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러 갔다가 '기쁨조' 체험…미대생이 '접대부'인가요?

조성아 / 기사승인 : 2021-09-15 07: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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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졸업생들의 제보…"논문 지도 받으려면 와인 사 들고 가야"
교수 전화 허리 70도 굽혀 받는 조교도…"교수님 딸랑이 노릇"
최근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가 위력으로 학생들에 성관계를 요구하고, 학생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폭로가 나와 큰 파문이 일었다. 이런 게 비단 홍익대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서울 소재 미대를 졸업한 K 씨와 L 씨는 "미술업계에서는 비슷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며 경험담을 UPI뉴스에 제보했다.

▲ 홍익대 미대 A 교수의 성희롱 사태에 대해 홍익대 미대 학생회 등이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 파문이 일었다. 홍익대 전경. [이준엽 기자]

홍익대 미대 학생회 등 17개 단체가 모인 '홍익대 미대 인권유린 A 교수 파면을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대 A 교수에 대한 조속한 파면 및 피해자 보호조치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A 교수는 학생들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고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A 교수는 여학생들을 상대로 "(텔레그램) n번방으로 돈 많이 벌었을 것 같다", "너랑 나랑 언젠가는 성관계를 하게 될 것 같으니 날짜를 잡자"는 등 성희롱성 발언을 수차례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남학생들에겐 "게이 같다", "자위한 것 아니냐"는 등 수업 중 공개적으로 성적 모멸감을 준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한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학생들을 압박하고 신고할 생각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 홍익대에 붙어있는 A 교수 파면을 요구하는 대자보. [이준엽 기자]

홍대 미대를 졸업하고 현재 미술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K 씨는 기자에게 "이번 사태가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며 자신이 겪었던 비슷한 경험담을 전했다. K 씨는 "떠올리기 힘든 일이다. 그동안 친한 친구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다. 부모님도 전혀 모르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3년 전 K 씨는 학창시절 지도교수였던 B 씨를 따라 미술업계 관계자들과의 저녁식사 겸 술자리에 동행했다고 한다. 평소 B 씨가 종종 '내가 너 앞길을 탄탄히 만들어 주겠다. 나만 믿고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했던 말이 은근한 압박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K 씨는 "평소 B 교수의 술버릇이 좋은 편이 아닌 걸 알았기에 술자리까지 따라가고 싶지 않았지만 미술업계에 인맥이 많던 교수의 말을 거절하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일은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벌어졌다. 취기가 오른 B 교수는 옆 자리에 앉아있던 K 씨의 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당시 3~4 명이 술자리에 함께 있었지만 다들 취한 데다, B 교수의 평소 추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K 씨가 손을 바로 뿌리치지 못하고 있자 그는 이어서 무릎과 허벅지를 더듬었다. 그러면서 귓가에 대고 "이따 나랑 따로 한 잔 더 하자"며, 마치 '잠자리'를 요구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고 한다.

K 씨는 "그때 자리를 박차고 바로 일어서지 못했던 게 두고두고 한이 된다. 그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밤잠을 설친다"고 말했다. K 씨는 술자리에서 파하자마자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다음날 교수에게서 "어제 기분 나빴냐. 그 정도는 그냥 애교로 받아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문자가 날아왔다.

K 씨는 "당시 미대를 졸업하고 개인 과외 말고는 마땅한 수입도 없었던 터라 혹시나 교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 그 자리에 나갔던 게 바보 같았다"고 전했다.

K 씨는 "미술업계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비단 특정 교수 한 명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K 씨는 "미술계는 상당부분이 인맥으로 인해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교수의 말이나 평가가 미술계에서 적잖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다소 무리한 요구나 부탁을 받아도 거절하기 힘들다. 나 말고도 비슷한 일을 경험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교수를 비롯해 미술업계 권력자들 중엔 그릇된 성의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릇된 성의식 가진 교수들 많아"

또 다른 서울 소재 미대를 졸업한 L 씨도 미술업계의 심각한 권위 의식에 대해 전했다. L 씨는 "C 대 미대에 있던 사람은 교수님을 상전처럼 모신다. C 대 미대는 교수들의 입김이 강하기 때문에 전시 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교수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C 대 조교가 일하는 것을 봤는데, 교수의 전화를 받으면서 70도로 허리를 숙이더라"고 말했다. L 씨는 "모 교수에게 논문지도를 받으려면 교수 작업실에 와인을 사들고 가야한다. 논문지도에 왜 술이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D 대 미대의 경우엔 납득하기 어려운 문화가 있다고 한다. 이 학교는 대학원생들이 교수를 '모시고' 함께 MT를 가는데, MT를 가서 벌어지는 일이 어이가 없다고 한다. 이 학교를 졸업한 L 씨는 "최근엔 코로나19로 달라졌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MT 가서 대학원생들이 한다는 일이 교수들의 비위 맞춰주고 마치 노예처럼 수발을 드는 것이었다. 여학생들이 단체로 '사랑의 배터리' 같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교수님들의 딸랑이'가 돼 교수들을 즐겁게 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비단 교수 뿐 아니라 일부 갤러리 관장들도 그 '지위'를 이용해 데뷔를 원하는 미술학도들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L 씨는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들려줬다.

5년 전 L 씨는 대학 졸업 후 한 갤러리에서 연락을 받았다. 갤러리 전시를 지원해주겠다는 거였다. L 씨는 무료로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전시에 참여했다. 일은 전시 준비를 마친 후 가진 오프닝 회식 겸 술자리에서 시작됐다.

L 씨는 "갤러리 관장이 본인을 비롯한 스태프들, 함께 참여한 신진작가들이 모여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인맥을 쌓는 자리라고 했다. 다른 작가들도 다 나온다니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갤러리 관장은 술자리에서 '내가 너희에게 기회를 줘서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하는 것'임을 여러 번 강조했다. 또, 자신이 미혼이고 나이에 비해 스타일이 좋지 않으냐고도 어필했다. L 씨는 "관장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작가들보다 우위에 있음을 과시하고 싶어했다"고 했다.

갤러리 관장은 '1차는 내가 냈지만 2차는 작가들이 사는 게 전통'이라며 2차 술자리를 유도했다. 관장은 2차에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L 씨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2차 술자리를 빠르게 끝내고 일어서는데, 취했다면서 갤러리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같이 걸어가는데 '어이쿠'하면서 부축을 받으려고 기대려 했다"고 말했다.

L 씨는 갤러리 관장에게 밉보이면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 두려웠다고 한다. 좁은 미술계에서 관장이 내 소문을 이상하게 내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고. L 씨는 "관장은 갤러리로 가는 길에서도 팔짱을 끼려고 하고 '집에 가면 외롭다'고 혼자 못 가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전철이 오니까 갑자기 얼굴에 손을 대고 '뽀뽀해주고 싶다'고 했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분노했다.

L 씨는 며칠간 속을 끓이다가 용기 내 관장에게 연락을 했지만, 관장은 딱 잡아뗐다고 한다. L 씨는 "자기가 그런 행동을 했다면 미안하지만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하더라. 결국 사과 아닌 사과를 받고 전시가 끝나는 날 말없이 그림만 떼고 왔다"고 했다. 이어 "그 갤러리가 작은 곳이라 큰 영향은 없었지만 이런 일이 나한테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신진작가 지원해 준다고 접근해 돈 뜯기도

미술업계에서 인지도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전시회 경력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도 불편한 진실이 담겨 있었다. 앞서의 L 씨는 "졸업전시를 하면 졸업전시 도록을 여기저기 돌리게 되는데 그 도록을 보고 갤러리에서 졸업생들에게 연락을 한다. 신진작가 지원을 해준다면서 전시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데, 멋모르는 애들은 넘어가게 된다. 지원이 아니라 사실상 돈을 내야 전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갤러리들이 전시 기회를 얻으려는 졸업생들을 상대로 잇속을 채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년 전 논란이 됐던 '미투 운동' 당시에도 미술업계 내부에서는 "몇몇의 성추문 사건이 폭로된다고 해서 금방 달라지긴 힘들 것"이라는 자조적 목소리가 나왔었다. 이번 사태 역시 특정 교수의 개인적인 돌출행동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다.

한 미술업계 관계자는 "도제식 커리큘럼이 여전히 남아있어 교수나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이들의 말에 복종해야 하는 문화가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분위기가 교수 및 업계 권력자들의 심각한 성의식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UPI뉴스 /조성아·이준엽 기자 jsa@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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