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싸라기" vs "살 사람 없어"…대한항공 송현동 땅 팔릴까

김이현 / 기사승인 : 2020-05-23 1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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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노른자위 땅이지만 개발규제로 사업성 떨어져
서울시, '공원 조성' 방침 확고…가격 차이 커 난항 예상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대형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LCC) 모두 적자의 늪에 빠졌고,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다. 선두업체인 대한항공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정부 지원과 유상증자로 급한 불은 껐지만, 여전히 살아남기 위한 '실탄'이 부족한 처지다. 

관심을 끄는 건 단연 '송현동 부지'다. 대한항공은 유휴자산을 팔아 현금 확보에 나서야 하는 만큼, 매각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이곳은 서울 도심 '금싸라기 땅'으로 꼽히지만 각종 규제를 받는 지역이라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 서울 종로구 송현동 대한항공 소유 부지. [정병혁 기자]

22일 서울시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서울 종로구 송현동 48-9 일원 토지(3만6642㎡)매각을 위해 지난달 삼정 KPMG·삼성증권 컨소시엄을 매각 주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지난해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경영개선안 중 하나로 해당 부지를 연내 정리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리적 이점·상징성 갖췄지만 23년째 '공터'

경복궁 옆 송현동 부지는 조선시대 말까지 왕족과 고위관리들 집터였다.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이후에는 수탈의 상징인 조선식산은행 사택으로, 광복 후에는 미국 대사관 숙소로 이용됐다. 1997년 삼성생명은 국방부로부터 해당부지를 1400억 원에 사들였고, 미술관을 세우려 했지만 실패했다. 2008년 한진그룹은 이 땅을 다시 2900억 원에 매입했다.

계획은 끊임없이 차질이 생겼다. 대한항공은 당초 7성급 한옥 호텔을 지을 예정이었지만, '학교 주변에 호텔을 지을 수 없다'고 규정된 학교보건법에 막혔다. 인근에는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 3개 학교가 있다. 이후 법 개정이 추진됐지만, 2014년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으로 무산됐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복합 문화 허브공간을 세우겠다고 나섰지만, 당시 국정농단에 가담한 광고감독 차은택 씨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또다시 물거품이 됐다.

결국 송현동 부지는 23년째 '공터'로 남아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서울 도심의 노른자 땅을 놓고 수십 년간 '개발을 한다 안 한다' 소리만 무성했다"면서 "지리적 특성은 탁월한데, 여러 사업이 좌초된 부지를 선뜻 매입한다고 나설 큰 기업이 있을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각종 건축 규제가 있는 땅이기 때문에 향후 개발 이익이나 사업성을 고려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물 규제 구역…향후 수익성에 물음표

송현동이나 삼청공원 등 일대는 북촌지구 단위계획 구역이다. 개발 시 건축물 높이는 12m 이하로 제한되고,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의 비율(건폐율)은 60% 이하, 용적률은 100~200%로 묶인다. 3층 이하의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만 지을 수 있고, 학교보건법도 그대로 남아있다. 사실상 사업 수익성이 크지 않은 근린생활시설만 들어갈 수 있는 셈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서울시를 홍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할 순 있겠지만, 사실상 지을 만한 건 별로 없다"면서 "개발 이익이 거의 없기 때문에 민간에서도 손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장 이용가치보다는 미래가치를 위한 것 아닌가"라면서도 "현재 사업성은 답보 상태인데, 민간에서 산다고 나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서울 서소문 대한항공 사옥. [문재원 기자]

민간 매각 사실상 불가…서울시, 공원 추진

서울시는 이곳에 '공원'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부지 활용을 위한 용역을 진행 중이고, 대한항공 측에도 협상 의지를 전달했다. 아울러 해당 부지를 올해 안에 도시계획시설(공원)로 지정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 땅은 지리적 위치나 상징성도 있지만, 서울 도심의 중요한 위치임에도 오랜 시간 버려져 있었다"면서 "좋은 자원을 계속 방치한 채 놔두는 건 공공의 입장에서 맞지 않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가격'이다. 현재 공시지가는 3100억 원 수준이지만, 대한항공과 시장이 평가하는 송현동 부지의 매각 가치는 최소 5000억 원대다. 12년 전 2900억 원에 매입했던 걸 감안하면 시세차익이 상당한 수준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공원화할 경우 매입가는 낮아진다. 공식 매입가격은 여러 업체가 감정평가를 한 뒤 중간값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안 팔리는 땅 공공이 매입" vs "가격은 맞아야"

송승현 대표는 "개발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운영 이익만으로 비싼 땅값을 지불하는 건 손해인 만큼, 서울시와 대한항공이 부르는 가격차이는 크게 날 것"이라면서 "건축 규제가 많기 때문에 민간은 불가능하고, 현재로선 서울시가 들어가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압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보면 개발 규제와 문화재 보호구역에 속한다는 걸 다 알고도 민간이 사려고 나서진 않을 것"이라면서 "팔리지 않는 땅을 서울시가 사는 건 오히려 대한항공을 위한 일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제3자 등 민간이 해당 부지를 구입한다고 해도, 어찌 됐든 공원으로 조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매각 대상에서 서울시를 배제한 건 아니다"라면서 "공정한 시장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 가격을 지불할 의지가 있다면 팔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부지를 공원으로 지정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고, 서울시가 얘기했다고 해서 마음대로 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UPI뉴스 / 김이현 기자 kyh@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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