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 말고 대충 쏴" 안산, 그에게 반하다

이원영 / 기사승인 : 2021-08-01 11: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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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발로 승부를 결정지어야 할 순간, 그의 표정은 신비로웠다. 어떻게 그런 물결 하나 없는 잔잔한 호수의 모습일 수 있을까.

그의 흐트러짐 없는 눈빛, 실룩거림 없는 얼굴에서 마지막 한 발은 그의 마음이 닿은 곳에 그대로 날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10점 퍼펙트. 상대는 흔들렸고, 올림픽 3관왕의 금자탑을 쌓는 순간이었다.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스무살 안산 선수 얘기다. 그의 슛오프(무승부 상황에서 한 발로 결정짓는 승부) 장면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침착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에 반했을 것이다.

안산 선수는 도쿄 올림픽 양궁 3관왕을 차지한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다.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둔 상황에서 심정이 어땠냐고. "쫄지 말고 대충 쏴" 스스로 이런 주문을 했단다. 하, 이번 올림픽에서 나온 최고의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런 장면에서 예상되는 발언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오직 과녁만 보였어요" "온 마음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뭐 이런 말이었을 텐데.

물론 안산 선수가 될 대로 되라 식으로 '대충' 쏘았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말한 '대충'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그물에서 벗어나자는 의미였을 것이다. 과거 선배들이 필사적으로 승부에 매달렸다면 요즘 세대들은 경기를 즐긴다는 해석과도 맞아 떨어지는 말일 것이다.     

홍대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한 후배는 요즘 코로나 상황에서 고민이 크다. 저녁 손님이 위주인데 거의 공치는 나날이다. 배달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가 안산 선수 3관왕의 소감을 페이스북에 이렇게 남겼다. "쫄지말고 대충 쏘자" 가훈 삼아야겠다. #안산신공 #뭉게지말고대충쓰자 #용쓰지말고대충팔자 #힘주지말고대충살자. 안산 선수의 그 말 한마디가 후배에게 큰 힘이 되었음은 불문가지.

'쫄다'는 아직 표준어로 대접을 못 받아 사전엔 없다. 표준어인 '졸다'가 센 발음으로 흔히 통용되는 말이다. 사전에는 '찌개, 국, 한약 따위의 물이 증발하여 분량이 적어지다' '(속되게) 위협적이거나 압도하는 대상 앞에서 겁을 먹거나 기를 펴지 못하다'로 설명되어 있다. 

두 번째 뜻풀이를 보니 '졸다'보다는 '쫄다'로 발음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속어인 줄 알고 있었는지 안산 선수는 "이런 말을 해도 되는 지 모르겠지만"이라면서 그 명언을 탄생시켰다.

그렇다. 사람이 쫄다보면 하고 싶은 걸 할 수가 없다. 쫄면 눈치 봐야지, 겁먹어야지, 아부해야지, 비겁해야지, 거짓말해야지, 결국 당당한 자기가 아닌 거짓 자기로 표현된다. 자기 비하, 체념, 존재감의 상실을 맛볼 수밖에 없다. 쫄면서 사는 삶이란 그만큼 자기를 상실하고 사는 삶이 아닐까.

지금 세상이 어떤가. 쫄지 않고는 도대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돈에 쫄고, 권력에 쫄고, 갑질에 쫄고…게다가 코로나라는 정체불명의 공포에 쫄고.

움츠린 어깨, 쫄아든 가슴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요즘 세상 사람들에게 안산 선수의 한마디는 어느 철학자의 명언보다도 더 실감적이다. 그것도 세상살이에 막 나온 스무살 청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안산 선수가 스스로 쫄지 말자고 주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철저한 훈련으로 내공을 쌓은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넌 충분히 자격 있으니) 쫄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대충 쏴, 그랬을 것이다.  

자기 분수도 모르고 무모하게 행동하는 것을 비유해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 한다. 사마귀 한 마리가 앞다리를 번쩍 들고 수레 바퀴를 막는 형국을 비유한 말이다. 

알맹이 없는 맹탕이 '쫄지 말자'고 외친다면 당랑거철일 수밖에. 실력을 쌓고 준비를 한다면 나도, 우리 가족도, 우리회사도, 우리나라도 누구 눈치보며 쫄 이유가 없지 않겠나. 쫄지 않고 진짜 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안산 선수는 웅숭한 물음을 우리에게 던졌다.   

▲ 이원영 국제 에디터


U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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