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법정화폐' 실험, 성공 가능성 있나

강혜영 / 기사승인 : 2021-06-11 17: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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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80년대 30% 넘는 인플레 겪고 2001년부터 달러 사용
"달러라이제이션으로 이미 통화주권 포기…비트코인 대안 될 수도"
높은 가격 변동성·한정된 유동성·불법자금 활용 가능성 등 우려도
가상자산인 비트코인이 과연 국가가 인정하는 '돈'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중남미 국가 엘살바도르가 이 같은 실험에 나서면서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엘살바도르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2001년부터 자국 화폐인 콜론(Colon) 대신 미 달러를 사용하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이 진행된 국가이다. 따라서 미국 통화정책에 의존적인 상황이다. 이 같이 특수한 경우에는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비트코인이 결제 수단으로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화폐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가격 안정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 화폐 가치가 급등락하면 지불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하는데, 비트코인은 이런 측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또 비트코인의 유통을 정부가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 자금 세탁 등 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될 염려도 제기된다.

▲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비트코인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 트위터 캡처]


"엘살바도르의 경제 사정 감안하면 고개 끄덕여져"

엘살바도르는 전 세계 국가 중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했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지난 5일 미국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1 콘퍼런스'에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하겠다는 구상을 밝혔고, 지난 8일 밤 여당이 장악한 엘살바도르 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총 84명 중 62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법안에 따르면 엘살바도르는 가상자산인 비트코인을 제2의 법정통화로 채택함에 따라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앞으로 비트코인으로 세금을 내고 물건값을 치를 수 있게 된다.


엘살바도르가 이런 선택을 한 배경으로는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이 꼽힌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엘살바도르는 1980년대에 30%가 넘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2001년 이후로는 6%대에서 -0%대 사이를 등락하고 있다.

이처럼 극심한 인플레이션 탓에 자국 화폐인 콜론(Colon)의 가치가 너무 떨어져 법정화폐로 작동하기 힘들어지자 엘살바도르느는 2001년 달러라이제이션을 실행, 콜론 대신 미국 달러화를 법정화폐로 채택했다.

엘살바도르는 달러라이제이션 덕에 통화 안정성은 확보할 수 있었지만,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자국 통화에 대한 독립적인 통화 정책을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미국이 역대급 양적완화를 추진하면서 달러 공급이 크게 늘어난 것에 의한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포브스는 "연준의 특별 조치로 미국 금융기관, 주식시장 및 여러 경제 분야에 현금이 공급됐지만 엘살바도르 은행은 연준으로부터 달러를 공급받지 못했다"면서 "미국 통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엘살바도르의 구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 엘살바도르의 인플레이션 추이 [세계은행 홈페이지 캡처]

이처럼 엘살바도르가 처한 거시경제적 상황을 감안할 때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시도는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베네수엘라의 경우에는 일부 상점에서 비트코인과 석유에 연동된 페트로코인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의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그 대안으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엘살바도르는 어차피 달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통화 주권 포기라는 문제가 없다"면서 "그 나라 사정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소 소장도 "긍정적인 시도"라면서 "기본적으로 금본위제로 돌아간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달러와 비트코인 간의 환율 변동이 발생하겠지만 달러에 의존하던 엘살바도르의 거시경제 독립성 측면을 고려한 결정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비트코인의 사용은 전형적인 현금 경제 사회인 엘살바도르의 송금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CNBC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국민의 70% 가량이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있지 않고 현금을 사용한다. 또 엘살바도르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을 해외 거주 노동자들의 본국 송금액이 차지하고 있는데 송금 수수료가 10%에 달한다.

부켈레 대통령은 "현재 (송금액 중)상당 부분이 수수료로 손실되고 있다"며 "비트코인을 사용하면 백만 명 이상의 저소득층 가정이 받는 금액이 매년 수십억 달러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높은 가격 변동성·불법거래 
활용 가능성 우려

그러나 비트코인이 안정적인 법정화폐로 안착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화폐는 가치저장, 결제, 교환 등의 기능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데 비트코인은 결제는 가능하지만 안정적인 가치저장의 기능은 약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개당 6만4000달러대까지 올랐던 비트코인은 5월 들어 3만 달러 선까지 하락하는 등 가격 변동성이 극심해 안정적인 가치저장이 힘든 상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워낙 높기 때문에 화폐로서 안정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있어 한계가 있다"며 "기본적으로 자국 통화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있기 때문에 대안으로 어쩔 수 없이 비트코인을 지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4월 "가상화폐가 지급 수단으로 사용되는 데는 제약이 아주 많다"며 "내재 가치가 없고 지급 수단으로 쓰이는 데 제약이 크다는 건 팩트"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상 가치의 적정 수준을, 적정 가격을 산정하기가 대단히 어렵고 가격의 변동성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 엘살바도르 의회를 통과한 비트코인 법안의 내용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 트위터 캡처]


비트코인의 유동성이 한정돼 있는 점 역시 통화 정책 운용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비트코인은 총 발행량이 2100만 개로 한정돼 있으며, 이미 1900만 개 이상 채굴된 상태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나 이번 코로나19 등 위기 상황에서 통화 당국이 돈을 찍어내서 국민들에게 도움을 준다"면서 "비트코인을 최초로 만든 사람은 통화당국에 휘둘리지 않게끔 설계한 것이지만, 공급량이 제한 돼 있어 큰 경제적 충격이 왔을 때 통화량을 늘림으로써 대응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중앙은행은 금융위기나 금융회사의 부실화 등이 벌어졌을 때 돈을 찍어내서 그 돈으로 금융회사를 살리는 최종 대부자 기능을 한다"면서 "비트코인은 민간 발행 통화이다 보니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엘살바도르 국민 중 비트코인에 실제로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 70%가 은행 계좌조차 없는 상황에서 비트코인의 활용도가 높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비트코인이 자금 세탁 등 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도 높다.

김정식 교수는 "달러라이제션이 미 통화정책에 의존성이 높다는 단점이 있지만,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엘살바도르 입장에서는 더 낫다"면서 "비트코인이 가상의 공간에서 익명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정부가 파악할 수 없어 탈세 등 불법거래에 사용될 수 있으며 각국의 규제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결제은행(BIS) 산하의 바젤 은행감독위원회도 "가상자산의 법제화가 자금세탁위험, 신용 하락, 채무불이행 등 다양한 재무적 위험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우려를 표명했다.

게리 라이스 국제통화기금(IMF) 대변인 역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하는 것은 많은 거시경제·금융·법적 이슈를 제기한다"면서 "일반적으로 가상자산은 중대한 리스크를 발생시킬 수 있고, 암호자산을 다룰 때는 효율적인 규제조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UPI뉴스 / 강혜영 기자 kh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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