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란의 토닥토닥] 코로나19에 '잠시 멈춤'?…작은 움직임이 희망을 만든다

UPI뉴스 / 기사승인 : 2020-02-27 08: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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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확산으로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가 '심각' 수준으로 격상됐다는 뉴스 보도 이후에 여러 변화가 생겼다. 우선 학교, 어린이집의 개학이 연기됐다. 관리사무소에서 외출 자제와 손 소독을 당부하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매일 햇빛을 쐬면 좋다는 얘기에 마스크 쓰고 뒷산에 가던 발걸음조차 주춤해졌다. 이웃들 역시 조용히 칩거하는 중인 듯하다.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히 서 있다.

개학을 고대하며 친구 만날 생각에 들떴던 학생들은 김이 샐 듯하다. 새 학년 새 학급에 대한 기대도 잠시 유보됐다. 학원도 피시방도 열지 않은 곳이 많다. 한창 혈기 왕성한 학생에게 갑자기 늘어난 여가시간은 당황스럽게 느껴질 터. 성장기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애초에 불가능한 요청이다. 그들은 움직이며 배우고, 만나며 성장한다. 그래서 요즘 주변에서 들리는 부모들의 고충이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뛰어오르는 아이들 [픽사베이]

"놀이공원에 갈 수도 없고 수영장이나 스키장도 가기 그렇고. 아이들 데리고 어떻게 지내야 할지 답답하네요."
"그래도 집에서 혼자 있을 수 있는 학생들은 괜찮죠. 어린아이는 어디에 맡겨야 할지 고민돼요."
"휴가를 내려고 해도 갑자기 지원자가 많아져 당장은 어렵네요."
"에고, 우리 집 아이는 벌써 방안에 게임방 차렸네요. 어휴!"

뾰족한 해답이 없는 막연한 기다림의 시간이다. 그나마 오전은 견딜만하다. 무료해질 즈음에 오후가 된다. 햇살이 더욱 빛나는 바깥을 바라보다 '그래도 움직여보자'고 인근 공원을 향했다. 사거리에 인적이 드물었다. 반면에 공원 어귀의 오르막부터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원은 동서남북으로 길이 나 있어 사방에서 오르기 좋은 쉼터다. 평일 오후에는 주로 나이 든 분들이 많다. 반려견과 산책 나온 주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평소 보이지 않던 중·고등학생들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와 함께 나온 어머니들, 친구들과 짝지어 초등학생들이 모여 있다. 학생들이 공원 둘레길을 달리고 있었다. 오히려 주말보다 공원에 사람이 많아졌다. 한결같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남녀노소가 한데 모였다.

개를 데리고 나온 초등학생이 제법 즐겁게 걷는다. 엷은 파란색 스웨터를 입은 개가 어린 주인을 따라 머리를 흩날리며 따라간다. 잔디밭 위에 삼삼오오 야구 경기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형과 동생이 글로브를 끼고 공을 던지고 있다. 형이 동생을 향해 소리친다. "제대로 던져, 좀 더 뒤로 가서 해 봐" 하고 외친다.

그 옆엔 엄마와 아이가 야구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향해 엄마는 거리조절을 하며 공을 던진다. 아이가 한 번이라도 '퍽' 소리를 내며 공을 받기를 고대하며 연신 던지고 주우러 다닌다. 잔디밭 둘레에는 오빠와 여동생이 조깅하고 있다. 발맞추듯이 달리는 오누이의 표정이 싱그럽다.

어린아이들은 제 몸을 킥보드에 싣고 휙휙 지나간다. 언덕 아래에서 또 킥보드를 가지고 올라오는 소녀가 보인다. 분홍색 옷을 입고 분홍색 킥보드를 구르며 온다. 길옆에 조성된 소나무 숲에는 토끼를 바라보며 어린 남매가 종알종알 이야기하고 있다. 연신 서로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뭐가 그리 중요한 화제일까 궁금해 귀 기울여본다. 어떤 꼬마는 장난감 헬리콥터를 손에 들고 나타났다. 그보다 조금 더 큰 형은 제 손으로 조립한 듯한 비행기를 들고 있다. 어느새 비슷한 또래 자녀를 둔 엄마들은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산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걸음은 무겁고, 마스크는 유독 답답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걷다 보니 걸음이 절로 경쾌해졌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속 시계처럼 축 늘어져 있던 공원에 생기가 돈다. 사람들 사이에서 면역력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평소 무료하게 공원의 운동기구를 친구삼아 소일하던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듯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표정을 잘 모르겠지만 "애들 천국이네~"하고 옆 사람에게 건네는 멘트는 훈훈했다. 한 시간 남짓 산책하다 보니 누가 종을 울리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잠시 휴식한다. 벤치와 그늘과 꽃밭의 가장자리에 서성이며 쉰다. 어린애들은 그 와중에도 꽃밭 옆 트램펄린 위에서 통통 튀어 오르는 놀이를 하고 있다. 젊은 데이트족이 벤치에서 이 모든 광경을 영화세트장 보듯이 바라보며 담소하고 있다.

공원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전파되고 있었다. 그 에너지는 '희망'이 아닐까. 막연했던 일상에 새로운 변화가 보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라는 적을 늘 의식하다 맞는 새로운 변화다. 문득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말한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글귀의 의미를 알 듯하다.

인위적으로 연출하지 않아도 관심과 애정이 있으면 생기는 게 희망인가보다. 희망은 사방이 뚫려 있고 사람들이 걷고 모이고 만나는 곳에서 발견되는 듯하다. 건축학자 유현준 교수는 그의 저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공간은 움직이는 개체가 공간에 쏟아붓는 운동에너지에 의해서 크게 변한다."

그렇다. 공원에서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에너지를 얻은 게 설득력 있는 사실이다. 한 시간 남짓 공원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해 준 사람들 모두가 오래 기억될 듯하다.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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