰에 기소권만 남기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완판'(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한다)"이라고 비판하곤 다음날 사퇴했다.

사퇴의 변은 비장하고,거창했다.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 파괴"라고 했다. 헌법정신과 법치를 지키기 위해 '옷'벗고 문재인 정부와 한판 붙어보자는 선전포고였다. 여당에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중수청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은 가능하고, 중수청의 필요성에도 논란이 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과연 윤 전 총장의 주장처럼 검찰 수사권 박탈이 헌법정신과 법치의 파괴인가. 윤 전 총장이 헌법정신과 법치의 수호자 행세를 할 자격이 있는가.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쥐고 있던 지난 수십년의 검찰 역사에서 헌법정신과 법치가 바로 섰어야 했다. 그러나 모두가 익히 아는대로 검찰 역사는 정반대다. 수사권,기소권을 모두 쥔 '검찰 공화국'에서 헌법정신과 법치는 물구나무섰다. 검찰이 사건을 날조, 축소, 은폐하는 일이 허다했던 게 우리 검찰의 역사라는 건 새삼 논할 필요조차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 지난 4일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검찰청을 떠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과거 용공조작 사건 등 숱한 날조 사건까지 열거할 것 없다. 최근 수년 동안에도 사례는 적잖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 성뇌물 사건을 축소 은폐했고, 검사 룸살롱 접대 사건은 기상천외한 '산수'로 어물쩍 넘어갔다. 한명숙 총리 뇌물 수사과정의 검찰 비위 의혹은 공소시효가 임박하도록 배당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쥐고 있을 때 벌어진 일들이다. 그런데도 헌법정신과 법치를 독점한듯 행세하는 윤 전 총장은 이런 검찰 허물에 명명백백히 규명하기는 커녕 제대로 대응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뭉갰다. 집요하게 먼지털이 수사를 즐기는 검찰이 자기 허물에 대해선 어찌 그리 게으르고 뻔뻔한가.

윤 전 총장과 검찰의 주장처럼 수사·기소 분리가 반부패 수사 역량을 약화시켜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파괴할 것이란 주장도 그래서 의문스럽다.

검찰개혁의 마침표로 중수청법을 추진 중인 여당이 수사와 기소 분리의 모범 사례로 드는 건 영국이다. 과거 영국 경찰은 우리 검찰처럼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졌는데, 남용의 폐해가 컸다. 결국 1985년 왕립 검찰청이 신설돼 단계적으로 기소 업무를 떼갔다. 이후 1988년 세워진 중대비리조사청(SFO)이 반부패범죄 업무를 전담하면서 현재의 구도가 완성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의 핵심이 권한분산인 만큼 영국처럼 별도 기관을 만들어 검찰에 남아있는 6대 범죄 수사권도 넘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은 영국 사례는 수사·기소 분리가 아닌 융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정반대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반부패 업무를 맡은 영국 중대비리조사청에서도 검사들이 수사와 기소, 공판까지 한다며 나날이 지능화,조직화하는 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검찰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상당수 국가에서 중대 범죄에 한해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행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주로 경찰이 수사를 담당하지만, 검찰의 직접 수사도 일부 가능하다. 법률상 미국 연방검사장은 간첩·테러 범죄나 공무원 범죄, 주요 경제 범죄를 담당하면서 수사기관에 수사 개시 지시를 하거나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다.

일본은 도쿄·오사카·나고야 3개 지검에 설치된 특별수사부와 나머지 10개 지검에 설치된 특별형사부에서 주요 범죄를 직접 수사하고 기소한다. 한국 검찰 특수부의 역할 모형으로 꼽혔던 도쿄지검 특수부에서는 부패 사건과 기업 범죄를 전담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공직비리와 경제사범 등 중대범죄는 '중점검찰청'에서 수사 초기부터 검찰이 직접 수사한다. 일각에선 '중점검찰청'에 자체 수사인력은 없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경찰을 지휘할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학계에서도 해외 선례를 놓고 주장이 엇갈린다. 검찰개혁론자인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청 연구용역 보고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수사·기소 분리 모델 설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 연구'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권적 체계가 세계 보편적 형사사법체계"라고 밝혔다.

서 교수는 "영미법계 국가(미국·영국)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준별해 기소기관인 검찰은 공소유지에 전념하고, 대륙법계 국가(독일·프랑스)는 검찰에게 법률상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이 인정되지만 자체 수사력을 두고 있지 않아 개별 사건을 직접 수사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반면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UPI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권에서 영미권의 경우 검찰이 직접 수사를 전혀 못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분명한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또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법도 오랜시간 논의가 걸렸는데, 중수청법은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검찰의 수사가 현 정권을 향하던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나온 측면이 있다"면서 "시간적으로도 충분한 검토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 지난 4일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꽃다발을 안아들고 대검찰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이처럼 정치권은 물론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지만 분명한 사실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쥐고 있던 '검찰 공화국'에서 헌법정신이 짓밟히고 법치가 훼손되어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수사권·기소권 분리'는 아직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이란 점이다.

주지하듯 '검찰 개혁'이란 시대적 여망은 검찰 스스로 만든 것이다. 그 배경에 검찰의 흑역사가 똬리틀고 있다. 그런데 그 원인을 제공한 검찰이 극렬하게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형국이다. 헌법정신과 법치를 위한 것인가, 검찰 기득권을 지키려는 조직 이기주의인가. 검찰 스스로 깊이 자문해봐야 할 시점이다.


UPI뉴스 / 김광호 기자 kh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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