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통일이 되면 어느 쪽도 절대 오만해서는 안됩니다"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11-26 10: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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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통일로문학상 5회 수상 독일어권 대표작가 예니 에르펜베크
4회 수상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 동시에 방한해 독자들과 만나
역사적 경험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팬데믹이 강화한 불평등 토로
"문학의 목적은 단순한 위로보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흔들어놓는 것"
"통일이 돼서 동독과 서독에 떨어져 있는 가족이 다시 만나게 되고 문화적 공간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지만 단점도 많았습니다. 분단 40년이란 한 세대가 교체되는 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도 통일이 된다면 어느 쪽도 오만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양쪽 모두 동등한 자세로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분단은 정말 인위적으로 나누어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통일을 열망한 '탈향'의 작가 이호철을 기리는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에 온 동독 출신 통일독일 작가 예니 에르펜베크.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독일 작가 예니 에르펜베크(54)가 이호철통일로문학상 5회 본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에 왔다. 동베를린에서 태어나 사회주의 동독에서 연극과 오페라를 공부하고 연출가이자 소설가로 살아온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작가다. 그는 25일 기자들과 만나 먼저 경험한 입장에서 통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통일에 대한 열망을 품고 살았던 '탈향'의 소설가 이호철(1932~2016)의 이름을 내세운 문학상을 받은 이다운 언급이었다. 

에르펜베크는 "독일이 시작한 세계대전의 결과로 독일은 분단됐고, 또한 그 전쟁의 결과는 한국전쟁과 38선으로 이어졌다"면서 "독단적으로 가족, 언어, 고유의 문화까지 어긋나게 한 이 분단선은 우리에게 정치적 결정이 얼마나 개인의 인생 경로에 개입하는지 느끼게 해 준다"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그는 "유럽 난민 사태를 보는 시각에서도 동독 경험이 큰 작용을 하는 것 같다"면서 "동독 출신 국민들은 사실 통일 이후에 서독인이 되는 법을 배워야 했다"고 덧붙였다. 

"동독 국민 입장에서는 사실 통일이 아니라 편입이었다고도 생각합니다. 내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자국인이 아닌 외국인의 느낌을 가지고 여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규율을 배우고, 직장을 다시 구하고, 새로운 삶의 패턴을 배워나가는 그런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난민은 아니었지만 타인 취급을 많이 받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꼽히는 '잉게보르크 바하만상'(2001)을 수상한 그의 작품 중 한국 독자들에게는 '모든 저녁이 저물 때'가 친숙한 편이다. 한 여인의 일생을 다섯 토막으로 나누어 각각 특정 시점에서 죽는 이야기를 다루고, 여러 우연이 겹쳐 그녀가 그 시점에서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전개하는 방식으로 20세기 유럽을 관통하는 서사를 펼쳐내는 소설이다. 에르펜베크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고 어머니가 다른 시점에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이 소설을 착안하게 됐다"면서 "어떤 특정 시점에 특별한 변화가 일어나서 개인의 삶이 변하는 그런 흐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가 배수아가 국내에 번역 소개한 예니 에르펜베크의 소설들. 20세기를 관통하는 유럽의 서사를 한 여인의 다섯번에 걸친 죽음에 담아낸 '모든 저녁이 저물 때'와 집에 관해 성찰한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제 소설에서 사실 큰 사건이 펼쳐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굉장히 사적이고 작은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런 일들이 구체적으로 한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한국과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후에 분단을 겪게 된 역사적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해 내가 겪었던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을 남겨야 하는가, 그 경험 이전에 갖고 있던 것 중에서는 어떤 것을 남겨둬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것을 상실했는가,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에르펜베크는 '모든 저녁이 저물 때'에 대해 설명하며 한국과 독일의 역사적 경험의 공통분모를 언급했다. 한 개인의 삶이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어떤 변화를 겪는지, 그 변화는 일반화된 경험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그 미세한 결을 따라가면서 인간을 드러내는 그의 작품세계를 함축하는 발언이다.

"문학적인 차원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한 사람 한 사람 우리가 직접 겪은 일들이 어떻게 일반화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적인 경험은 다 함께 겪은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험으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벨라루스나 폴란드 같은 곳에서 유럽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난민들이 있는데 이들은 현재 정치 쟁점화 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제가 말씀드렸던 역사적인 전환을 겪고 있는 것이고, 실제로 목숨을 걸고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고향을 잃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떤 변화를 맞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치열하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에르펜베크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저녁마다 평화롭게 잠들고 아침마다 평화롭게 일어나는 것을 당연시 여긴 적이 없다"면서 "하룻밤 사이에 도망쳐야 할 일이 생긴다면, 우리 가족의 중요한 기념품을 담을 수 있는 큰 여행가방을 준비하고 싶다"고 수상소감에 밝혔다. 그는 "평화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힘든 시절을 경험했던 과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개개인의 운명을 초월한 연관성을 형성하고, 그와 동시에 당사자들의 외로움을 없애는 것, 이것들을 글쓰기를 통해 시도할 수 있다"면서 마지막으로 언급한 수상소감은 이러하다.

"단순히 이렇습니다. 저에게는 증조부모님, 조부모님, 부모님이 겪었던 전쟁이 뼛속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권력과 돈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으로 인간에게 심어진 유일한 원동력인지 알고 싶습니다. 또한 멸시가 없는 평화 협정이 있을 수 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죽음의 대가로 한 사람의 삶이  존재할 수 있는 지도요."

▲팬데믹 사태로 일 년 늦게 방한한 4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지난해 4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던 인도의 부커상 작가 아룬다티 로이(60)도  팬데믹 사태로 인해 치르지 못한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에르펜베크와 나란히 기자들 앞에 섰다. 부커상 수상작 '작은 것들의 신'과 '지복의 성자'로 국내에도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화상으로 한국 기자들과 만났다([조용호의 문학공간] "하나의 관점이 승리하는 세상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그는 "인도 곳곳을 여행하면서 글을 쓰는 스타일인데 고립의 시기가 힘들었다"면서 "이번에 한국을 찾게 되면서 그러한 고립이 끝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로이는 수상소감에서 "펜데믹은 그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질병이며 인간사회의 심각한 불의의 단층, 지구를 위협하는 인간이라는 종의 근원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엑스레이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 사태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면서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알면서도 이런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안에 있던 분열과 경계를 보여주는 엑스레이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인종과 종교, 젠더, 빈부, 빈국과 부국 사이에 존재하는 그런 경계들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코로나에 대한 대응이 일종의 화학적 실험이나 다름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작년 초 코로나 사태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인도 총리는 코로나 확산을 무시하다가 갑작스럽게 4시간 후부터 락다운을 시작한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징벌적인 락다운이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갑작스럽게 13억 8천만 인도인들이 락다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다음 날 우리는 대도시에서 거대한 엑소더스를 목격했습니다."

로이는 "문학이 꼭 위로를 전해야 할 필요는 없고 그런 단순한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오히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어떤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편안함을 흔들어놓는 것이 목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은 지금 시점에서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작업의 기능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픽션과 함께 논픽션도 쓰고 있는 로이는 "논픽션은 정치적이고 픽션은 예술적이라는 이분법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 두 가지를 쓸 때 방법과 몸의 느낌이 다를 뿐"이라고 세상을 드러내는 자신의 글쓰기 방법에 대해 말했다. 

그는 "소설이라는 것은 복잡한 것을 가장 간단하게 이야기하는 방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면서 "이보다 더 간단하고 더 비정치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룬다티 로이가 수상소감을 마무리하면서 언급한, 뉴욕에 사는 친구에게 설명했다는 '가치 있는 꿈'의 조건은 이러하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 4,5회 수상자 아룬다티 로이(왼쪽)와 예니 에르펜베크가 기자회견장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사랑하기. 사랑받기. 너 자신의 하찮음을 절대 잊지 말기. 네 주변의 형언할 수 없는 폭력과 삶의 저속한 차이에 절대 익숙해지지 말기. 가장 슬픈 장소에서도 기쁨을 찾기. 아름다움의 거처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절대 복잡한 것을 단순화 하지도,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기. 권력이 아닌 강인함을 존경 하기. 무엇보다도 주시하기. 노력하고 이해하기. 절대 고개를 돌리지 말기. 그리고 절대, 절대 잊지 말기."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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