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조건부 연기', 남은 '40일의 물갈퀴질'에 달렸다

김당 / 기사승인 : 2019-11-23 16: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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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미국의 강한 압박에 '연기가 아닌 것처럼 연기'한 '조건부 연기'
靑 "국익우선 원칙하 협력외교…과거사·외교안보 '투트랙 접근'할 것"
문희상 '1+1+α' 제안, 근본 문제 해결 위한 협상에 중대한 모멘텀 제공
송영길 "일본에 주어진 시간은 40일…곧 '수출무역관리령 개정'해야"

정부는 언제든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지소미아 종료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청와대가 22일 오후에 발표했다. 또한 정부는 한일간 수출 관리정책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일본 측 3대품목 수출규제 WTO 제소를 정지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 김유근(왼쪽) 국가안보실 1차장과 최종건 평화기획비서관이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논의 결과 발표를 위해 춘추관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김유근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오후 6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브리핑
에서 "한일 양국 정부는 최근 양국간 현안 해결을 위해 각각 자국이 취할 조치를 동시에 발표하기로 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일본은 이다 요이치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장이 한국보다 10분쯤 늦게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원료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한 조치에 당장 변화는 없지만, 수출관리와 관련한 국장급 대화를 열겠다고 밝혔다.

 

요컨대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의 조건부 유예 △3개 품목 WTO 제소절차 중단을 선언한 반면에, 일본은 △3개 품목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 배제 재검토를 선언한 수준으로 양국 발표 내용에는 '온도 차'가 있다.

 

이 때문에 춘추관 브리핑 현장에선 "우리는 현찰을 주면서 일본의 어음을 받은 느낌"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소미아 종료를 하루 앞둔 21일에만 해도,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종료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최종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날 오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나와 "일본의 태도변화가 있지 않은 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내일 종료된다"고 말했다.

 

청와대나 외교부가 마지막까지 종료 사태를 막기 위한 외교적 노력과 협의를 다하겠다는 전제를 달긴 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정부가 태도를 바꿀 만한 일본의 태도 변화는 체감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최종 입장을 하루 만에 변경했다. "언제든지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2019년 8월 23일 종료권고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라고 말을 배배 꼬아서 최대한 헷갈리게 발표했다.

 

'연기가 아닌 것처럼 연기'했지만, 결론은 지소미아 종료의 '조건부 연기'이다.

 

기자들에게도, 국민에게도 '조건부 연기'에 대한 배경설명이 필요했다. 브리핑에 동석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번 결정이 대통령의 결단임을 강조하며 그동안 한일 간 현안 해결을 위해 관련국과 협의해온 몇 가지 원칙을 밝혔다.

 

우선 현재의 상황은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일본이 초래한 것으로 지소미아 연장 문제는 전적으로 일본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즉, '조건부 연장'인 만큼 앞으로 일본이 가한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지 않으면 연장의 효력을 정지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종 해결은 일본 측 태도에 달려 있겠지만 상당 기간 지연되는 걸 우리 정부로서는 허용할 수 없다"며 지소미아 종료 정지가 '한시적'임을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기자들이 웅성거리자 이 고위 관계자는 다시 "최종 해결은 일본 정부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본다"면서 "그러나 현재 (한일 간의) 합의 내용이 '상당 기간' 계속되는 것은 허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 기간'의 시한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연내'로 간주되었다.

 

또한 고위 관계자는 일본의 태도 변화의 내용에 대해 "간단히 말해, 7월 1일 이전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즉, 일본이 3개 품목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고, 화이트리스트에 한국을 다시 포함시켜야 우리도 '조건부' 지소미아 연장과 WTO 제소 중단의 '조건'을 철회하겠다는 것이다.

 

태도 불변의 입장이 하루 만에 바뀐 배경에 대해서는 "어제 이어 오늘도 개최한 NSC 상임위에 이례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임석해 우리의 입장을 재가해 주셨다"면서 대통령의 결단임을 강조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께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일 양국은 가치를 공유하는 가까운 이웃으로서 동북아 평화안정을 위해서 협력해야 할 동반자라는 걸 늘 강조해왔고, 한일간 현안은 외교적 대화를 통해서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계신다"면서 대통령이 그동안 기울인 외교적 노력의 사례를 몇 가지 예시했다.

 

지난 11월 4일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나눈 한일 정상 환담과 그날 이뤄진 문 대통령의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접견, 15일 문 대통령의 에스퍼 국방장관·해리스 주한미국대사·마크 밀리 합참의장 접견 등이 그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방한 중인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지소미아에 대한 우리의 기본 입장을 전했다. [청와대 제공]


이 자리에서 우리의 기본 입장을 밝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으며, 최근까지 한일 간의 외교채널을 통해 실질적인 협의를 진행해 양국간 대화 재개와 조건부 지소미아 종료 효력과 WTO 제소절차 진행의 '잠정 중단'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밝힌 사례만으로는 입장 변화의 배경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다. 정부는 물론, 상원이 지소미아 연장 촉구 결의안까지 채택한 미국의 강한 압박을 수용하면서도 최대한 자존심을 유지하는 절충안으로 '조건부 연기'라는 '시간 벌기'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상정한 '잠정 중단'의 시한은 연내로 추정된다. 한일 양국은 이번 발표와 함께 재개하기로 합의한 국장급 대화를 통해 한국에 대한 3개 품목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 배제 철회를 매듭지어야 한다.

 

국회 외통위 송영길 의원(인천 계양을·민주)은 청와대 발표 직후에 페이스북에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이 정지되었지만, 그렇다고 한국 정부와 국회가 무한정으로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일본에게 주어진 시간은 40일"이라고 썼다.

 

송 의원은 그 이유를 "일본 정부가 다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로 포함시키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을 위해 대략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송 의원은 "지난 7월 1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대상에서 제외하는 개정안을 고시한 이후, 8월 7일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이 공포되기까지 소요된 기간은 '38일'"이라며 "그 시작은 '수출무역관리령의 재개정'이다"고 지적했다.

 

송 의원은 "안보상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해 놓고, 군사기밀을 공유하자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 일본 정부가 '자기 모순'을 인정하고, 조속히 후속 입법절차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국회 외통위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오는 12월 말에 한중일 정상회의가 중국에서 개최되므로 그 이전에 국장급 협의를 마치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쉽지 않을 것이고, 특히 '시행령 개정'은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일본의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의 고위 관계자는 "한일관계는 여전히 엄중한 상황"이라고 전제하고, "일본에 대해 과거사 문제는 과거사 문제대로 외교적 노력을 계속해 나가면서 안보를 포함한 실질적 분야는 미래지향적으로 강화해 나가는 '투 트랙 접근' 방식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며 "한일 간의 이번 합의는 국익 우선 원칙하의 협력외교의 좋은 사례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자기모순'을 인정할리는 만무하다. 실제로 한일 양국의 이번 발표 내용에도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해 안보상의 이유로 화이트리스트 배제라는 초강수를 둔 근원인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결국 한국 정부는 미국의 강력한 압박에 따른 절충안으로 벌어놓은 '40일' 동안, '호수의 백조'처럼 물밑에서 바삐 움직이는 협상의 물갈퀴질을 통해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결의 물꼬를 터야 한다.

 

▲ 송영길 의원(왼쪽)이 "일본에게 주어진 시간은 40일"이라며 조속한 '수출무역관리령의 재개정'을 촉구한 가운데 문희상 국회의장의 '1+1+α' 안이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 중대한 모멘텀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뉴시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그 해법으로 제시한, 한일 양국 기업과 양국 국민의 자발적 성금을 마련해보자는 이른바 '1+1+α' 제안은 근본 문제의 해결을 위한 협상에 중대한 모멘텀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희상 의장은 지난 5일 일본 도쿄 와세다대에서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문재인-아베 선언을 기대합니다 : 진정한 신뢰, 창의적 해법으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복원'을 주제로 특별강연하고, 일본측에 자신의 제안을 전했다.

 

하지만 문 의장 안에 대해 피해자들이 동의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지난 21일만 해도 청와대 관계자는 "징용 피해자들의 의견을 먼저 듣는 것이 중요하다"며 "문 의장의 안은 정부와 사전에 조율한 것은 아니다. 문 의장이 낸 아이디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에도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12월 하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이 만나 최종 해결을 마무리짓는 담판이 성사되려면, 정부가 남은 40일 동안 얼마나 '물갈퀴질'을 잘 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UPI뉴스 / 김당 기자 dang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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