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배은망덕' 집착하는 부족주의 극복못하는 민주당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07-14 1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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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입당을 미루면서 진보와 탈진보까지도, 중원을 향해 갈 것처럼 얘기해왔는데 정치선언 이후를 보면 중원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게 실망스럽다. 정치선언도 통합 얘기는 없고 분노만 표출된 것이다."

지난 13일 여권 원로인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한 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분노를 표출하더라도 통합의 메시지를 곁들이면서 통합을 위한 분노임을 분명히 했어야 했는데, 그게 없었다.

유 전 의원의 말은 매우 생산적이며 윤 전 총장의 성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판이라는 점에서 환영한다. 분노의 담론은 수긍하지 못하는 쪽의 분노를 불러옴으로써 증폭되기 마련이지만, 통합의 담론은 더 나은 통합을 위한 아이디어 경쟁을 유도한다. 통합 대신 분열의 담론을 택하는 것의 위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분노만 표출하는 것 이외에도 정치권의 비판 문화에서 사라져야 할 유형의 비판이 많지만, 나는 공적 관계를 사적 관계로 오인하는 부족주의적 비판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정치는 물론 사회 전반의 대표적인 고질병이 공사 구분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간 외쳐진 검찰개혁의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도 검찰의 부족주의 문화를 청산하자는 게 아니었나. 그렇다면 검찰개혁을 신앙처럼 여겨온 문재인 정권이 제발 스스로 부족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애써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비판은 상호작용인데, 부족주의적 비판은 상대편의 비판 수준도 낮추기 마련이며, 이는 비판의 전반적인 질적 하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부족주의란 원시시대의 부족사회를 지배하던 '부족의, 부족에 의한, 부족을 위한' 사고방식을 말한다. 한 부족이 다른 부족들과의 전쟁이나 갈등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의 부족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필요했다. 세상이 발달하면서 부족사회나 부족국가는 사라졌지만, 그런 '부족 본능'은 살아남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부족을 만들어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마피아 집단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의리는 아름답다. 물론 사적 영역에서만 그렇다. 공직자가 공적 영역에서 사적 의리를 앞세우는 생각과 행동을 해선 안 된다. 우리는 부족사회나 부족국가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족 본능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한다. 혈연, 지연, 학연은 말할 것도 없고 부족화된 각종 이념공동체나 이익공동체의 소속감이 공사 구분의 경계를 넘어서라고 집요하게 꼬드긴다.

문 정권은 그런 부족주의와의 거리두기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덧 민주당의 본질처럼 돼 버린 내로남불은 부족주의의 당연한 귀결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과도한 '코드 인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정권 들어서 유난히 '도리', '은혜', '의리', '배신', 변절'이란 단어들이 난무하는 것도 그걸 방증해준다. 최근의 윤석열·최재형 논란과 관련된, 민주당 인사들의 '배은망덕론'을 좀 감상해보자.

김병기 의원은 "물먹고 변방에서 소일하던 윤 검사를 파격적으로 발탁한 분이 대통령이다. 윤 총장이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대통령께는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고, 인간적인 도리도 다해야 한다"고 했다. 노웅래 최고위원은 "오랫동안 한직에 밀려있던 사람을 갖은 반대를 무릅쓰고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는데 은인(문재인 대통령) 등에 칼을 꽂은 배은망덕하고 뻔뻔한 사람"이라고 했다.

송영길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일종의 발탁 은혜를 입었는데, 이를 배신하고 야당의 대선후보가 된다는 것은 도의상 맞지 않는 일"이라며 '배신자 필패론'을 주장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대통령의 신임마저 저버린 배은망덕한 행위를 한 윤석열 총장은 역사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고 했고, 윤건영 의원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나. 배신하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알겠나"라고 했으며, 정청래 의원은 "바야흐로 배신의 계절인가? 한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하게 돼 있고 누군가 배신의 길을 열면 우르르 따라쟁이가 줄을 선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을 향해 검찰 조직의 내부 의리에만 매몰된 '조폭'이라는 맹공을 퍼부었던 여당이 왜 이렇게 '윤석열 따라쟁이' 노릇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문 정권의 '비밀'을 폭로해준 가치는 있다. 여태까지 문 정권의 인사가 그런 부족주의적 정서로 이루어졌다는 걸 시사해준 게 아닐까? 문 정권에서 야당 동의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인사가 31명으로 노무현 정권 3명, 이명박 정권 17명, 박근혜 정권 10명 등 도합 30명을 넘어선 대기록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부족주의의 결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부족주의 정서는 의외로 많은 국민들도 공유하고 있는 것인 바, 문 정권의 그런 대처법이 꼭 어리석다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 '부족 정권'이나 '부족 정당'임을 인정해서 좋을 게 무엇이란 말인가? 혹 윤 전 총장과 최 전 감사원장을 공격할 다른 레퍼토리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면, 이런 사태 역시 부족주의적 국정운영으로 인해 빚어진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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