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시장 악기장인,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 추정 바이올린 기증

이민재 / 기사승인 : 2019-09-13 13: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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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악기는 명연주자에게 쥐어 줘야…아깝지 않아"
"평생 악기 수집, 이젠 연주자에게 나눠 주고파"

"명악기는 명연주자의 손에 있을 때 빛을 발휘한다" 서울 풍물시장에서도 알아주는 악기장인 강희연(81) 씨가 말했다. 애지중지하던 바이올린을 조아람 바이올리니스트에게 건네주면서 한 말이다. 그는 약 두 달 전 자신이 소장 중이던 바이올린을 조 씨에게 무상기증했다. 17세기 제작된 '세기의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추정되는 바이올린이었다.


▲ 악기 장인 강희연 씨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풍물시장에서 U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문재원 기자]


강 씨는 30년간 보관해온 이 바이올린을 조 씨에게 기증한 이유에 대해 "대단한 악기이니만큼 이 악기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연주자가 연주해야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잘 다룰 줄 아는 연주자의 손에 있어야 더 의미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꽤 오래전부터 조아람의 연주를 무척 좋아하고 즐겨들었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연주자라고 여기고 있다"고 극찬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고가의 바이올린을 주면서도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누차 강조했다. 오랫동안 소장해온 악기를 떠나보내는 서운함보다 악기가 제 주인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보람을 더 느꼈다는 것이다.

강 씨는 매니저를 통해 조아람 씨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언젠가 한 번 한 중년 남성이 바이올린 활을 사겠다며 내 가게를 찾아온 적이 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평소 좋아하던 연주자인 조아람의 매니저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조아람과 인연을 맺게 됐을 때 '아 드디어 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줄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조아람 정도의 명연주자라면 그가 오랫동안 아끼던 바이올린을 줄만 하다고 본 것이다.

"가지고 있는 모든 악기는 내 영혼과 같다"는 강 씨는 지난 50년간 악기 수집과 수리에 모든 걸 바쳐왔다. 그의 노력을 증명하듯 가게엔 수많은 악기가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커다란 몸집을 자랑하는 콘트라베이스부터 바이올린과 기타, 아코디언까지 다양했다. 특히 그가 그토록 사랑한다는 바이올린이 여러대 있었다. 그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쌍벽을 이루는 '과르네리'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씨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외에도 아직 보여주지 못한 명악기들이 많다"며 "프랑스, 독일 등에서 제작된 여러 명기들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17~18세기에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제작자 스트라디바리(Stradivari) 일가가 만든 바이올린과 현악기를 총칭하는데 전 세계에 약 600대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연주되고 있는 건 50여 대에 불과하다. 이러한 희소성과 특유의 음색 때문에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게 기본이다. 한국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이 악기를 썼다.

악기에 평생을 바쳐온 그는 최근, 조금 다른 꿈을 꾸고 있다. 그는 모으기보다는 이제 꼭 필요한 연주자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 강 씨는 "악기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건 자랑이 아니다. 오히려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고 했다. 명연주자들에게 좋은 악기들을 나눠줘 훌륭한 음악이 나올 수 있게 해야 했는데 평생 쥐고만 있어 아쉽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악기들도, 훌륭한 연주자에게 언제든 나눠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 악기 장인 강희연 씨가 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풍물시장 내 자신의 수리점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조아람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날 인터뷰 자리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아람 씨가 방문했다. 강 씨로부터 기증받은 바이올린을 챙겨온 그는 간단하게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연주를 마친 그는 "이 악기를 처음 연주하는 순간 '이게 진정한 소리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연주해온 다른 바이올린과는 확실히 다른 아름다운 음색이 귀와 몸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조 씨는 최근 연습량을 몇 배로 늘렸다. "몹시 아끼던 바이올린을 무상으로 기증해준 악기장인 할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훌륭한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성원해주시는 만큼 더 열심히 연주하고 악기를 사랑하고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를 듣고 있던 강 씨는 "내가 준 이 바이올린으로 조아람이라는 연주자가 더 멋진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길 바란다"며 "그게 내게는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UPI뉴스 / 이민재 기자 lmj@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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