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에 국제 생산혁명 도시 건설하자"…김석동의 담대한 제안

류순열 / 기사승인 : 2020-01-13 15: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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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새로운 10년을 말하다] 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세계경제는 지금 노웨이 아웃…한반도에서 숨통 틔우는 대역사 만들어보자"
▲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 고대사에 푹 빠져 산다. 벌써 8년째다. 김 전 위원장은 "고대사 연구는 현재의 문제다. 우리가 누군지 알아야 그 무기를 쓸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역사에서 찾는다는 말이다. 지난 6일 지평인문사회연구소 집무실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는 김 전 위원장. [문재원 기자]

대담 = 류순열 편집국장 

"내, 경제 얘기는 안 한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인터뷰를 수락하면서 조건을 붙였다. 늘 그랬듯 "역사 얘기만 하겠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2013년 초 공직에서 물러난 뒤 8년째 고대사를 연구 중이다. 직함은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법무법인 지평이 만든 인문학 연구소다. 경제관료로 위기마다 해결사였던, '대책반장 김석동'이 사학자로 변신한 것이다.

그러나 질문도 하기 전에 안 하겠다던 경제 얘기부터 꺼냈다. 그만큼 걱정이 많은 거다. "세계 경제도, 한국 경제도 노웨이 아웃(No way out)"이라고 했다. 출구가 없다, 즉 해법이 없다는 말이다. 세계 경제는 "10년간 쌓은 폭약 위에 다섯 개의 커다란 뇌관이 떠다니는 상황"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부채가 터져 발생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다시 부채를 폭발적으로 늘린 데다 미중 무역분쟁, 탈세계화, 불안한 유럽, 신흥국 리스크 등과 같은 뇌관이 시한폭탄 처럼 재깍꺼리고 있다는 얘기다. 김 전 위원장은 "고전적인 정책수단은 다 끝났다. 금리, 환율, 재정 정책 다 끝났다. 35년 경제정책을 해봤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했다. "1997년엔 우리가 굉장히 어려웠지만 세계는 굉장히 좋았고, 2008년은 세계는 굉장히 나빴는데 우리는 세계 최강 구조였다면 지금은 둘 다 어렵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한국 경제의 문제로 무엇보다 가계부채와 주택문제를 꼽았다. "2000년대 초부터 걱정했던 게 가계부채인데, 가계부채는 장기적으로 나라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미래소비를 없애버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현실적으로 닥친 가장 큰 문제는 주택문제"라며 "주택문제는 청년, 고령화, 가계부채, 미래소득 문제를 다 포괄하는 문제"라고 했다.

"정말 큰 일"이라고, 걱정만 늘어놓는다면 대책반장 김석동답지 않다. "노웨이 아웃"이라고는 했지만 그에게  아이디어가 왜 없겠나. 그런데 그 아이디어라는 게 스케일이 좀 크다. 김 전 위원장은 "주택문제는 부동산 정책으로 되지 않는다. 공공임대로, 각오하고 가야 한다"고 했다. "집 없는 사람한테는 공공재로 해주고, 집 있는 사람한테는 사유재산으로 해주면 된다. 와장창 지어서 한방에 끝내야 한다"고 했다.

세계 경제 해법으로는 생산과 물류 혁명을 제시했는데, 구체적으로 한반도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두만강 유역의 러시아 하산, 중국 훈춘시, 북한 두만강시의 접경지대인 방천(防川· 중국 지명 팡촨)에 다국적 생산도시를 건설하자는 거다. 그는 "중국, 북한, 러시아가 땅을 내고 누구의 도시도 아닌 새로운 생산혁명의 기지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기지는 유라시아 대철도, 그리고 북극항로로 바로 연결된다. 미국과 일본도 대륙진출 기지에 돈을 내고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김 전 위원장은 말했다. 미·일·중·러와 남북한 6개국이 한반도에서 세계 경제의 숨통을 틔우는 대역사를 만들어보자는, 담대한 제안이다.

이 아이디어의 원조는 그의 형 김석철(2016년 작고)이다. '예술의 전당'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로, 저서 제목처럼 '도시를 그리는 건축가'다. 김 전 위원장은 "형님이 그런 계획을 갖고 있었고, 설계까지 해놨었다"고 회고했다.

대책반장 김석동에게 대책 마련과 역사 연구는 별개가 아니었다. "이 모든 문제의 해법도 결국 역사에서 찾는다"고 했다. 그는 "유라시아의 광활한 영토를 누볐던 한민족의 정체를 찾아 이를 무기로 미래를 열려는 것"이라며 "고대사 연구는 현재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고조선은 BC 24세기쯤 건국해 만주 일대까지 장악한 거대국가로, 유라시아 기마민족의 원류"라고 했다. 압축하면 그의 고대사 연구는 "기마민족 DNA를 살려 꽉 막힌 미래를 열자"는 것이다. 그는 "우리 무기가 뭐냐. 한민족 DNA다. 이거 갖고 다시 붙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석동의 대한민국 경제와 한민족 DNA>,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는 이 같은 고민과 연구의 결과물이다.

김 전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6일 서울 충정로 서대문타워 그의 사무실에서 한 시간 남짓 진행됐다.

▲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가 지난 6일 서울 충정로 집무실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 대표, 류순열 UPI뉴스 편집국장, 온종훈 산업에디터, 김이현 기자. [문재원 기자]

ㅡ돌파구가 왜 한반도인가

"옛날 1920년 대공황은 전쟁이면 끝났다. 생산과잉이 문제였으니 수요를 만들어내면 됐다. 그래서 전 세계가 전쟁 후에 잘 나갔다. 이번엔 전쟁 나도 해결이 안 된다. 부채는 전쟁이 나도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늘어난다. 그래서 국제협력, 생산협력을 만들어보자는 것이고, 내가 주목한 게 바로 한반도다. 한반도는 미·일·중·러 4강국의 이해관계가 극심하게 걸리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다."

ㅡ두만강 유역에 다국적 생산도시를 건설하는 게 가능할까


"두만강 유역에 러시아, 중국, 북한이 만나는 데가 있는데, 바로 방천이다. 여기에 미·일과 중·러가 들어가고 나가는 세계적인 국제도시를 짓자는 거다. 누구의 도시도 아닌, 새로운 생산혁명 기지다. 러시아는 극동개발이 러시아 경제의 유일한 돌파구다. 또 만주는 세계적인 생산기지, 곡창지대, 지하자원의 보고이지만 태평양으로 못 나온다. 방천에서부터 16km가 막혀 있다. 그 자리에 다국적 생산도시를 만들면 그냥 태평양으로 나오는 거다. 북한은 땅만 내면 된다. 미국과 일본도 대륙진출 기지에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다."

ㅡ돈은 누가 대나

"아주 간단하다. 다국적 물류·생산도시다. 그런 곳의 공장, 생산기지를 분양하지 않나. 미국, 일본을 물론 전세계 자본이 들어올 거다."

▲ 러시아, 중국, 북한의 접경 지대에 위치한 방천(붉은색 사각형). [구글 지도 캡처] 

ㅡ한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난 100년간 세계에서 복합신도시를 지은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분당, 일산 같은 거다. 도시를 짓는 데는 우리만 한 나라가 없다. 도시건설을 대한민국이 하는 거다. 그렇게 6개국이 대역사를 이뤄보면 그것이 앞으로 세계가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을 거다. 새 시대가 열릴 때 그런 것을 시작해보자고 제안하는 거다. 이게 세계의 문제다."

김 전 위원장은 수년 전부터 "지구촌 미래를 살리기 위해 공조와 협력이 필요한데 그 장을 이끌어내는 진원지를 한반도로 보고 있다"고 말해왔다. 구체적으로 이런 구상을 실현할 핵심 프로젝트로 철의 실크로드를 제안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만주횡단철도(TMR), 몽골횡단철도(TMGR), 중국횡단철도(TCR) 4개 대륙 철도망과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연결하는 거대 프로젝트다. 그는 "이 길들은 수천년 전부터 한민족이 국가를 건설하고 활동하던 무대"라며 "철의 실크로드가 다시 한민족의 활동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세계가 깜짝 놀랄 제안을 준비하고 있다"고도 했었는데, 이제 보니 "한반도에서 대역사를 만들어보자"는 구상이 그것이었다.

ㅡ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의 문제를 비교하면

"뭐가 문제냐 하면, 1997년 외환위기 당시는 우리가 굉장히 어려웠고 세계는 굉장히 좋았다. 우리를 고치고 나니까 세계가 좋기 때문에 극복하는 게 달랐고, 가능했고, 쉬웠다. 우리는 동남아 위기가 전염되고 누적됐던 시스템이 폭발하면서 어려웠지만 세계가 좋아서 극복할 수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를 돌아보면, 그 당시 세계는 굉장히 나빴는데 우리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그야말로 전 세계 최강구조가 됐다. 부실 다 해결했고, 금융 경제 인프라 전부 최신형으로 다 바꿨다. 일본이 그렇게 부러워했다. 세계는 어려웠지만 우리는 좋았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둘 다 어렵다. 이 문제를 가장 걱정하는데, 결국 해법은 역사 쪽에서 찾는다."

ㅡ세계 경제의 문제는

"세계가 폭약을 쌓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뜻이냐면, 1970년대 말 후반 이후에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이 신자유주의는 '정부는 물가만 잡고 모든 것은 마켓(Market)과 인더스트리(Industry)가 다 맡아서 알아서 할게' 이 그림이었다. 인류는 안 해봤던 실험을 했다. 금리를 초저금리로 낮췄다. 신자유주의로 30~40년 동안 인류는 처음으로 잘살게 됐다. 신흥국도 다 잘살게 됐고 굶는 나라가 없었다. 그 결과가 뭐였냐면 가계, 기업, 정부, 금융회사 전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 빚더미에 올라앉은 것이 터져버린 게 2008년 사태다. 이것을 인류가 어떻게 막았냐면 빚을 구조조정한 게 아니라 또 거기다 빚을 퍼부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런 빚더미 위에서 다섯 개의 뇌관이 떠다니고 있다"고 했다. 우선 미중 무역분쟁. "미중 무역분쟁은 근본적으로 안 끝난다. 사람들은 미중이 적당한 선에서 협의하면 끝난다고 보지만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중국은 미국 GDP(국내총생산) 대비 60%다. 소위 말하는 투키디데스 함정에 딱 얽힌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과 같다는 얘기다. "그래서 합의를 해도 끝나지 않는다. 세계 경제에 굉장히 큰 타격을 장기적으로 줄 수 있는데, 특히 우리 같은 나라에 굉장히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게 그의 걱정이다.

또 다른 뇌관은 탈세계화. 그는 "탈세계화가 얼마나 심각하냐면 미국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탈퇴를 선언하고, 유네스코에서 빠지고, 각국 FTA(자유무역협정) 다 깨지고, 기후협약도 빠졌다.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세계화가 그 동안 우리경제를 굉장히 융성하게 했던 동력이 됐는데 이제는 거꾸로 간다"는 것이다.

ㅡ유럽도 불안한데

"유럽,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유럽 가서 ECB(유럽중앙은행) 사람들도 만나보고, 분데스방크 사람도 만났다. 이 사람들이 EU 체계를 가져가는 목적은 경제번영이 아니고 전쟁 없는 유럽이다. 좀 어려워도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구조가 굉장히 불안정(unstable)하다. 왜 그런가 하면 매크로 정책이라는 게 금리·환율·재정인데, 금리하고 환율 정책은 통화가 단일통화니까 못하게 돼있다. 재정은 조약에 의해 묶어놨다. 그러면 정책하는 걸 포기한 거다. 정책에 여력이 없다. 세계경제가 잘 나갈 땐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지만, 나쁠 땐 작동불능 상황이다. 좋은 경제와 나쁜 경제가 혼합돼 있어 해결방법이 없다. 거기다 선거, 테러, 난민 뭐 하나 편한 게 없다. 브렉시트는 덤이다."

김 전 위원장은 신흥국에 대해서도 걱정을 토로했다. "그동안 선진국이 유동성 때려 부은 것 중 절반 이상이 신흥국으로 몰려갔다. 이제는 과부채 때문에 굉장히 불안정하다. 다음번에 터져나갈 진원지가 보인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담대한 제안 사이사이 걱정을 토로했다. "인류의 미래는 진짜 없다. 마지막이라는 것이 이렇게 오는구나 할 정도로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정책이라는 걸 오래 해서 알지만, 아 이것은 수가 없구나라는 게 딱 드러난다. 세계적 석학도 말하는 걸 보면 답이 없다는 게 결론"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일 터다.

ㅡ이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왜 물류혁명인가

"물류가 발달하면 하나를 만들어서 두 개를 하는 거다. 굉장히 재밌는 주제다. 유라시아 대철도가 연결되면 지구 끝에서 끝이 연결되는 거다. 거기서부터 산업이 새롭게 태동한다. 북극항로가 가면 길만 있는 게 아니라 그 곳곳이 개발된다. 북서항로는 미국 맨해튼 쪽으로 간다. 안 하던 것을 해보자는 거다. 발상의 전환을 가지고 세계에 메시지를 던져보자는 거지."


◆김석동은…


△1953년 부산 출생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90년 재정경제원 5·8부동산 특별대책반장 △1993년 재정경제원 금융실명제 대책반장 △1997년 재정경제원 외화자금과장 △2004 ~ 2005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2007 ~ 2008년 2월 재정경제부 1차관 △2008년 농협경제연구소 대표 △2011 ~ 2013년 3월 금융위원장△현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UPI뉴스 / 정리=김이현 기자 kyh@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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