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김용택 "우리는 너무 오래 같은 문법으로 살아왔다"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06-18 11: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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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펴낸 김용택 시인
달라진 서정의 결, 간결하고 더 깊어진 시편들
나비가 상징하는 아름다움과 조화, 그 속의 자유
"정체에서 벗어나 변화하려는 의지 필요한 시대"

'섬진강 시인' 김용택(73) 새 시집에는 나비가 날아다닌다. 열세 번째 시집이지만 다시 등단하는 것처럼 설렌다는 그에게 '나비'는 새로 발견한 시의 상징이다. '정지' 상태에서 풀려나 나비처럼 독립적이고 조화로운 '고요' 속을 넘나들며 자신이 '믿을 수 있는' 49편만 정선해 묶어냈다는 새 시집은 표제도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문학과지성사)다.

▲5년 만에 새 시집을 펴낸 김용택 시인. 그는 "스스로 믿을 만한 시들만 엄선해 출판사에 보낸 뒤 갑갑한 심정에서 해방된 후련함을 느꼈다"면서 "다시 등단하는 것처럼 설렌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교회당 종소리가 다섯 번째 울리면/ 나는 사과밭으로 달려갈 거예요/ 그 종소리가 끝나기 전에/ 사과밭 셋째 줄 여섯 번째 나무 아래 서 있을래요/ 오세요/ 종을 여섯 번만 치고/ 그 종소리가 끝나기 전에// 나비는 얼마나 먼 데서 달려오다가 날개를 달고 날아올랐을까요"('나비가 날아오르는 시간')

 

나비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감을 잡기 전에는 금방 해득하기는 어려운 시편이다. 교회당 종소리와 그 종소리의 횟수와 사과밭과 나비가 무슨 상관인가. 나비가 연인이고, 사랑이라면 그때부터 느낌은 아연 달라진다. 종소리와 그 횟수를 신호 삼아 사과꽃 향기 분분한 특정 나무 아래서 그 사람을 만나기로 한 맹서가 가슴을 뛰게 한다. 숨 가쁘게 만나서 그들은 종소리처럼 날아올랐다. 시인은 "사랑은 날아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화로 만난 그는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섬진강변 진메마을 집 창가에 나비가 날고 있다고 전했다.

 

▲ 김용택 시인의 '나비가 날아오르는 시간' 관련 영상 [UPI뉴스 유튜브]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서 우리는 얼마나 달려갑니까. 달려가 사랑을 만나서 종소리로 날아올라가는 거지요. 사랑은 만나는 동시에 날아오르는 거잖아요. 멀리 높이 날아올라가는 거. 숨 가쁘게 달려가서 만나고, 만나는 순간, 눈을 바라보는 순간, 손을 잡은 순간, 안는 순간, 날아오르는 거, 그런 거지요."

 

"속 날개가/ 날려요/ 눈 감았지요/ 어디서 본 듯/ 처음이네요/ 나는 먼 데서 왔어요/ 안아주세요/ 입 맞추어주세요/ 눈 떠 나를 봐요/ 나를 바라봐요/ 숨이 멎을 것 같아요/ 나는 속 날개를 접고/ 두 눈이 감겼답니다"('이 詩를 드려요')

 

종소리를 신호로 사과밭으로 달려온 나비가 사랑을 만나 속삭이는 것처럼 읽히는 시편이다. 날리는 속 날개의 섬세한 떨림, 눈을 감고 먼 데서 달려온 숨을 고르며 간곡하게 사랑을 말하는 시의 화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나비로 읽힐 법하다. 그 나비는 제목 '이 詩를 드려요'를 상기하면 시 자체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게 속 날개 떨리는 사랑처럼 섬세하고 숨이 멎을 것 같은 대상이 시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 동네에 나비가 굉장히 많아요. 시골에 살면서 나비를 자세히 보는데, 나비가 날아가서 짝을 찾고 만나서 헤어지고 그런 것들이 보통 섬세한 게 아닙니다. 사랑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특히 시는 얼마나 섬세하고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하는지, 우리들의 삶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연애라는 걸로 표현한 거지요. 연애라는 건 어마어마한 시이고 말인데, 연애에서 말이란 어마어마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어요."

 

김용택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비는 바람을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 바람을 일으켜서 자기 바람으로 날아간다"면서 "어디에도 기대지 않는 이런 독립된 태도는 시인에게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비는 엄연하게 독립돼 있는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 다른 것들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면서 "아름다운 것들은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이지 않고 그 자체로 독립돼 있으면서도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조화로움을 지닌다"고 말했다. 그는 "그 조화로움 속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바로 그것이 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이즈음 들어 새롭게 다가오는 '시'라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 자체를 새롭게 받아들이고 공경하고 모시는 시들도 눈에 띈다. 이를테면 그에게는 "별들의 사이에서 태어나 강을 건너온 흰나비가/ 우리 집 마당 붉은 모란꽃이 되는 게, 시"('너와 상관있는 말')이기도 하다. 우주의 설명할 길 없는 신비한 섭리가 시이기도 한 것이다. 

 

"또 운다 또 운다 저쪽이 그쪽에게 이편으로 운다/ 새벽에는 개구리 우는 지점이 분명치 않다/ 바람을 따라다니기도 한다/ 어둠이 약간 줄어들었다/ 개구리 우는 소리의 실마리를 잡았다/ 끝이 희다/ 음이 악이 되어 빗줄기를 감고 풀었다가 저편으로 바람이 분다/ 고개 돌려, 개굴개굴 또 개애굴 도리 없는/ 봄이다"('도리 없는 고양이의 봄')

 

섬진강의 자연을 시로 받아 적어온 김용택의 서정은 이번 시집에서는 더 간결하고 깊어졌다. 소리가 바람을 타고 봄을 알리는 이 풍경은 도리 없는 절창이다. 사랑으로 현현한 나비가 죽은 지아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이 시편은 어떤가.

 

"보통날, 어머니는 나비를/ 나비라고 불렀지만/ 그해 봄, 봄 나비는/ 봄 나부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보리밭에 나가/ 나부야 나부야 봄 나부야/ 강을 건너오니라/ 강을 건너/ 보리밭 윗머리로 날아올라/ 장다리꽃에 앉으라고/ 나부가 나비가 될 때까지/ 나부라고 나비를 불렀습니다."('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봄, 그러니까 1985년')

 

'나부'는 나비의 방언이다. 시인의 아버지가 작고한 뒤 강 건너에서 어머니랑 밭에 같이 앉아 있는데 어머니가 계속 '나부야'를 읊조리더라고 했다. 아버지랑 항상 같이 일하던 보리밭 장다리꽃으로 강을 건너 날아오라고. 죽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애달픈 심정이 눅진하게 스며드는 시편이다. 부르고 불러서 올 수만 있다면, 만날 수만 있다면, 백번 천번이고 왜 부르지 못할까.

 

"잘 왔다/ 어제와 이어진/ 이 길 위에/ 검은 바위, 어린나무만이 나비를/ 숨겨둔다/ 해야 바람아 흰 구름 떼야/ 내 자리를 찾아온 여러 날이 오늘이다/ 알 수는 없지만/ 어느, 고요에서 태어난 바람이 온다면/ 가벼이 날아오를 수 있다/ 기다려라 마음이 간 곳으로 손이 간다/ 검은 바위, 어린나무만이 나비를/ 숨겨둔다"('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그는 '어느 고요에서 태어난 바람이 온다면' 날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가 생각하는 '고요'는 "정지된 게 아니라 살아 있다"고 했다. 나비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고요 속에서 날아가는 모습을 보곤 했다. 그는 고요를 좋아해서 늘 걸어가다가 고요 속으로 한 발을 디뎌 넣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럴 때 그는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에게 '고요'는 "만물을 지워버리기도 하고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전국 곳곳 군 단위 도서관까지 인기 강연자로 누비던 그도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2년 간 꼼짝없이 갇혀 지내야 했다. 심심하다 보니 옛날에 좋았던 것들이 새롭게 보였다. 심심해서 그동안 오랫동안 시적 대상으로 삼았던 주변 자연을 새삼스럽게 다시 들여다본 것인데, 사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보였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로 인해 갇혀 있던 시간은 '창조의 시간'이었다"면서 "사람들이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이후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섬진강 '진메마을'  느티나무 아래 김용택 시인. 50여 년 전 심었던 어린 나무가 저리 자라는 동안 그는 주변 자연의 말을 시로 받아적어 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김용택은 시집 뒤표지에 "이튿날이 없는 이별이, 시다/ 말해 무엇하리"라면서 " 나의 고요는 살아있다/ 말들아 뛰어다녀라/ 나는 정지에서 풀려났다"고 썼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혼신을 다 쏟아부어야 하는 대상이 시라는 것이고, 이제 새로운 단계로 비약해 '정지' 상태에서 풀려났다고 선언한 것이다. 실제로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이전 시들과는 결이 많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번 시집은 원고를 보내놓고 나니까 뭔가 갑갑한 것으로부터 빠져나온 듯 후련했다"면서 "어떻게 보면 우리 시대와도 연관이 있는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시대는 너무 오래 같은 문법으로 살아온 것 같다"면서 "그렇다고 지난날 잘못 살았다는 건 아니지만 뭔가 변화해야 하는데, 멈춰 있는 상태에서 풀려난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시집을 내면서 새로 등단하는 것 같은 조심스러움, 설렘, 신비로움도 있었다"면서 "아, 이제 내가 시를 조금 알고 쓰는가 싶었다"고 했다. 40년째 시를 써온 그가 조금 알 것 같은 그 시란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그는 "인간들의 삶을 정지 상태에서 풀어주는 것, 나비처럼 날아오르는 것, 그것이 시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고 했다. 그는 나비처럼 날아올라, 슬픔이 가득 찰 때까지 눈을 감지 않는 아침 별들을 본다. 

 

"우리 집 서쪽 하늘로 달이 가고 있다 그 속에, 별도 데려간다 별들은 하늘에서, 어느 날은 다르고 어느 날은 또 다르다 나는 그 다른 날들의 별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추억해내 행복해하고, 무엇인가를 기억해내놓고 개구리처럼 멀리 뛰며 괴로워한다 생각해보면 별이 없었던 하늘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마음을 달래 별 아래 놓아둔다 아침 별들은 슬픔이 가득 찰 때까지 눈을 감지 않는다"('아침 별')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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